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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시평]선거라는 포르노 중독 /엄기호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2013-01-20 06:55:41, Hit : 4357

작성자 : 운영자
- Link #1 : khan_art_view.html?artid=201301182127575&code=990100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정치’로부터 ‘도망’ 다녔다. 한동안 뉴스며 신문을 들쳐보지 않았다. 평소 ‘정치’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뉴스’를 끼고 살다가 ‘정치’로부터 도망 다닌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결과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앞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정치가 더 겁이 났다.

그러다 우연히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와는 상관이 없는 <음식 문맹자, 음식을 만나다>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 안에 국제슬로푸드 협회의 카를로 페트리니 회장이 2010년 한국에 와서 한 말이 눈에 들어왔다. “요리에만 관심 있고, 농업에 관심이 없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농업에 대해 얘기 않고 음식만 이야기하는 것은 음식 포르노입니다”라는 구절이었다. 농업은 이야기하지 않고, 음식 포르노에 중독된 사람들은 농업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유기농이니 ‘웰빙’이니 하고 떠든다. 오로지 자기 입안에서 혀의 쾌락과 몸의 ‘안전’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걸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선 이후 내가 겪고 있는 ‘병명’이 무엇인지를 단번에 깨달았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은 ‘멘붕’이 아니었다. 나는 ‘선거’라는 포르노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중독자’였다. 선거 내내 나는 평소에 말하던 고통과 상처를 공유하는 연대라는 정치는 뒷전으로 미루고 선거와 투표율이라는 입속의 쾌락에 놀아났다. 돌이켜보니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보여준 모습은 정말 포르노 보기와 닮아 있다.

오래전 포르노를 구하기가 힘든 시절에 그거 한번 보겠다고 우르르 몰려다녔다. 포르노는 순진한 범생이와 여자를 ‘아는’ 우리를 구별지었다. ‘깨어있는’ 우리는 무지한 그들을 비웃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이 정말 ‘여자’였을까? 천만에. 우리야말로 대부분 정작 여학생 손 한번 잡아본 적이 없는 ‘찌질이’들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뻐겼지만 그 속은 매우 헛헛했고 도대체 여자란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그러니 도올의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두근거리며 열었다가 매우 실망한 ‘청춘’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비난받아야 할 것은 찌질한 우리가 아니다. 당시 우리는 찌질할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이웃 여고 학생들을 만나거나 ‘얼굴을 마주보는’ 것은 금지돼 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포르노를 갖고 있다가 걸리면 죽도록 얻어터졌지만 동시에 용납되는 분위기였다. 몽둥이 찜질을 하고 난 다음에 “너희도 사내라고” 하며 씩 웃는 학생주임의 끈적한 웃음이 우리를 정당화해줬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허용된 정치는 선거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선거’라는 정치의 포르노에 빠져버린 것일 테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몫이다. 국가가 알아서 우리를 중독에서 건져낼 리는 만무하다. 그들은 가급적 우리를 정치에서 소외시키고 정치를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치를 일상으로 끌어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삶, 어디에나 존재하는 정치와 대면하는 힘과 언어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눈을 뜨기도 전에 투표소로 달려갔던 부모 세대, 자신이 부모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모와 반대로 투표했다는 학생, 그들과 만나는 거실과 교실에 우리가 정작 맞닥뜨려야 하는 정치가 있다.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짜증’을 내는 것 말고 ‘우리’에게 어떤 언어가 있는가? 명쾌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모욕감만 가중시켜 우리를 더 고립시키는 언어 말고 다른 어떤 언어가 있는가? 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낯섦과 대면하고 관계를 맺는 농사는 짓지 못하고 ‘표’라는 음식의 달콤함에만 취해 있었다. 따라서 다음 5년은 둥글게 모여앉아 지혜를 모아 이 언어를 지어내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경향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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