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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용감한 이유는?/녹취 진행 최우리 기자

2012-12-30 00:12:41, Hit : 3876

작성자 : 운영자
- Link #1 : 567436.html








사건을 말할 때 매섭던 눈이 사람을 말할 때면 금세 촉촉해졌다.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으로 세상과 싸워온 이상호 기자는 스스로를 “겁이 많고 예민한 성격”이라고 소개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김두식의 고백
기자 이상호
“둘째 줄에서, 최소한 비겁해지진 않으리”

대선 직전에 미리 진행한 이상호 기자 인터뷰를 대선 뒤 정리하려니, 컬러로 찍어놓은 이 기자의 모습이 어느새 흑백으로 퇴색한 느낌입니다. 대선 전후 며칠 동안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뀐데다, 그의 주변에서 워낙 많은 사건이 터진 까닭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10년간 연예계 피아르(PR) 비리, 명품 핸드백 로비, 삼성 엑스(X)파일, 구당 김남수 옹, 탤런트 장자연씨, 가수 김광석씨 사건 등 수많은 폭로와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상호였습니다. 저를 만난 직후인 12월18일 <문화방송>의 김정남 인터뷰 계획을 폭로한 그는 곧장 문화방송 자회사인 엠비시씨앤아이(MBC C&I)에서 보도본부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지금은 해고 위험에 노출된 상태입니다. 매사에 몸을 사리는 제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이처럼 순간마다 새로운 이슈를 만드는 ‘너무 빠른’ 사람에 속합니다. 신촌의 이한열기념관에 자리잡은 ‘고(Go)발뉴스’(www.gobalnews.com) 사무실에서 그를 처음 만나 “그렇게 빠르다 보면 사실 확인이 어렵지 않으냐”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각 잡는 리포트는 시대착오…방송뉴스는 쇼

“오늘 일어난 일을 그날 바로 이야기하는 게 뉴스의 숙명이고 저널리스트의 부담이죠. 그 시점에서 가장 확정적인 팩트를 자기 이름 걸고 보여주는 사관(史官) 같은 존재가 기자예요. 12월11일 밤에 터진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의혹 같은 경우에도 현장의 최초 상황이 가장 중요했어요. 초반에 팩트가 확보되지 않으면 나중에는 공방으로 흐르거든요. 현장에 가서 분 단위로 제가 듣고 본 것을 기록해 놓지 않으면 경찰이 나중에 거짓말해도 알 수가 없으니까요. 저는 그날 현장에서 사실 확인이 물 건너가는 과정 그 자체를 보여준 거예요.”

-김재철 사장에게 직접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전두환 사저 앞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은 일종의 퍼포먼스인가요? 때로는 ‘오버’로 비칠 때도 있는데요.

“방송은 드러내서 보여주는 게 본질이에요. 선배들 중에는 ‘인터뷰 요청하고 거절당하면 그냥 돌아오지, 취재한다고 깝치다가 팔 꺾이고 쪽팔리게 그게 뭐냐’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경찰이 취재를 막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고, 그걸 그대로 보여주는 게 방송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했어요.”

-방송은 신문과 다르군요?

“날림 공사로 30도 넘는 땡볕 더위에 아스팔트가 울퉁불퉁해져 난리가 났다는 기사를 생각해 보세요. 신문은 그렇게 써도 그만이지만, 방송 리포트를 그렇게 하면 빵점이에요. 방송기자는 ‘얼마나 울퉁불퉁한지 병을 한번 굴려보겠습니다’라고 하고 직접 병을 굴려야 해요. 강물이 있으면 ‘얼마나 깊은지 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라고 하고, 때로는 (물 먹는 시늉을 하며) ‘먹어보니 짭짤하네요. 바닷물이네요’라고 보여줘야 하죠. 접근이 달라요. 뉴스는 본질적으로 쇼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방송기자들은 자기들이 고급 저널리스트라 점잖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입말이 아닌 글말의 권력을 휘두르던 신문 저널리즘의 끝자락을 잡고 한자어나 쓰면서 방송기자로 권위를 유지하려는 시대착오적인 동료들이 많죠.”

자기주장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는 인터뷰 내내 일어났다 앉았다, 걸었다 섰다를 반복하며 말과 연기를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난 개성 넘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상호의 표정 연기는 단연 발군이었습니다. 입사 뒤 첫 보도 때 초등학교 입학식장을 보여주며 살짝 미소를 띠었다가 선배들에게 박살이 났다는 사람다웠습니다. 방송에 대한 자기만의 관점도 뚜렷했습니다.

