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에 입산하는 심정으로 훌쩍 미국으로 떠나와 뉴미디어와 사회운동을 공부했다. 지금은 버지니아의 올드도미니언대학에서 시민저널리즘과 디지탈 글쓰기를 가르친다. 디지탈네트워크를 통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새로운 소통의 장을 열고 일상과 정치의 경계를 재편하는지, 그 광속의 변화상을 추적 관찰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1978년 당시 하바나 연설중 피델 카스트로.
내가비겁했다
오랫동안 훅에 원고를 쓰지 못했다. 벼르고 별러 원고를 쓰고 막 보내려는 순간, 연평도 소식을 접했다. 하루종일 황망하고 허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원래 썼던 글을 그대로 보내면, 이 시기에 물정도 모르고 한가한 소리 한다고 몰매 맞을 일이 내심 걱정되었다. 완전히 다시 쓰거나, 아예 새로운 주제로 쓸까, 이럴 때 평화주의자들은 뭐라고 얘길 할까 일단 움츠리고 관망하기로 했다. 오래전에 김두식 교수가 쓴 책 『칼을 쳐서 보습을』을 꺼내서 “정당한 전쟁”론에 대한 비판의 논거들을 다시 읽었다. 머리로는 따라가지만 그걸 가슴으로 풀어낼 수가 없었다. 논리적 서술로 풀어내기에 현실의 절박함이 너무 강렬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아예 전쟁용 프로파간다 보도로 돌입했다. 북한이 왜 이런 짓을 했을까. 뭘 원하는 걸까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진단, 우리측의 대응에 무슨 문제가 있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한 갑론을박, 북한 재공격과 그에 대한 응전 시나리오, 그러는 사이 경쟁이라도 하듯 전쟁불사론은 전쟁불가피론으로 자가발전하고 강렬한 언어가 주는 광기에 휘말려 자고새면 더 자극적인, 더 공격적인 언어들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내가 비겁했다. 더는 못견디겠어서 속에서 울컥울컥 치미는 말을 그냥 뱉어 버려야겠다. “전쟁은 미친 짓이다.” “그 미친 짓을 하자고 떠드는 니들, 다 미쳤다.”
오래 된 레퍼토리, 북한위기설
그러나 나는 안다.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한 가지.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의 분쟁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쉽사리 전면전으로 가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는 거기 있다. 전쟁은 아니면서 늘 전쟁 중인 상태. 이 싸움이 쉽지 않은 건, 우리가 안개 같은 전쟁의 유령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유령이 원하는 건 전쟁이 내거는 고상한 명분이 아니라 전쟁 분위기 조성으로 얻는 떡고물이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공존이 안되는 진짜 이유는, 긴장 고조와 적대적 대치를 통해서 떡고물을 챙기는 이들이 양쪽에서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나 북이나 흘러간 유행가 자락 같은 전쟁 레퍼토리를 참 오래도 우려먹었다. 우리가 벌여야 하는 진짜 전쟁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남과 북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전쟁의 유령을 앞세워 이득을 챙기려는 남과 북의 모든 광기 어린 전쟁기회주의자들과의 전면전이다.
나는 세칭 안보전문가들의 진단과 분석에 우리의 의제를 종속시키는 데 반대한다. 그들은 현존하는 역학관계에 대한 공학적 분석과 대응책을 내놓지만 생산적인 담론을 선도하지는 못한다. 북한이 벼랑 끝에 서있고 후계구도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런 도발을 획책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전문가들의 진단을 근거로, 북한 붕괴가 임박했으니 우리는 숟가락 하나만 얹으면 게임 끝이라는 초간단 전쟁 매뉴얼이 제시된다. 북한위기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오래된 뉴스다. 톡 하고 건드리면 뻥 하고 터져버릴 거라는 단순 무식한 설정은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에서나 가능한 판타지다. 막강한 화력을 갖춘 미국이 며칠 안으로 화끈하게 끝낼 것처럼 보였던 이라크전은 7년이 넘는 장기전이 되었고, 알카에다와 탈레반세력을 끝장내겠다고 나선 아프간전에서 미군과 연합군이 십년이 다되도록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이런 B급 시나리오에서는 아예 도외시된다. 현실을 뛰어넘는 초현실주의적 몽상은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연평도에 2차 충돌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꼬리를 무는 가운데, 한나라당 일부의원들이 연초부터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나섰다. “김정은은 사생아다. 김정은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는 내용으로 “진실의 풍선날리기”를 하겠단다. 그 전단이 북한 상공에 살포되면 진실에 목마른 북한 주민들이 대오각성해서 김정일에 반대하는 쿠데타에 가담할 것이라고 그들은 진짜 믿는 것인지 난 정말 궁금하다.
