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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통합의 조건은 성숙한 민주주의 실천

2013-01-01 01:11:07, Hit : 4307

작성자 : 운영자
- Link #1 : khan_art_view.html?artid=201212312127015&code=990101

새해 첫날 아침이다. 매일같이 장엄하게 반복되는 일출과 일몰이지만 일상에 부대껴 대자연과 천지운행의 신비를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다. 달력이 바뀌었다고 낡은 것이 새것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둔갑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도 시간의 경과를 정의하는 달력이 있기에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인간의 예지력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요란했던 선거가 끝나고 국민은 새 정부를 맞이한다. 오는 2월25일에는 1987년 헌법개정에 의해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시행된 이후 6번째 대통령이 탄생한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박근혜 당선인은 “반세기 동안 극한 분열을 빚어온 갈등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으로 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각계에서 당선인에 대한 기대와 주문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나라 안팎의 상황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듯이 지나친 기대나 목표 설정은 자칫 부메랑처럼 큰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글로벌 경제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저성장과 경기침체, 고용 악화, 소득감소, 가계빚 증가 등의 악순환이 우려된다.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남북한과 미·중·일·러 등 주변 열강의 지도부 개편이 완료된 가운데 북한의 장거리 로켓 개발과 일본의 우익정권 출범으로 동아시아 정세는 판도라상자처럼 불확실성에 싸여 있다. 대선에서 드러난 이념·세대·지역 갈등과 불신의 벽은 단선적 처방으론 해결할 수 없는 난제다. 섣부른 낙관·희망보다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고 앞날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새 정권이 통합을 시대 과제로 내세웠다. 당면한 국가적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국민의 협조와 고통분담이 절실한 만큼 사회통합적 리더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 모두 통합을 화두로 내걸었지만 실패했다. 갈등과 분열은 더 깊어졌다. 통합하자면서 집권자와 집권세력이 추구하는 정책과 가치에 대한 일방적 동의와 협조만 원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소통단절이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질곡의 과거사, 양극화, 분단 현실, 세대 변화 등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지역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근원적 실질적 처방 없이 통합만 외친다고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차이’와 ‘갈등’을 현실로 인정하고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통해 민주적 의사결정이 내려지면 모두가 승복하는 데 있다. 본립도생(本立道生), 기본이 바로 서야 길이 생기는 것이다.

▲ 갈등 해소하려면 근원적 처방 필요

양당제가 정착된 미국을 비롯해 민주주의를 택한 어느 국가든 그들 나름의 뿌리 깊은 갈등·분열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차이’와 ‘갈등’을 증오와 타도 대상으로 삼기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어떻게 그것을 조정하고 민주적 의사 결정을 도출하느냐가 지도자의 정치력이고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이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실천이야말로 사회통합의 선결과제다. 우리는 어떤가. 선거를 핵심제도로 하는 민주사회에서 네편, 내편 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수단·방법 막론하고 이기는 게 최고의 선이라는 전쟁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심지어 같은 진영, 정당 안에서도 그런 논리로 이전투구를 벌이기 일쑤다.

보수와 진보가 결집했다는 지난 대선도 건강한 보수, 진보 가치의 대결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보수는 전가의 보도처럼 색깔론을 또 꺼내들었고 진보는 정권심판론에 매달렸다. 선거를 정책 아닌 선악(善惡)의 대결로 이끌었다. 선거의 사투화(死鬪化)는 우리 정치의 승자독식문화 때문이다. 안정적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해도 집권하면 그들만의 전리품 배분에 여념이 없다. 권력과 언론을 동원해 정권의 위세를 과시하고 비판세력을 무력화할 궁리를 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통합은 연목구어다.

