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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편지 세번째

2010-04-15 20:16:19, Hit : 2746

작성자 : 운영자



















100년 편지





arrow세 번째 편지 - 2010년 4월 15일        




100년 편지




























진천 홍참판님께
[역사학자 한홍구가 홍승헌 선생에게 띄우는 편지]




photo 경술년 12월 초하루였지요. 참판님께서 평생의 벗이자 사돈의 인연까지 맺은 이건승과 함께 청나라 사람이 모는 달구지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신 것이. 그 추운 밤만 생각하면 저는 가슴이 저며 옵니다. 내일 모레면 60인 ‘노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셨을까...두 달 먼저 만주에 가 자리 잡은 참판님의 벗이자 사돈인 정원하 참판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산 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서 두 분을 기다리고 계셨을까...
민영규 선생이 남긴 매화이야기가 더 서럽습니다. 선조 때 월사 이정구가 명나라에서 가져왔다는 족보있는 매화에서 접붙인 묘목을 이건승의 형이자 참판님의 친구 이건창이 서강 집에 심었다지요. 이건창이 강화로 낙향할 때 이삿짐 위에 조심스럽게 얹어 강화도 사골(사기리)에 옮겨 심고, 거기서 접붙인 묘목을 참판님이 다시 진천에다 심으셨다는 그 매화. 압록강을 건너기 전 진천에서 오시는 참판님을 개성에서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던 이건승이 국화 화분을 옆에 두고 찍은 사진 한 장도 눈길을 끕니다. 좋은 세상이었다면 매화나 국화를 즐기며 시를 읊고 술잔이나 기울이면 딱 좋았을 지체 높고 가문 좋고 학문 깊고 문장에 능한 선비들...농사도 지을 줄 모르고, 칼 한 번 잡아본 적 없이 어쩌자고 압록강을 건너셨습니까? 채 4년도 버티지 못한 그 길을...
1875년 참판님께서 스물 두살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던 광경을 떠올려봅니다. 같은 집안인 홍승목도 스물아홉 나이로 같이 급제하였지요. 벽초 홍명희의 할아버지로 최근 간행된 [친일인사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금산군수로 있던 아들 홍범식은 1910년 8월 29일날 목을 매었습니다. 경술국치 후 첫 순국이었지요. 손자 홍명희는 국내 항일운동에서 사상적 지주역할을 하였으니, 3대에 걸친 운명이 참 얄궂었습니다. 그러나 1875년 개항도 하기 전의 그날에야 참판님 댁이나 벽초 댁에 닥칠 일들을 그 누가 짐작했겠습니까? 1895년 일본인들에게 명성황후가 시해 당했을 때 이놈의 조정은 국상을 반포하지 않고 고종의 이름으로 폐비의 칙령을 내렸습니다. 아무도 상복을 입는 이가 없자 홍참판께서는 벗! 이건창, 정원하와 함께 대궐 앞으로 나아가 “어찌 국모가 시해되었는데도 그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겠냐”며 “원수를 두 쪽으로 잘라 죽일 일이 있으면 두 쪽으로 잘라 죽이고, 갈아 죽일 일이 있으면 갈아 죽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셨지요. 그때까지 숨죽이고 있던 백성들과 유생들도 이 상소가 계기가 되어 을미의병에 떨쳐 일어났습니다. 홍참판님이나 이건창이나 차라리 대원군과 가깝고 명성황후 측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제일 먼저 일어서신거지요. 그 이건창이 마흔 일곱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떴을 때 애절한 묘지명을 쓰신 분이 참판님이셨습니다.
1903년 참판님의 사위이자 만주에 동행한 이건승의 아들인 석하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이듬해에는 이건승의 며느리이자 참판님의 따님이 남편의 상복을 벗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습니다. 인연이란 이런 건가요? 같이 아들과 사위를 잃고, 같이 딸과 며느리를 잃고, 같이 나라를 잃고... 나라를 잃고 같이 죽자던 맹세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을사년 초겨울 이건승은 간수(양잿물)을 준비했지만 식구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이건창, 이건승 형제의 할아버지 이시원 대감이 병인양요 때 오랑캐가 강화를 점령할 때 관헌들이 다 도망가자 향대부마저 도망가면 후대의 사가가 무어라하랴며 76살의 나이에 간수를 드시고 형제분이 자결을 한 내력이 있었지요. 참판님이 또 다른 딸을 출가시킨 정원하도 간수를 담은 그릇을 빼앗기자 칼로 자진하려 하셨고, 가족들이 칼을 빼앗자 날이 선 칼날을 부여잡고 놓지 않는 바람에 한 손이 영영 불구가 되셨다지요. 경술국치가 있고 구례의 매천 황현이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을 했을 무렵 참판님은 이건승, 정원하 두 사돈이자 벗과 망명을 결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채 4년이 안되어 참판님은 1914년 8월 10일 만주의 풍토병으로 온몸이 퉁퉁부어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된 채 이건승이 지켜보는 가운데 감을 수 없는 눈을 감으셨습니다. 아들 인식이 부음을 듣고 달려왔지만 관 하나 장만할 돈이 없어 이름 모를 동포들이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지체 높은 참판님의 관을 마련해 고향 진천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여러 대에 걸쳐 고관대작이 끊이지 않던 집안에 이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독립운동이 뭐기에 관 하나 살 돈도 남겨두지 않고 그 많은 재산을 다 팔아치우셨습니까? 참판님을 떠나보내며 이건승이 쓴 시가 마음을 후벼팝니다.

‘떠나올 때 손을 잡고 왔더니 ! 오늘 운 만 돌려보내네.
수레는 너무 빨리 지나고 언덕에 내 외침은 막히니
내 발길은 이 물에 막혀 강가에서 홀로 배회할 뿐.
멀리서만 바라보니 간장은 끊어질 듯.

참판님이 돌아가시고 2년 후에는 멀리 의령에서 삼천리 길을 걸어 벗들을 찾아오다 동상에 걸려 다리가 썩은 무처럼 되었던 안효제가 죽고, 1924년 이건승이 죽고, 이듬해 정원하마저 세상을 떴습니다. 민영규 선생이 ‘강화학 최후의 광경’이라 부른 이 장엄한 죽음의 행렬 속에서 세상의 변화에 끝까지 책임을 지려했던 마지막 보수주의자들의 의리를 봅니다. 이건창은 홍참판님과 의리의 출처를 논하면서 우리 몸이 의리를 결정하는 것이며, 우리 마음이 의리를 밝히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몸과 마음이 하나였던 홍참판님과 벗들께 술 한 잔 올리려 합니다. 잔을 든 손이 왜 이리 떨리는지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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