미국의 프로파간다 전쟁
미국과 쿠바 간의 프로파간다전을 연구한 펜실베니아 스테이트 대학의 존 스파이서 니콜스 (John Spicer Nichols) 교수는 적성국에 대한 프로파간다가 별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킨다고 단언한다. 미국과 쿠바 간 프로파간다 전쟁은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은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쿠바 국토의 4분의 1에 달하는 사탕수수 농장과 독점적 공장설비를 몰수당한 미국 자본과 쿠바 지주세력은 절치부심 복수의 날만을 고대했다. 1961년 미국 CIA의 지휘 아래 쿠바 망명자들로 구성된 우익민병대가 카스트로정권의 무력 전복을 도모했던 피그만 상륙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 냉전세력은 쿠바를 “민주화”하기 위한 비밀작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재임시절 CIA는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위한 비밀 프로젝트, 일명 몽구스작전 (Operation Mongoose)을 실행했는데 그 작전의 일환으로 카스트로 암살 모의와 주요 산업체의 태업 및 교란은 물론 카스트로의 “턱수염 제거작전”까지도 기획되었다. 턱수염 없는 카스트로는 머리카락 잘린 삼손, 카리스마 잃은 지도자라는 발상에서였다. 모든 수단을 동원한 프로파간다도 이 몽구스작전 아래 행해졌다. 선상이나 잠수함에서의 방송 송출, 전단의 공중살포, 루머와 반공 만화책 살포 등 육해공 합동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 작전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았던 에드워드 랜스데일 장군은 이러한 프로파간다가 쿠바 내 반카스트로 쿠데타 모의에 불을 댕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몽구스 작전 기밀문서 (1962): "핵심 고위층" (higher authority)이 몽구스작전에 깊숙이 개입해서 태업작전에 중점을 두라고 지시했다는 점과, 주요 목표 (major target)에 대한 세 번의 공격이 실패한 후 랜스데일 장군이 새로운 작전을 시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여섯번의 추가 공격이 준비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 주요 목표가 피델 카스트로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베트남전이 장기화하면서 반쿠바 프로파간다전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서는 듯하더니 레이건 대통령 시절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전직이 영화배우인 레이건 대통령은 프로파간다 방송의 효과에 대해 신앙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미국이 압도적인 장비와 주파수와 프로그램으로 쿠바인들에게 “진실”을 알린다면 그들이 분연히 떨쳐일어나 정변을 일으킬 거라고 믿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반카스트로전의 일익을 담당할 민간조직으로 재미쿠바인들이 주축이 된 CANF (Cuban American National Foundation)의 결성을 지원했는데, 의회와 언론을 대상으로 한 CANF의 활발한 로비에 힘입어 1985년 “라디오 마티 (Radio Marti)”가, 뒤이어 1990년에는 “텔레비전 마티 (Television Marti)”가 의회의 승인을 거쳐 설립되었다. 모두 카스트로 제거와 쿠바 “민주화”를 목표로 내 건 프로파간다 방송이었다. 막대한 물적 인적자원이 이들 방송에 투입되었고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다. 피델 카스트로의 지도적 권위는, 2008년 그가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줄 때까지 큰 흔들림없이 이어졌고, 쿠바정권은 망하지 않았다. CANF의 쿠바민주화작전은 성사되지 못했고, 대신 국제 테러에 가담했다는 의혹과 비난에 여러 차례 직면해야 했다.