새 정부가 수행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 양극화 해소와 경기회복, 경제민주화, 중소기업 회생, 복지확대,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등 노동대책, 남북관계 개선, 고령화·저출산 대책, 교육 정상화,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 공영방송 정상화 등등…. 하나같이 나라의 장래와 직결된 막중한 과제다. 정권의 단기적 이해를 떠나 미래 정권을 위해 초석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정교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사람’이다. 인사의 난맥상이 정권 위기로 직결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했다. 당선인도 탕평·전문성 인사를 강조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패거리, 편가름 문화, 밀실의 장막에 가려 적재적소에 인재를 기용하지 못하고 결국 ‘코드 인사’로 회귀하기 일쑤다.

어떤 정권도 신뢰의 기반 없이는 사상누각이다. 신뢰는 정권의 도덕성, 민주성에서 비롯된다. 부패 근절의 제도화, 절차의 공정성, 특권과 반칙 배제 등 민주적 원리가 국정 전반에 확산돼야 한다. 경제민주화, 특히 재벌개혁이 강조되는 것도 경제적 승자가 모든 권력을 지배하는 불공정, 불평등 구조를 개혁해야 국가와 시장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단임 대통령들의 실패 교훈 새겨야

여야의 생산적 경쟁 관계가 절실하다. 극심한 당파주의가 정책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한 성공적 국정운영은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의 정당구조에서 대통령이 특정 정파의 수장에 머물러서는 초당적 협력이 쉽지 않다. 야당 역시 비판과 반대만으로 존재이유를 찾는다면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수권세력, 대안세력으로서 신뢰를 얻으려면 자신들의 정책과 가치를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이대로 방치한 채 통합과 신뢰 운위하는 것 또한 공허하다.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미디어 재벌을 육성해 권력과 자본의 언론시장 장악을 획책해온 결과가 어떠했는가. 소통의 창구가 돼야 할 언론이 갈등과 분열의 진원지로 전락한 원인이 무엇인지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단임제 대통령들의 곡절 많은 역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북방외교, 군부의 정치개입 차단, 남북화해와 한반도 긴장완화, 인권 강화, 탈(脫)권위주의 등 나름대로 시대정신을 실천한 성과도 있었지만 임기 말 예외없이 민심이반과 레임덕에 시달렸다. 여기에는 공통적 패턴이 있다. 첫째는 주변 관리 소홀과 정실·연고 인사로 측근·친인척 비리와 국정난맥을 불렀다. 둘째는 단기적 업적 쌓기 등 과욕과 조급증으로 여야 갈등·대립이 심화돼 스스로를 옥죄는 결과를 자초했다. 셋째, 의미 있는 치적을 남겼어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무능 정권으로 낙인찍혔다.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을 기대할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이라지만 결국 멍들고 상처투성이가 돼 청와대를 떠났다. 박근혜 정권은 과연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민심은 천심(天心)이라지만 ‘조석변(朝夕變)’이라고도 한다. 대중은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해결사’인 양 전지전능한 리더십을 열망하지만 ‘대통령의 한계’를 깨닫는 순간부터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리게 마련이다. 대선에서 압승했으나 집권 초반부터 심각한 민심 이반을 겪어야 했던 이명박 정권의 경험은 좋은 반면교사다.

박 당선인은 ‘잘 살아보세’ 신화를 재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신화나 역사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월드컵 신화, 청계천 신화, 안철수 신화, 박정희 신화 같은 것들에 기대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점성술과 다름없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추상적 선의 실현보다 구체적 악의 제거를 위해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5년간 무슨 치적을 남길까 골몰하기보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 제도와 관행 등 ‘현존하는’ 부조리와 악의 제거에 힘쓰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본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대다. 고난과 시련을 딛고 더불어 살아온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탐욕과 물신 사회가 지배하는 ‘나와 그것’의 관계를 ‘나와 너’의 공존·상생 관계로 되돌려야 한다. 그것이 통합이고 ‘민주’와 ‘공화’의 헌법정신이다. “희망이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지만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루쉰) 아무리 현실이 팍팍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해도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경향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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