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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현장에서] 불편한 기억과 현실 앞에서, 잊고 싶은 기억

2008-05-27 19:06:45, Hit : 4648

작성자 : 관리자















  [조사현장에서] 불편한 기억과 현실 앞에서





  잊고 싶은 기억. 하나.

  1995년 스물아홉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한 나는 서른 번째 생일을 맞던 날, 중대장의 긴급호출을 받았다. 소포가 도착했는데 내용물 중에 불법 도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중대장실에 들어간 나는 그제서야 불법 도서라는 그 책의 제
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목민심서 >. 어느 후배가 늙은 신병을 위로하는 마음에서 보내준 책 한 권이 나의 군 수난사의 시작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불려온 선임병과 함께 한 시간에 걸쳐 얼차려를 받는 굴욕 끝에 나는 “그 책이 왜 문제가 됩니까”라고 물을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게 돌아 온 답은 “상관지시 불이행”이라는 명목으로 군기교육대 입소 대기하라는 명령뿐이었다. 어이없는 분노에 휩싸여 군장을 싸고 군기교육대에 입소하기 위해 1시간 정도 대기하고 있는데, 중대장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건넨 한마디 말은 나를 거의 공황의 상태로까지 몰고 갔다. 그 책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사고를 치면 자기까지 책임문제 발생한다며 사전에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얼차려를 준 것이라고 나를 따뜻이(?) 안아주었다. “사고 치지 말라”고 얘기하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꿈속에서 나를 괴롭힌다.

  잊고 싶은 기억. 둘.

   후임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던 고참병장이 있었다. 병역특례로 군 면제를 받을 수 있었는데도 자원입대해 성실함의 모범을 보였던 선임이었다. 어느 날 그는 중대장의 호출에 약간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로 시멘트 바닥에서 ‘원산폭격’이라는 얼차려를 받아야 했다. 얼차려를 지시하고 난 후, 중대장은 자리를 떠났고 원산폭격은 한 시간이나 지속됐다. 시멘트 바닥에서 마치 감전된 듯 떨고 있던 선임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고통의 시간이 지난 후 선임은 쓰러졌고 그의 마음도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시원스레 웃으며 박수를 치다가도 중대장이라는 말만 나오면 그의 미소는 처참하게 일그러져갔다. 굴욕감 속에 방치된 그에게 어떤 조치도 취해 지지 않았고 누구 한 사람 들어줄 이도 없었다. 전역 회식을 하던 날 “군 생활 전체가 지독한 악몽으로 남았다, 군에 온 것을 후회한다”며 울던 그의 모습이 너무나 아프고도 씁쓸한 기억으로 남았다.

  현실이 된 기억. 하나.

  이등병이 있었다. 몸놀림이 재지 못해 모두에게 놀림을 받곤 했지만, 최선을 다해 군 생활을 하던 그였다. 그러나 그에게 태권도 교육훈련 시간은 악몽이었다.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시작된 태권도 교육훈련에서 그는 다리를 다쳤고 이어 선임들과 지휘관들의 ‘갈굼’ 대상이 되었다. 지휘관에게 병사들의 태권도 단증은 자신이 ‘우수지휘관’임을 입증해주는 지표였고 좀 더 빠른 진급을 보장해주는 지름길이었다. 아픈 다리를 끌며 매일 진행되는 태권도 교육에 참가한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얼차려’와 고참들의 욕설뿐이었다. 그가 생각한 유일한 살 길은 휴가였다. 지휘관에게는 차마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부대 상담병사였던 분대장에게 간곡히 휴가를 청원했다. 그러나 이 희망은 태권도 승단시험을 앞두고 묵살되었고, 그는 사고 당일 또 다시 작전에 투입되었다. 작전에 투입된 후, 이동하는 과정에서 지휘관은 “군기가 빠졌다”며 질책하였고, 선임들은 “이등병이 빠져서 다리를 전다”하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결국 그는 죽음을 택하였다. 그러나 당시 지휘관들은 자신들의 헛된 공명심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지금도 그를 고문관으로만 기억한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실에 들어선 지휘관이 말하기를, 나약한 그의 죽음이 자신의 진급에 장애가 되었다고 한다. 너무도 당당하게 ‘내 인생이 틀어졌다’고 말한다.

  현실이 된 기억. 둘.

   무려 6년이란 세월 동안, 군 생활을 한 상병이 있었다. 군에 적응하지 못해 한 번 탈영을 했다가 처벌을 받은 후 다시 복귀하여 군복무를 하던 사람이었다. 제대할 날짜가 돌아왔으나, 김신조 사건으로 전역 일자가 연기되었고 추가 복무를 하던 중 그가 죽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철저히 가려졌다. 그의 사망사실을 기록한 매화장보고서에는 ‘탈영 중 익사하여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었고 탈영한 사실을 목격한 병사의 이름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가족에게는 ‘아버지가 문제 사병이었다’는 초라한 편지만 전달되었을 뿐이다. 조사 결과, 탈영을 목격하였다는 병사는 당시 타 부대에 파견 근무 중이었고 사망한 병사의 이름도 알지 못하였다. 위병 근무 중 탈영하였다고 군 기록은 말하지만 그는 당시 취사병이었고 위병 근무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 그가 남기고 간 것은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뿐이었다. 그의 두 아들은 갈 곳이 없어 고아원과 친척집에 버려졌다. 큰아들은 동생을 데려오기 위해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IMF 라는 절망 속에 또다시 삶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했다. 아니 사투를 벌이고 있다. 만약 아버지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현재 삶이 이렇게도 고단할까? 지휘관들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왜 감추고자 했을까? 이미 한 번의 죄과를 치른 그에게 또다시 탈영병이라는 죄명을 씌운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죽음은 여전히 탈영병의 죽음으로 기록되어 남아있을 뿐이다.

  이 불편한 현실 앞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불편한 현실은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나는 지금 너무나 불편하다. 진실을 감추어 부당한 현실을 정당화시키는 권력과 한 사람의 죽음에 ‘탈영병, 자살자’라는 낙인을 서슴없이 찍을 수 있는 오만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들은 군이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아니 이미 변화하였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1995년 나의 불편한 기억은 1969년과 2005년의 현실이었다. 여전히 인권은 국가와 군이라는 이름 앞에 갇혀 있고 어떤 해방도 용인하지 않는다. 폭력과 얼차려, 죽음에 이르기까지 망인이 벌였던 최소한의 자구노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지휘관은 그를 객관적 인격체로 존중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들이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휘관들에게 그의 죽음에 관한 기억을 물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또 하나의 불편한 현실인 것이다.

  아마 북유럽의 군대였다면 대형소송으로 이어졌을 것이 분명한 이 불편한 기억과 현실 앞에 우리의 사법체계는 여전히 집단주의와 군이라는 특수 상황만을 내세울 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폭력도 용납 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와 감시의 틀조차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북전쟁기간에도 대체복무를 인정했던 미국의 경험과 폭력과 집단주의에 맞설 수 있는 사법 권리를 보장한 유럽의 경험을 인정하지 않은 채, 우리사회가 반성 없이 살아간다면 이 불편한 기억은 언제까지나 현실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글 : 김중철(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특별조사팀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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