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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발키리 작전, 발퀴레 작전, 7월 20일 사건] - 2

2009-03-07 22:00:59, Hit : 3615

작성자 : 광개토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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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간으로 12월 26일, 작전명 발키리(Valkyrie)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탐 크루즈가 주인공이고 영화의 기본 배경이 나치 시대라는 말에 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새해 첫날 영화를 보고 왔다. 영화는 재미있었고 충분히 만족했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장했기 때문인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발키리의 주된 내용인 20 July Plot에 대해 전혀 몰랐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고,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영화 발키리의 티져 동영상: 탐 크루즈 형아도 이제 늙었구나

영화 발키리 - 반란군 핵심 인물



아래의 사진은 영화 발키리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로, 실제 역사에서도 이들이 주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래 그림에서 맨 왼쪽부터 순서대로--양복 입고 서 있는 아저씨부터--칼 괴들러(Carl_Goerdeler), 알브레트 퀴른하임(Albrecht Mertz von Quirnheim), 프리드리히 올브리쉬트(Friedrich Olbricht), 클라우스 스타우텐버그(Claus von Stauffenberg), 한스 오스터(Hans Oster), 루드윅 벡(Ludwig Beck), 헤닝 트레스코(Henning von Tresckow)이다. 이 중에서 괴들러, 트레스코는 July 20 Plot 당시에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해당 작전과 국한해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중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발키리에 나오는 반란군 놈의 쉐키들: 그렇지만 난 얘네들이 좋다



각 인물의 실제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 나름 비슷하게 생겼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분장한 탐 크루즈가 스타우텐버그와 은근히 비슷함을 볼 수 있다.








클라우스 스타우텐버그와 탐 크루즈: 스타우텐버그도 잘 생겼네?



하지만, 스타우텐버그가 크루즈처럼 잘 생기게만 산 것은 아니었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바와 같이, 1943년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왼쪽 눈, 오른 손, 왼쪽 넷째/다섯째 손가락을 잃은 채 독일로 돌아와야만 했다. 스타우텐버그가 진짜로 아래 사진처럼 입고 다녔을 지도 모르겠다.








안대도 탐 크루즈 형아가 착용하니 분위기 나는데?

발키리 작전

발키리 작전은 독일 예비군(Reserve Army)에 의해 구체화되어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본인에 의해 승인된 작전이다. 본래 발키리 작전은 독일에 큰 사회적 혼란이 있을 경우, 예를 들자면 주요 도시가 침략당하여 통치 체제가 붕괴되거나 강제 노역자에 의한 집단 소요가 발생하는 경우에 사회 안정을 위해 발동될 수 있었다. 

발키리 작전이 특별했던 이유는 독일 예비군 조직의 대부분을 쿠데타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발키리 작전과 관련된 세부 사항을 교묘하게 수정하여, 히틀러가 사망할 경우 독일 전역에 대한 통제권을 넘겨 받고, Schutzstaffel(SS) 및 나치 지도자들을 무력화 할 수 있게끔 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조건 히틀러가 죽어줘야만 했는데, 이는 모든 독일 병사들이 아래와 같은 맹세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발키리가 시작함과 동시에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소리가 바로 이것.


군의 위대한 지도자이나 독일의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할 것임을 신께 신성하게 맹세한다. 용맹스런 군사로서 나는 이 맹세를 위해 언제나 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I swear by God this sacred oath that I shall render unconditionalobedience to Adolf Hitler, the Führer of the German Reich, supremecommander of the armed forces, and that I shall at all times beprepared, as a brave soldier, to give my life for this oath.