“수백만년 전에 방송언론 환경이 바뀌었어요.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장가간다고 선언하면 그게 바로 연예 뉴스잖아요. 만약 무한도전 멤버들이 ‘내일 대선이니까 선거 얘기를 해볼까. 명수 형부터 얘기해 봐’ 하고, 박명수씨가 ‘내가 뭘 아냐? 그런데 엠비(MB) 정부 심판하는 선거에서 왜 아직도 참여정부 얘기만 하는 거야? 왜 그래?’ 하면 그게 또 뉴스거든요. 지금처럼 엄숙하게 각 잡고 하는 뉴스는 30~40년 전에 하던 거예요. 사람들이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아요. 요즘 방송 3사의 앵커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나요? 각 잡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얘기를 전해야 눈물과 감동이 있는 거예요. <한겨레>에도 토요판이나 esc같이 뉴스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지면이 있잖아요. 제 기준으로는 오히려 토요판이 가장 뉴스 같거든요. 뉴스가 확장되고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거예요. 저는 뉴스가 예능이 되고 예능이 뉴스가 되어야, 살아있는 우리 시대를 담는 그릇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고발뉴스를 보면 삼성을 많이 비판하더군요.

“삼성에 의해 장악된 미디어 환경에서는 독립적인 목소리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에요. 광고뿐만 아니라 협찬과 후원이 어마어마한 규모인데, 요즘은 삼성 없이는 드라마를 만들 수 없다고들 해요. 하지만 드라마는 우리 일상과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잖아요. 예전의 <전원일기>를 보면 소값 파동, 추곡수매 같은 일상의 걱정, 근심, 분노, 위로가 담겨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드라마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시놉시스 들고 대기업을 찾아가서 돈을 당겨 와야 해요. ‘남녀 간의 삼각관계 드라마를 만든다’고 하면, 삼성은 ‘애니콜 새로 나왔으니 대기업 스마트폰 디자인실에 근무하는 사람들로 하자’고 설정을 바꾸는 식이에요. 전원일기는 농약, 제초제 말고는 간접광고할 게 없으니 사라질 수밖에 없죠.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이 삼성의 영향권에 있다고 보면 돼요. 거울이 거울 역할을 못하는 거죠.”

기자로서 취재의 길이 막힌 이상호가 거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방송을 만들고자 시작한 것이 고발뉴스입니다. 2년간의 미국 연수를 마치고 2011년 귀국한 그는 보도국에 발령받지 못하고 엠비시씨앤아이에 파견되어 스마트폰을 위한 ‘손바닥 뉴스’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손바닥 뉴스는 2012년 4월30일 제작진과 아무런 상의 없이 전격적으로 폐지되었고 이 기자는 엉뚱한 광고영업에 내몰렸습니다. 인터넷 방송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문화방송 자회사 소속인 그가 개인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데 문제는 없을까.

“취재하라고 뽑아놓고 취재를 못하게 하니, 문제가 되더라도 다퉈 봐야죠. 제가 이상호닷컴이라고 개인 홈페이지를 만든 게 2000년인데 처음에는 회사에서 홈페이지를 내리라고 수십번 요구했어요. 몇 년 뒤 언론재단에서 기자들에게 블로그 대상을 주면서 그 논란은 끝이 났죠. 기자의 블로그가 언론사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이 바뀐 거예요. 기자들이 트위터를 시작할 때도 그랬고요. 현직 기자들이 팟캐스트를 많이 하고 있는데, 이것도 나중에는 장려하게 될 거예요.”

-고발뉴스의 수익구조는 어떤가요?

“수익구조는 없어요. 고발뉴스 한 회를 정상적으로 제작하려면 1천만원 정도가 드는데, 자발적 정기구독,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고, 출연자들은 모두 무료 봉사예요. 서해성 교수님이나 곽현화씨는 올 때마다 오히려 밥을 사고 있죠. 10명 가까운 직원들이 밥만 먹어도 엄청난 돈이 들어요. 처음에는 제가 선배라고 자연스럽게 밥을 자주 샀는데, 어느 날인가는 얘들이 너무 많이 먹는 거야. (눈이 빨개지며 눈물) 제 마이너스 통장까지 잔고가 없어지면서 주변의 후원을 받게 됐죠.”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위치한 이한열기념관에서 과선배 이한열 열사와 함께.
제 바로 앞에서 한열이 형이
최루탄을 맞았잖아요
그가 없었다면 제가 맞았겠죠
가장 비겁한 게 둘째 줄이고
기자는 거기 설 수밖에 없어요
나이 들수록 그 의미를 생각해요 

