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을 유혈진압하고 출범한 전두환 정권은 1981년 5월 ‘국풍 81’이라는 대규모 문화축제행사를 개최하고 KBS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광주항쟁 1주년을 맞아 광주에 쏠리는 국민적 관심을 잠재우고, 독재정권을 미화하기 위해 마련한 전형적인 관제(官製) 행사였다. 정권의 핵심인사였던 허문도 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총괄기획을 맡고, 이원홍 KBS 사장이 홍보대행 총책을 자임한 ‘정·언일체’의 작품이기도 했다.
30년 전의 ‘국풍’ 얘기를 새삼스레 거론하는 까닭은 이명박 정부와 KBS가 4대강 홍보를 위해 보여주고 있는 낯뜨거운 행태가 국풍 시절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최종원 의원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월11일 KBS에 공문을 보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주 남한강가을축제’에 KBS <열린음악회> 프로그램을 편성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요청에 따라 KBS는 내일 여주 현암강변공원에서 <열린음악회>를 개최한다. <열린음악회>뿐만 아니다. 충남 부여 금강축제에는 <콘서트 7080>이, 경북 안동 낙동강 축제에는 KBS 국악단 초청공연이 계획돼 있다. 4대강 보 등이 완공되는 9월 말~10월 초에 KBS가 주관하는 4대강 홍보 프로그램이 일제히 열리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권홍보 프로그램에 대한 유혹을 떨치고 방송사의 편성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 정권을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관변 프로그램이 당장은 달콤한 꿀 같지만 결국 자신을 치명적으로 해치는 독이라는 사실을 정권 담당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전두환 정권이 모든 힘을 쏟아부어 그렇게 홍보에 매달렸지만 그 결과는 5공 청산이라는 엄중한 역사가 생생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KBS도 이제는 이명박 정권의 홍보대행사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권이 강압적으로 요구한다고 하지만, 사실 KBS가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는다면 정부정책을 무조건 찬양선전하는 프로그램은 쉽사리 나올 수 없다. KBS의 방송강령 2항과 9항은 각각 ‘방송편성의 자율성은 보장돼야 한다’, ‘정부나 공공기관, 기업의 일방적인 선전에 이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강령이 사문화되지 않으려면 결국 KBS 구성원들이 강령의 내용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수밖에 없다. 방송편성의 자율성은 외부인이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방송인 스스로가 싸워 지키는 것이다. <열린음악회>는 정권이 아니라 국민과 시청자를 위해 열려야 한다.<경향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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