7월 20일이 되기까지

1944년 7월 1일, 스타우텐버그는 프레드리히 프롬(Friedrich Fromm) 장군의 수석 참모로 임명되며, 이는 스타우텐버그가 히틀러의 군사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됨을 의미했다. 7월 7일, 헬무드 스티에프(Helmuth Stieff) 장군이 히틀러를 암살하기로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만다. 이를 본 스타우텐버그는 히틀러를 죽임과 동시에 베를린을 장악할 수 있는 작전을 계획하는데, 이는 폭탄 테러 및 발키리 작전의 발동이었다. 그들의 계획대로라면 폭탄 테러가 성공했을 시 히틀러와 함께 있던 고위 관리들이 함께 죽게 되므로, 이 때를 틈타 혼란에 빠진 베를린에 발키리 작전이 발동시킨다면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 발키리 작전의 지휘는 스타우텐버그가 맡게 되어 있었으므로, 나치 집권 세력으로부터의 명령 체제가 복구되기 전에 SS를 비롯한 친나치 군사 세력을 신속하게 제거하고, 스타우텐버그 휘하에 있던 예비군이 독일을 장악하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첫번째 시도는 7월 15일, 스타우텐버그가 폭탄을 들고 히틀러의 비밀 거점으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군사 회의에 중요 인물인 히믈러가 나타나지 않았다. 히틀러와 함께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 허만 괴링(Hermann Göring) 같은 중요 인물을 함께 제거하지 못한다면, 설령 히틀러가 죽게 되더라도 스타우텐버그 측이 베를린을 장악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쿠데타 지도부는 마지막 순간에 거사를 연기하게 되지만, 발키리 작전의 일부가 7월 15일에 실행되었다가 취소되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지만, 위급 순간을 위한 훈련이라도 적당히 둘러댐으로써 발각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7월 18일, 게슈타포(Gestapo)가 해당 사건을 조사하고 있으며 잘못하면 정체가 탄로날 수 있다는 소문이 스타우텐버그에게 전해졌다. 스타우텐버그는 발키리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고, 7월 20일에 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7월 20일 시간대별 상황

아래의 일지는 1944년 7월 20일, 12시 30분부터 24시 30분까지 대략 12시간 동안 있었던 사건을 정리한 것이다.




  • 10:00 - 히틀러의 군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스타우펜버그가 라스텐버그로 떠난다

  • 12:30 - 회의가 시작된 후, 스타우펜버그는 폭탄을 설치하고 자리를 빠져나온다

  • 12:40 - 폭탄이 폭발하여 4명이 죽었으나 히틀러(Hitler) 본인은 살아남는다

  • 13:00 - 스타우펜버그가 자신의 비행기로 돌아온다

  • 15:00 - 스타우펜버그가 베를린으로 돌아온다. 히틀러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전화를 통해 전해지나, 비행기로 돌아온 스타우펜버그는 히틀러가 죽었다고 믿는다

  • 16:00 - 올브리쉬트가 상관인 프롬 대신 발키리 작전을 발동시킨다

  • 16:40 - 스타우펜버그와 베르너 해프튼(Werner Haeften)이 지휘부로 돌아오고, 반항하는 프롬 장군을 감금한다. 반면, 히믈러(Himmler)는 올브리쉬트의 발키리 작전을 취소하게 되며, 이에 따라 독일군의 지휘 체제가 반으로 갈라진다.

  • 19:00 - 히틀러의 상태가 호전되어 조셉 괴벨스(Joseph Goebbels) 수상을 체포하러 온 오토 레머(Otto Remer) 소령과 통화하고, 베틀린을 원상 복구 시키라고 명령한다. 히틀러의 생존 소식을 들은 하인츠 구더리안(Heinz Guderian) 장군은 부대를 베를린 시외로 철수시킨다


  • 20:00 - 히틀러가 살아있음이 분명하게 전해지자, 쿠데타에 미약하게 찬성하던 세력이 입장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내부 분열이 일어난다.

  • 21:00 - 나치가 베를린을 되찾는데 성공한다


  • 23:00 - 프롬 장군이 통제권을 되찾은 후 자신의 쿠데타 연루 사실을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쿠데타 핵심 세력을 진압한다.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달은 벡이 자살한다

  • 24:10 - 프롬이 올브리쉬트, 스타우펜버그, 해프튼, 퀴른하임 등의 핵심 인물을 총살한다

  • 24:30 - SS에서 추후 조사를 위해 더 이상의 사살을 중단시킨다
영화 발키리는 위의 사건 일지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으니, 영화의 각 장면을 떠올려보면서 실제 역사와 연결시켜 보는 것은 어떠할런지.

폭탄 테러가 실패한 이유

스타우펜버그의 폭탄을 이용한 암살의 실패를 돌이켜보면 몇 가지 여운이 남는다. 2005년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송한 Unsolve Story에서 히틀러 폭탄 암살의 실패 요인을 분석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들이 분석한 실패 요인은 아래와 같은 3가지 였다.




  • 플라스틱 폭탄을 한 개만 사용했다

  • 옮겨진 회의 장소가 폭탄의 위력을 반감시켰다

  • 폭탄이 든 서류가방이 테이블 반대쪽으로 옮겨졌다
영화를 보면, 스타우펜버그와 부관이 짧은 시간동안 시한 폭탄을 조립하느라 힘들게 작업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폭탄 1개만을 서류가방에 넣어둔 채 나오게 되는데, 타이머가 활성화되지 않은 폭탄이라도 서류가방 속에 넣어두었다면 연쇄 폭발로 위력이 증가하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스타우펜버그는 군용차를 타고 비행기로 돌아오면서 한 개의 폭탄을 주변에 버리게 되는데, 어차피 버릴 생각이었으면 그냥 서류가방에 두는 것이 어땠을까라는 추측이다.