불법 레미콘 공장을 폭로했지만
다른 선배가 물타기를 했었죠
그날 보도국을 쭉 둘러봤어요
본받을 선배가 하나라도 있는지…
하나도 없다는 걸 안 뒤에
‘컨베이어벨트’에서 내려왔어요


슈퍼탤런트 대회 나가 뒤풀이 때 사고를 치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상호는 어려서부터 ‘앵무새’로 불렸습니다. 학교든 어디든 밖을 다녀올 때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잘재잘 빠짐없이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우편배달부를 그만두고 다양한 장사를 벌이던 아버지가 몇 차례 부도를 겪으면서 집안은 언제나 “비록 잠깐 흥해도 결국은 그때가 망하기 직전”인 상태였습니다. 소년 이상호는 늘 어떤 이야기로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릴까만 고민했습니다. 부모님은 지금도 온종일 고발뉴스를 보고 트위터를 하면서 아들의 동선을 체크하신다고 합니다. 참다 참다 못 견디면 “국정원 얘기는 위험하지 않니?”라고 전화도 하십니다. 연세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딴 것도 아버지께 박사모를 씌워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집안의 궁핍과 부모님과의 깊은 교감이 시대의 이야기꾼 이상호를 만든 셈입니다. 부모님 못지않게 그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은 1987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만난 1년 선배 이한열이었습니다.

“한열이 형이 2학년 과대표, 제가 1학년 과대표였는데, 경영학과는 학생 수만 많을 뿐 의식 수준이 낮아서 학생회도 친목회에 가까웠어요. 87년 6월9일에도 한열이 형이 ‘내일부터는 시민들이 나올 테니까, 딱 오늘까지만 홍보전에 같이 나가자’고 저를 꼬였어요. 그러면서 자기는 제일 앞줄에 서고 저는 그 뒷줄에 섰죠. 제일 앞줄과 둘째 줄은 완전히 달라요. 첫째 줄이 99의 부담을 진다면 둘째 줄부터는 그 부담이 1로 줄어들죠. 그날 저의 바로 앞에서 한열이 형이 최루탄을 맞았잖아요. 그가 없었다면 제가 맞았을 상황이었죠. (눈물이 글썽) 나이가 들수록 둘째 줄의 의미를 자꾸 생각하게 돼요. 가장 비겁한 게 둘째 줄인데, 기자는 직업적으로 둘째 줄에 설 수밖에 없어요. 첫째 줄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노동 환경과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할 때, 기자는 아무리 훌륭해도 그걸 전하는 둘째 줄밖에 못 되니까요. 남의 삶을 통해 말하는 거간꾼에 불과하죠. 20대 때부터 한열이 형의 삶을 반추하다가 2003년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배달호 열사 취재를 하면서 확신을 갖게 됐어요. 내가 첫째 줄에 서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둘째 줄에서는 비겁해지지 말자!”









이상호의 인생 타임라인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슈퍼탤런트 선발대회에 고학력자가 몰렸다는 1995년 기사를 보면 송윤아, 한젬마 등과 함께 대학원생 이상호씨의 결선 진출 소식이 실려 있더군요. 본인이 맞죠?

“(여전히 눈에는 물기가 있는 상태로) 네, 맞아요. 어려서부터 서예를 하면서 예술가가 되고 싶었어요. 글을 쓰면서 일종의 예술적 체험을 했거든요. 하지만 돈도 없고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미대 간다는 얘기를 못했죠. 대학신문 기자 생활을 했지만 기자 직업은 마지막 호구지책이라고 생각했고, 뭐라도 좋으니 예술이 하고 싶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얼굴은 안 되니까 밤무대 가수라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당시 학교 근처의 예당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가 오디션을 보기도 했죠. 그런데 변대윤 사장님이 그러더군요. ‘중저음도 매력적이고 테크닉도 있지만, 네 현실을 말해주마. 대한민국에서 너만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최소한 20만명은 있다. 강변가요제 나가면 장려상은 받을 수 있고 첫번째 앨범은 내줄 수 있겠지만 두번째 앨범부터는 예상이 어렵다. 연세대 경영학과이니 나 같으면 공부를 하겠다.’ 진실한 말씀 감사하다고 꾸벅 절하고 나왔죠. 대학원 끝날 때쯤 기자로 진로를 정했는데, 기자 준비하려면 신문을 샅샅이 살펴봐야 하잖아요. 그러다가 슈퍼탤런트 뽑는다는 기사를 봤어요. 당선되면 드라마 주연 또는 토크쇼 사회자를 시켜준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토크쇼 진행자라는데 눈이 번쩍 뜨여 출전을 했죠. 나중에 보니 토크쇼는 보조진행자로 여자애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였어요. 제가 잘못 안 거죠.(웃음) 어쨌든 1만4500명 중에서 40명에 들었어요. 긴 기간 합숙도 했는데, 나한테 잘 맞더라고요. 마임도 배우고 근사했어요.”

