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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안철수의 운명 /양권모 정치·국제에디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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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0 09:23:18, Hit : 4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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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통령 후보 안철수의 등장은 강렬했다. “안철수가 정치에서 성공하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이어져온 2000년의 정치학을 다시 써야 할 것”이라는 저명 정치학자의 언명이 환기하는 것처럼, 그는 아무도 걷지 않은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그는 정치경험과 정치세력이 없는 것이 치명적 약점으로 지목됐음에도, 출마 선언에서 어떤 세력도 내세우지 않고 정치 부족의 보완을 취하지도 않았다. 대신 “정치경험도 세력도 없지만 그만큼 빚진 것도 없다”면서 정치를 바꾸기 위해 대선에 출마한다고 했다.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에겐 무모한 호기이거나 무서운 도발로 비쳤겠지만, 안철수의 존재이유를 분명히 한 셈이다. 안철수는 소위 여의도정치가 불러낸 게 아니라, 정상으로 작동되지 않는 정당정치를 대신할 정치적 대변자로 대중에 의해 호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스스로 깨뜨리겠다는 구체제 정치의 거친 들판으로 들어섰다. 이제 ‘정치 초짜’에 의해 쇄신과 혁파의 대상이 된 기득의 정당과 정치인들의 방어와 저항은 격렬할 것이다. 밖에서 존재한 ‘안철수현상’은 반성과 성찰의 몸짓으로만 대응하고 갈 수 있는 것이었겠지만, 정치의 현실이 된 안철수는 그들의 성채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구체적 위험재이다. 그래서 특히 검증을 기제로 한 공격은 아마도 안철수에게는 혹독한 체험이 될 것이다. 그 검증의 구조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공정으로 작동하는 것인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방어하지 못하면 그들이 개혁되고 퇴장해야 하는 판이다. 물론 이것들을 견디고 이겨내는 것은 안철수의 몫이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안철수가 보다 근본적으로 직면할 난제는 정치세력, 정당과의 연대의 일이다. 종국에는 야당인 민주통합당과의 연대, 대통령 후보 단일화의 문제가 될 터이다. 정치세력과 정당의 기반 없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 집권을 해도 국정운영을 하기 어렵다는 정치문법의 현실적 요구가 그만큼 강렬한 탓이다.
하지만 오로지 세력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정당체제에 몸을 담고 손을 잡는 것은 안철수현상으로 표출된 대중의 열망을 배반하는 길이 된다.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고 변화의 요청을 수용하지 못하는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 안철수현상의 동력이고 바탕인 까닭이다.
무조건 연대하고 후보단일화만 하면, 민주당의 지지층에 안철수현상을 불러온 무당파와 2030세대 등의 지지가 합쳐져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은 도상의 산수일 뿐이다. 책임총리제를 도입하고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것 등의 온갖 방식을 동원해서 무조건 합치고 보자는 접근도 마찬가지다. 안철수를 통해 낡은 정치질서를 객토시키고, 변화의 필요성마저 망각한 정당을 개혁하고자 하는 지지 대중이 그런 조합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과 안철수의 연대든, 대통령 후보 단일화든 ‘안철수현상’에 담긴 정치의 변화와 정당개혁의 열망이 반영될 때만 시대적 당위를 지니고 대통령 선거의 승리도 담보된다. 그 조건을 만드는 것은 안철수의 몫이기보다는 민주당의 몫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이 여당의 책임을 묻는 책임정치로 구현되지 않고 다시 여당의 박근혜 후보로 귀결될 수도 있는 정당정치의 불구성, 그 책임의 큰 부분은 분명 야당에 있다.
해서 안철수현상을 담아낼 그릇인 민주당의 혁신이 이뤄져야 연대와 대통령 후보 단일화는 의의를 지니고 유효성을 발휘할 것이다. 안철수에게 세력이 필요하다면 그건 ‘낡은 조직’이 아니라 ‘좋은 조직’이다. 민주당이 기존 질서를 혁파하고 인적 쇄신을 필두로 뉘 말대로 ‘오 마이 갓’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면적 혁신을 하는 것이 연대와 후보 단일화의 기본 전제라는 얘기다. 한데 자기들만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른 민주당이 스스로 그런 혁신을 행할 기미는 아직 희미하다. 벌써 단기의 지지율에 취해 안주를 꾀하고, 단순히 안철수 카드를 활용해 대선에서의 승리를 도모하는 공학에 골몰하려는 모습마저 엿보인다. 거기에선 승리를 낙관하며 쇄신은커녕 온갖 퇴행을 반복하다 19대 총선에서 패배한 그림자만이 어른거린다.
결국 안철수가 야권의 단일후보가 되느냐,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의 변화,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정당정치의 개혁을 추동해내는 것이다. 안철수를 통해 대중이 요구하는 정치의 전면적 쇄신, 안철수는 이를 책임 있게 대변해야 한다. 그는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에서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뀐다”며 물줄기를 돌려놓을 수는 있겠다고 했다. 한국정치를 변화시키고 정당정치를 정상화시키는 쪽으로 ‘물줄기’를 돌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안철수의 도전은 시대적 의의를 가질 것이다. 한 번도 스스로의 변화를 도모하지 못한 채 기득의 성채에 안주해온 한국정치가 ‘안철수’의 존재로 인해 미래정치로 나아가는 문을 열 수 있다면, 설령 좌절이 예비되어 있을지라도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 후보 안철수의 운명이다.
<경향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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