첫번째 원인이 쿠데타 세력의 잘못이었다면, 두번째와 세번째 원인은 히틀러의 운이 1944년에 다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처럼 더운 날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회의 장소가 기존에 계획되었던 방에서 좀 더 열려진 곳으로 옮겨졌다. 원래의 회의실은 강한 벽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곳이라, 폭탄이 폭발했을 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타격이 극대화된다. 즉, 폭탄을 설계하고 테스트했던 필립 뵈셀라거(Philipp von Boeselager)의 목표 장소에 대한 전제가 무너져버린셈. 옮겨진 곳은 나무로 만들어진 방인데다가 밖으로 창문도 나 있었다. 더군다가 폭탄이 든 서류 가방은 테이블 밑에 놓여지게 되어 있었는데, 테이블의 강도 역시 예상보다 강한 것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20 July Plot은 군사 작전이었으니 예상치 못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아래의 그림을 보면 그 정도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폭탄이 터졌을 때 방안에 있던 사람들의 위치: 히틀러 생명 연장

위의 그림을 보면, 비록 폭발의 위력이 현저하게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폭탄 주변 사람들은 죽었음을 알 수 있다. 분명히 스타우펜버그는 폭탄이 든 서류가방을 히틀러 바로 아래에 놓고 갔는데, 폭탄이 터진 위치는 그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위 그림에서 폭탄 왼쪽의 세로 줄로 표시된 부분은 테이블의 두꺼운 다리 부분이었다. 따라서, 폭탄이 저 위치에 터진다 할 지라도 히틀러 방향으로 가는 대부분의 충격은 테이블이 1차적으로 흡수하고, 그 다음에는 히틀러 오른편에 있던 장교들의 차례였을 것이다. 서류가방의 위치를 옮겨놓은 사람은 하인츠 브랜트(Heindz Brandt)로,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스타우펜버그의 서류가방이 그의 발 방향으로 떨어지자 슬쩍 옆으로 치웠다고 한다. 그렇게 한 덕택에 히틀러 대신에 자기가 죽어버렸으니 참 허무했을 듯.



위와 같은 세 가지 요인에 의해, 히틀러는 찰과상 정도를 입는 수준에서 폭탄테러를 살아남을 수 있었다. 2005년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재현한 폭탄 테러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위의 세 가지 원인 중에 하나만 성립하지 않았더라도 히틀러가 살아남기는 힘들었을 것이라 한다. 반면, 위의 세 가지 원인이 복합된 경우, 똑같은 폭탄 테러를 재현하더라도 히틀러는 실제 역사에 기록된 것과 거의 유사한 정도의 부상만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를 보면 제갈량이 사마의를 계곡에 가둬놓고 불 태워 죽이려는 계획이 성공하려는 찰나, 예상치 않던 비가 내려 사마의가 유유하게 후퇴했던 삼국지의 한 장면이 떠 오른다.








영화 발키리에서 하인츠 브랜트 역을 맡은 탐 홀랜더(Tom Hollander): 캐리비안의 해적 2에도 나온 몸이라구!

베틀린 장악이 실패한 이유

히틀러를 암살한 후 혼란을 틈타 발키리 작전을 통해 베를린을 장악하려 했던 쿠데타 세력의 시도, 그 중에서 베틀린 장악이 실패했던 주된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아닌가 싶다.




  • 히틀러가 죽지 않았다

  • 베를린을 장악하기 위한 예비군의 움직임이 늦었다


  • 괴벨스 수상의 집에 연결된 전화를 차단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히틀러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조건이 다 맞아 떨어졌더라도 결국 쿠데타를 실패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친 쿠데타 세력조차도 히틀러 사망을 전제로 하여 쿠데타에 조심스럽게 동참하였고, 사정을 모르고 스타우펜버그의 명령에 따른 친 나치 세력은 언제라도 히틀러 편을 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번째, 세번째 이유를 든 것은 이들 요건이 만족되었다면 쿠데타가 고작 12시간 안에 제압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일 내부 요인에 의해 전력이 약화되었다면 2차 세계 대전의 종전도 약간은 단축되지 않았을까.