-타고난 예술적 끼가 있었군요.

“합숙 때는 반장 노릇을 했고, 고2였던 차태현씨는 저한테 연기지도를 받다가 나중에는 대입 과외까지 받았어요. 뭐하다 왔냐고 묻기에 연출하다 왔노라고 거짓말을 했거든요.(웃음) 전두환씨 둘째 며느리가 된 박상아씨가 그랑프리를 했죠.”

-연예계를 깊숙이 들여다볼 기회였겠네요.

“그때부터 진실을 알게 되어 2002년 연예계 피아르비와 노예계약도 고발한 거예요. 슈퍼탤런트 합숙할 때도 밤이면 협찬사 사장들의 술자리에 여자애들만 따로 불려 나갔거든요. 합숙 점수로 평가한다고 했고 피디들이 제가 3등이라고 알려주기도 했는데 최종 선발된 5명에는 제가 빠졌어요. 로비설이 파다했고요. 세상이 이렇구나 깨달았죠. 대회 끝나고 호텔에서 뒤풀이를 하는데 헤드테이블에 드라마국장 등 간부들이 쭉 앉아 있었어요. 제가 가서 ‘케이비에스(KBS)가 국민을 기만하는 것 아니냐? 당신들을 기억하겠다’면서 테이블을 와장창 뒤엎었죠. 그리고 반드시 여의도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했어요. 곧 엠비시 기자가 됐고요.”










이한열기념관에 입주해 있는 발뉴스 사무실에 세워져 있는 실물 크기의 이 기자 사진.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을 받던 시절

-기자 하는 동안 조직 내에서 충돌이 많았죠?

“보도국 3년차 때 제가 어느 자치단체장의 불법 레미콘 공장 운영 비리를 고발했어요. 그 보도가 나가고 며칠 뒤 경제부에서 그 자치단체가 경제를 살리고 있다는 기사를 내더군요. 예나 지금이나 늘 잘나가는 어떤 선배가 쓴, 이른바 ‘반까이 홍보기사’였죠. 그때 제자리에서 일어나 보도국을 쭉 둘러봤어요. 내 기자 삶에서 본받고 싶은 선배가 하나라도 있는지 찾아보려고요.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가만히만 있어도 올라가기 마련인 ‘성장 컨베이어벨트’에서 내려왔어요. 외교부 출입할 때는 부산항 입구에서 미국 핵잠수함이 급부상하다가 민간 어선과 충돌한 사건을 추적했는데, 대통령이 방미하는 시기라며 위에서 보도를 막은 일도 있었어요. 외교부도 저를 비토하고 저도 보도국이 싫어서 2580에 자원해서 나갔죠.”

-거대한 악과 싸우려면 조직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나요? 엑스파일 때도 혼자 너무 좌충우돌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엑스파일은 선택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정치권, 언론, 검찰이 삼성에 장악된 ‘자본의 거버넌스’ 양상이 회복 불가능하게 구조화되는 시점이었으니까요. 이게 내 마지막 리포트여도 좋다고 생각했죠. 사실 한열이 형이 죽은 뒤에는 어차피 제가 40살 넘어 살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든 보도해야 한다는 목표 이외에는 모두 부차적이었고요. 조직 내부의 누구라도 1퍼센트의 적극성을 보였다면 저도 충분히 절충할 의사가 있었어요. 하지만 <조선일보>의 보도 전까지는 회사 전체에서 녹음파일을 들어보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정도였어요. 청와대는 조질 수 있어도 삼성은 비판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게 제가 지속적으로 삼성을 비판하는 이유예요.”

-살면서 제일 추웠던 순간은?

“핸드백 사건 터지고 엑스파일 보도하자고 떼를 쓰던 시절. 점심시간이면 저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점심 뭐 먹을지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완전히 투명인간이었죠. 혼자 여의도공원에 나가서 앉아 있었어요. 공원에 나가보니 의외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제일 따뜻했던 순간은?

“사람들이 저를 믿고 제보해 줄 때.”

뉴스가 예능이 되고 예능이 뉴스가 되기를 꿈꾸는 기자 이상호는, 끊임없이 관객의 반응을 살피며 자신의 다음 동선을 설계하는 노련한 배우 같았습니다. 그만큼 타고난 끼를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대선 이후 닥쳐올 열악한 방송 상황이 어쩌면 그에게 놀라운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터전이 기존의 방송국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녹취·진행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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