프로파간다의 종착지
니콜스는 프로파간다가 상대국 국민들의 생각을 바꾸거나 설득하는 데 거의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의도치 않은 이적(利敵)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피델 카스트로는 미국의 프로파간다전에 대항해서 “라디오 하바나 쿠바”나 “라디오 프리딕시”와 같은 반미 프로파간다 방송으로 맞대응했고, 미국의 프로파간다전으로 고조된 쿠바인들의 위기의식을 오히려 쿠바 민족주의 강화와 정권 안정을 위해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카스트로가 벌인 가장 성공적인 작전 중의 하나는, 미국의 전파를 차단한다는 목적으로 쿠바 상공에 직접 비행 편대를 띄운 일이었다. 쿠바인들의 머리 위에서 큰 소리를 내며 선회하는 비행대열은, “보이지 않는” 미국 전파의 침투를 “보이는” 외세의 개입으로 가시화하는 데 더없이 효과적이었다. 카스트로는 미국이 벌이는 프로파간다 공세를 차단하려 한 게 아니라, 그 공세를 확실하게 드러내 시각화한 것이다. 이 드라마틱한 항공쇼를 통해 카스트로는 매우 선명하게 쿠바 국민들을 향해 말할 수 있었다. “보이냐 저들의 공세가. 우리 머릿속까지 뚫고 들어오려 한다. 그러니 안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 1994년 미국 대통령 자문위원회의 증인으로 나온 라디오 마티의 초대 감독 에르네스토 베탄코트는 미국의 프로파간다방송이 역으로 “카스트로에게 프로파간다적 승리를 안겨 주었다”고 공식 증언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프로파간다 방송은 그 효과에 대한 숱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2008년 당시 라디오 마티 스튜디오 모습.
자기 지도자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 국민일지라도, 외부세력이 자기 나라 정치에 관여하고 지도자를 비난하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프로파간다의 역사와 기법, 효과를 가르치는 미디어 수업에서 학생들과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대해서 자유토론을 하게 했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판적이었다. 그 뒤 베네주엘라 대통령 차베스가 조지 부시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찾아 보여 주었다. 차베스는 조지 부시가 “멍청하고” “제국주의적”이며 “독선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에게 비디오를 본 소감을 물었다. 잠잠했다. 누군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 정적 속에 망설임과 혼돈과 갈등이 교차했다. 몇 학생을 직접 지목하며 다시 물었다.
“아까 너희들이 말한 내용과 비슷한 것 같은데?”
미적거리다가 그 중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어떻게 다른데?”
“…모르겠어요.”
뭐가 다를까. 내가 내 대통령을 욕하는 것과 다른 나라 지도자가 우리 대통령을 욕하는 게 다른 거다. 논리적으로야 크게 다를 게 없다해도 일단 기분 나쁜 거다. 니들이 뭔데 우리 문제에 간섭하느냐 반감이 앞서는 법이다. 니콜스는 앞서 인용한 글에서, 1999년 코소보전 당시 세르비아 대학생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나토 연합군이 세르비아 수도에서 밀로세비치 대통령을 맹비난하는 전단을 살포하고 텔레비전 방송을 내보냈다. 당시 밀로세비치 대통령의 학정에 대해 누구보다도 비판적이었던 세르비아대학 학생들은 그러나,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나토의 전단과 방송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우리도 밀로세비치가 싫어요. 하지만 적어도 그는 우리 사람이잖아요 (We hate Milosevic, but at least he’s ours).”
