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공정성, ‘종편’ 퍼주기 논란에 시청료납부거부운동 일 전망
시민사회진영이 KBS 시청료 납부 거부를 천명하면서 언론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할 전망이다. 지난 한 해 동안 국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미디어법 개정 전선이 올 해 <제2의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지난 1월 4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출입기자들과의 신년인사 자리에서 KBS 수신료는 현행 2,500원에서 5000~6000원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히면서 도화선을 제공한 것이다. 또한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의 김인규 KBS 사장도 신년사를 통해 수신료 인상을 ‘숙원사업’으로 꼽으며 불을 지폈다.
그러나 이는 즉각적으로 시민사회진영에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는 꼴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KBS 정연주 사장 해임과 이병순 사장 취임, YTN 사태, PD수첩 검찰 수사 등 정권의 언론장악과 지난해 미디어법 개정, MBC에 대한 인사개입 등의 일련의 과정에서 무력하기까지 했던 시민사회진영이 모처럼 한목소리로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시청료 납부거부운동의 신호탄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가 쏘았다. 최시중 위원장의 시청료 인상 발언이 있은 다음날 자신의 블로그 ‘원순닷컴’(http://wonsoon.com/)에 “나는 새해 벽두. 이렇게 결심했다. 앞으로 KBS는 일체 보지 않겠다고, 그러니 시청료는 내지 않겠다”며 공개적으로 시청료거부운동을 제안한 것이다.
그는 이 글에서 KBS뉴스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땡전뉴스로 되돌아가 권력의 시녀가 됐다며 “국민들이 이에 동의한다면 공동의 행동을 취할 것을 요청드린다”며 각계의 동참을 호소한 것이다.
이에 정치권과 시민단체, 그리고 한겨례와 경향이 일제히 이에 호응하면서 야권과 시민단체가 미디어법 개정투쟁에 이어 다시 결집한 것이다.
시민사회진영에서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6일 오후 ‘제2의 시청료 거부운동 불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불을 당겼고, 8일에는 지난 2008년 조중동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전개해 주목을 받고 있는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이 동참하겠다는 결의를 나타냈다.
진보언론도 신속하게 대응했다. 7일 경향과 한겨레신문은 ‘공영성 팽개치고 수신료 올리려는 저의’,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 시도, 거부운동만 부를 것’이란 사설을 각각 게재하고 KBS 수신료 거부운동의 진지망을 세웠다.
민주당 등 야권은 시민사회진영의 이러한 움직임을 반기고 있다. 미디어법 전쟁에서의 패배무력감을 떨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7일 대변인 논평으로 “국민은 공영방송의 기능을 상실한 정권의 친위 방송에게는 시청료를 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정권은 이러한 국민의 생각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며 거들었다.
시민사회진영 반발에 방통위, 조중동 등 일단 주춤
이처럼 야권과 시민사회진영이 정부의 KBS시청료 인상 움직임에 신속하고도 강력한 저항모드에 돌입하자 정부와 여당 그리고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지난 해 미디어법 개정의 승자들은 일단 주춤하고 있다.
최시중 위원장의 발언 이후 정부쪽에서는 더 이상의 발언들이 나오지 않고 있으며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서도 이에 대한 기사나 언급들을 삼가하고 있다. 이는 종합편성방송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다가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제2의 시청료거부운동의 방아쇠는 정부측이 쥐고 있다. 정부가 시청료 인상을 결정하는 순간 시청료 거부운동은 자동으로 뇌관이 터지도록 설계돼 있다. 따라서 정부는 시청료 인상시기를 6.2지방선거를 피해 결정해야 그 파괴력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보수언론 또한 부담이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KBS 시청료 인상 논의시 이를 강하게 반대한 전력이 있다. 지금 당장 이를 뒤집을 경우 자사의 이익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여론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편방송 선정 또한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논란만 확산시킬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시청료 인상시 7-8천억 원 광고시장 생겨...종편으로선 놓칠 수 없어
그러나 정부로서는 KBS 시청료 인상은 조중동 방송의 생존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종편 출범전까지는 마무리져야 하는 입장이다. 최시중 위원장의 “KBS가 수신료를 인상하면 7천~8천억 원 규모의 광고가 민간시장으로 이전되는 효과를 낼 것”이란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 총가구수는 약 1천7백만 가구다. 시청료를 3천원 인상시 시청료 인상분이 월 기준으로 510억 원이며 연간으로는 6천억 원이 넘어간다. 이럴 경우 KBS에 몰려 있던 방송광고가 대거 시장으로 이전돼 종편 사업자들에게 지상파 방송과 비슷한 수준의 광고특혜를 얻게 된다.
게다가 종편은 이번 미디어렙 법안 개정에서 광고영업의 규제에서 벗어난 형태의 독자적인 영업활동을 벌인다. KBS 시청료 인상과 KBS의 방송광고 시장 이탈로 인한 이득을 고스란히 취할 수 있다.
보수유력언론인 조중동은 종이신문 시장의 한계에서 벗어나 방송으로 진출하면서 자신들의 수익을 보장받기 위해 KBS 수신료 인상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방송위원회가 그동안 방송 광고가 금지되었던 양주, 전문의약품 등 광고 시장에 대한 규제도 풀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자체생존기반 구축에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방송시장에서 MBC나 SBS와의 경쟁할 수 있는 역량도 부족한 현실이다.
이에 정부로서는 자신들이 여론에 역행하면서도 강행처리한 미디어법의 순탄한 앞날을 위해 종편방송에 대한 안정적인 사업기반 조성 차원에서 KBS 시청료 인상과 KBS의 방송광고물량의 민간시장 이양을 추진해야할 상황이다.
방송공정성 논란과 결부돼 제2 미디어전쟁으로 비화될 전망
그러나 시청료를 부담해야 할 국민으로선 달가운 것이 아니다. KBS 시청료 인상으로 조중동 방송을 살린다는 것에 대해 납득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결국 국민들은 시청료 인상을 조중동방송에 살리기 위한 세금부담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KBS의 보도 공정성 논란은 시청료 거부운동에 대한 명분을 강화시키고 있다. 작년 연말 아랍에미레이트 원전수주, G20 유치 홍보, 세종시 수정안 발표 등과 같은 보도에서 KBS의 보도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가중되면서 시청료 거부운동에 대한 명분이 강화되고 있다. 지금 언론계에서는 KBS의 보도를 두고 한국정책방송(KTV)와 차이가 없다고 폄하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년간의 언론전쟁에서 시민사회진영은 후퇴를 거듭했으나 이제 반격의 고삐를 잡은 듯하다.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KBS 시청료거부운동 확산이 성공여부를 떠나 정권과 조중동 등 보수유력언론에 대해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KBS 시청료 인상으로 촉발될 언론전쟁의 2라운드를 앞두고 있다. 2라운드에서는 1라운드와는 달리 공격과 수비가 바뀌었다. 정찬 기자 <폴리뉴스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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