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박근혜-문희상의 첫 만남…민주당은 쌍용차를 왜 말하지 못했나?

언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 중 ‘허니문 기간’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선거 후 우열이 갈리면 승자가 공약대로 자신의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야권과 언론이 견제나 공세의 수위를 낮추는 것을 뜻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에서 당선된 지 한 달 남짓 지났으니, 지금이 바로 그 ‘허니문 기간’이다.

특히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면 ‘허니문 기간’과 상관없이 여야는 초당적 협력을 해야 한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은 IMF 체제를 맞아 당시 여야 대표자들과 연쇄 회동을 열었고, 이 자리에서 당선인과 여야 지도부는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지금은 박근혜 당선인이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허니문 기간’에,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공언한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여야 대표들과의 회담을 제안한 것은 자연스럽다. 또한 이에 따라 여야 대표와 박 당선인이 만나 국가적 위기상황에 맞서 초당적 협력을 약속한 것도 바람직하다.

그래서일까? 7일 열린 박 당선인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의 회동은 말 그대로 ‘화기애애’해 보였다. 회동 후 브리핑에 참석한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 정성호 민주통합당 대변인도 “이렇게 같이 있으니 좋아 보이지 않냐”며 기분 좋게 웃었다.

박근혜 당선인으로서는 위기 상황에서 야당까지 테이블로 불러내는 ‘리더십’을 보였고, 민주당은 선명한 안보관과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서 존재감도 보였다. 이렇게 보면 양 측이 모두 얻은 것이 있으니 웃을 법 하다.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7일 오후 국회에서 북한의 핵실험 위협 고조에 대응하기 위해 열린 여야 대표와의 긴급 3자회동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 당선인과 여야 지도부는 이날 회동에서 북한이 핵실험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 촉구했다 ©연합뉴스

그런데 뭔가 개운치가 않다. 이날은 박근혜 당선인과 제1야당 대표인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처음 만난 날이다. 현재 당선인과 야당 사이에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국회 표결 문제, 쌍용차 문제, 정부조직 개편안 등 현안 문제가 쌓였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이를 일부 언급했지만, 덕담이 오고가는 ‘윈-윈’ 분위기 속에서 이런 문제들은 덮어졌다.

대변인들과 보도에 따르면 이날 문희상 위원장은 북핵문제와 관련, 박 당선인에게 북한과 대화채널을 가동할 수 있는 특사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고, 이동흡 헌법재판소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했지만 무시당했다. 문 위원장이 “48%를 잊지 말라”는 애매한 얘기를 꺼내자 그제서야 “그 분들을 다 품고 가겠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민주통합당은 튼튼한 안보관을 보여준 것 외에 무엇을 했을까?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당선인을 설득한 것일까, 함량미달의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를 철회시킨 것일까? 박근혜 당선인의 약속인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를 관철시켰을까?

물론 이번 회동이 북핵 문제와 관련된 원 포인트 회동인데다 향후 여야 협의체를 구성키로 했으니 앞으로 민주당의 활동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 이후 박 당선인이 다시 국회로 올까? 그것은 미지수다. 박 당선인에게 이번 3자 회동은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제기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국회를 다시 찾지는 않을 것이고, 모든 쟁점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불통인사, 인사 난항, 국정원 문제, 공약 불이행 등 박 당선인을 둘러싼 온갖 악재들이 산재했지만 박 당선인은 이번 회동으로 정국주도권을 쥐었고, 직접 국회를 찾아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낸 다음날, 차기 정부 인사 명단을 발표하게 된다. 민주당이 새 정부의 인사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할 수 있을까?

민주당으로서는 안보 문제에 있어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박 당선인을 만나 현안과 인수위 문제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따졌어야 했다. 특히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는 박 당선인 후보 캠프에서 약속한 사안인 만큼 전술적으로도 이를 압박할 필요성이 있었다.

새 정부에 대한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따질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것이 ‘야성’인데, 지금 민주당은 그게 부족해 보인다. <미디어오늘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