이렇게 부질없고 실속없고 역효과만 나는 프로파간다가 중단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파간다의 타겟이 되는 적성군 국민들에게는 효과가 없지만 이것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 그 해답은 자국 내 정치에 있다. 프로파간다를 중단하자고 주장해서 얻을 수 있는 표는 불확실한 반면, 쿠바민주화를 위해 싸우자고 소리쳐서 얻을 수 있는 표는 확실할 때, 미국 내의 비둘기파와 매파의 차별성은 사라지고 만다. 국가의 득실보다 말초적 표심잡기가 우선한다. 특히 이런 현상은 플로리다나 뉴저지처럼 쿠바이민자들이 많고 돈 많은 쿠바 망명자 조직이 위력을 떨치는 지역에서 두드러졌다는 게 니콜스 주장이다.
대부분의 국가 간 프로파간다는 이데올로기적 자위행위 (ideological masturbation)이다. 프로파간다의 외부적 효과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해도, 이것을 통해 국내 정치적인 긴장이 완충될 수 있다. 프로파간다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자극을 받긴 하지만, 일차적 동기는 국내적인 것이다. (니콜스, “미국-쿠바 프로파간다전” 중에서)
우리의 피할 수 없는 한 판
“김정은 사생아” 풍선날리기 운동을 벌이는 여당 의원들은 북한 인권법 제정에도 박차를 가해서 대북전단 살포에 정부 예산을 이끌어내겠다고 장담한다. 미국의 북한 인권법이 그 모델이라고 한다. 미국의 2004년 북한인권법 (North Korea Human Rights Act)을 보면, 북한 내 인권과 민주주의, 시장경제 발전을 위한 비영리조직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며, 북한 내외의 “자유로운 정보” 유통을 촉진하기 위해 하루 12시간 방송을 목표로 라디오 프리 아시아 (Radio Free Asia)와 미국의 소리 방송 (Voice of America) 등에 매년 2백만 달러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레이건의 대쿠바 정책과 매우 흡사하다. 역사는 흘러도 선례는 답습된다. 쿠바 프로파간다전이 돈 쓰고 긴장만 고조시키고 카스트로 좋은 일만 시키는 줄 알면서도 저지되지 못한 정치적 사정이 행여 이 땅에서도 재연될까 걱정이다. 1998년에 제정된 미국의 이라크해방법 (Iraq Liberation Act)은 이라크전쟁의 합법적 근거가 되었고 2003년에 제정된 이란민주화법 (Iran Democracy Act) 역시 이란에 대한 제재와 긴장 고조의 법률적 근거가 되었다. 북한 인권법이 제정된다면 그것이 전쟁도발의 법률적 근거가 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
남과 북이 누가 더 언성을 높일 수 있으며 누가 더 공격적일 수 있는지 경쟁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지난 수십년 간 북쪽의 집권층은 “전쟁위기론”으로 내부를 추슬러 왔고 남쪽의 일부 정치세력은 “북한위기설”로 전쟁 모드를 조장해 왔다. 안보 위기론에 기대있다는 점에서 두 세력은 닮은 꼴이다. 이들은 적대적 대치를 통해서 공생한다. 이들 세력 간의 우매한 도박판에 우리의 생명과 안전이 판돈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 상황을 전환할 유일한 돌파구는 보통 사람들의 머리와 양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식, 때로는 금기시되기도 했던 잃어버린 상식을 복구하는 데서 나온다. 성스러운 전쟁이란 없다. 어떤 이름으로 치장을 한다 해도 어떤 합법적 명분을 단다 해도 전쟁은 죽고 죽이는 머릿수 싸움이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싶지도, 그런 사람의 총에 맞아 죽고 싶지도 않다. 사람의 목숨과 안전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그것이 내가 가진 상식이다. 맹목과 독선, 알량한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 전쟁을 부추기는 이들이 뭉개버린 우리의 상식을 복구해야 한다. 반전과 평화는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절박한 생존의 조건이다. 평화를 몽상이라고 폄하하는 이들이 몽상가들이다. 가장 현명하고 현실적인 결단은, 내 가족과 이웃의 생명과 안보를 위해서 반전을 외치는 것이다. <한겨레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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