폭탄 테러 실패를 제외한다면, 베를린 장악이 실패한 나머지 원인은 베를린 내에 남아있는 나치 세력을 일거에 제압하지 못한데 있다. 발키리 작전을 통해 히틀러의 친위대인 SS를 통제하고 있는 동안, SS의 핵심부에 있는 나치주의자를 제압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스타우펜버그가 통제하고 있던 예비군을 베를린에 집결시키는 동안 너무 많은 시간이 소모된 반면, 괴벨스 수상의 전화 연결을 차단하지 못했기 때문에 히틀러가 SS 지휘부를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두번째, 세번째 요소가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면, 즉 히틀러가 SS를 장악하기 전에 주변 군사를 이용해 SS 통제권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면 쿠데타가 그리도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에 있던 귄터 클루지(Gunther von Kluge), 폴란드에 있던 헤닝 트레스코 등이 바깥에서 독일을 좀 더 흔들어 줬을지도 모른다.

20 July Plot이 남긴 것

스타우펜버그의 폭탄 테러가 히틀러를 사망시키지는 못 했지만, 그에게 치유되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히틀러의 오른팔을 부분적으로 마비시켰고, 오른쪽 다리에 화상을 입혔으며, 양쪽 고막에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히틀러의 상처는 물리적인 것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으며, 7월 20일의 사건 이후 점점 더 이성을 잃어가게 된다.

광포해진 히틀러는 쿠데타와 관련하여 7000여명을 체포하고, 그 중 4980명을 처형했다. 처형된 사람 중에는 반란군과 나치 사이에서 갈팡질팡헀던 프레드리히 프롬, 사막의 여우라 불린 어윈 롬멜(Erwin Romell), 폴란드와 소련을 침공했던 퀸터 클루지 등의 거물급 장군도 포함된다. 또한, 당시 유명한 지정학자이자 나치에게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칼 하우스호퍼(Karl Haushofer)의 아들 알브레트 하우스호퍼(Albrecht_Haushofer), 양자 이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막스 플랑크(Max Planck)의 아들 어윈 플랑크(Erwin Planck) 등의 지식인 계층도 반란군에 많이 연루되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연히 찾은 Quincy House 블로그에서 흥미로운 글을 찾을 수 있었다. 해당 블로그에 의하면 앨런 덜스(Allen Dulles)는 Germany's Underground: The Anti-Nazi Resistance라는 책에서 20 July Plot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독일에서 보이지 않는 반나치 운동이 있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구성된 그들은 군대와 정부 요직에 스며들었다. 전문가, 교회 지도자, 노동 조합, 고위 관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비록, 전쟁의 승패가 명확해진 후이기는 했지만, 야전사령관 롬멜이나 클루지 역시 나중에 반나치 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회주의적이 아니었고, 수년간 히틀러 신격화와 싸워왔다...... 늦은 활동, 분열, 머뭇거림이나 최종적 실패를 근거삼아 독일 지하 운동을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히틀러와 히믈러 등이 조직해놓은 치안 체계하에서, 벡, 괴들러, 몰크, 로이쉬너, 스타우펜버그가 시도했던 쿠데타보다 더 잘 할 수 있었을까?

There was an anti-Nazi underground working in Germany, despite the general impression to the contrary. It developed out of heterogeneous groups that finally achieved a working unity and reached into the vitals of the army and the government services. Professional men, church and labor leaders, and high commanding officers on various fronts participated. Even Field Marshals [Erwin] Rommel and [Günther] von Kluge finally had a share, but this was late in the day, when they saw that military victory had eluded them. But there were others of a very different moral fiber, both civilian and military, who were not opportunists and who had fought Hitlerism for many years.... It is easy to criticize the German underground for its delays, disunities, vacillations, and ultimate failure. But in a police state such as Hitler and Himmler organized it is not likely that men will do much better than a Beck, a Goerdeler, a Moltke, a Leuschner or a Stauffenberg.

스타우펜버그를 기념하며




히틀러 통치 하에서 실패한 쿠테타로 사라져 간 스타우텐버그 및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 그들을 후세는 잊지 않았다. 독일이 패망하고 2차 세계대전 전범에 대한 심판이 이뤄짐과 동시에, 스타우펜버그를 비롯한 많은 반나치주의자에 대한 복원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아래 사진은 스타우펜버그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 및 우표이다. 이 외에도 이들의 숭고함을 을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어 왔다.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스타우펜버그 기념관: 감옥처럼 생겼다




출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발행된 스타우텐버그, 몰케 기념 우표: 몰케도 20 July Plot 사건으로 죽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상을 위해 노력했던 스타우텐버그 및 많은 지지자들, 그들이 가졌던 숭고함을 잠시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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