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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와 성찰]진실에 대한 두려움 /문광훈 충북대 교수·독문학

2013-03-16 07:12:37, Hit : 3982

작성자 : 운영자
- Link #1 : khan_art_view.html?artid=201303152038055&code=990100

진실에도 표면적 차원과 심층적 차원이 있다면, 한국사회는 여전히 표면적 사실적 차원의 진리도 어떤 점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지 않았나, 그래서 시민적 문화적 가치의 실현이 지체되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무기중개상 고문이었던 사람이 국방장관을 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서 파묻히는 것은 진리의 깊고 넓은 차원이다. 삶에는 보이는 진리밖에 없는 것일까?

영화 <소피의 선택>(1982)이 다룬 주제도 그런 것이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한 여자의 삶을 그린 이 영화에서 두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소설가 지망생 스팅고가 소피와 처음 만나던 날, 타자소리가 싫다면 밤에는 안 치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말한다. “어린 내가 잠들었을 때, 아버지도 늘 밤에 타자를 쳤어요. 그 소리를 들으면 편안했지요. 아버지는 폴란드 국민에게 나치 위험을 경고하는 글을 썼지요.” 하지만 이것은 거짓으로 드러난다.









 
그녀의 아버지는 인류의 완벽성을 믿던 법학교수였고, 그녀는 그에 어울리는 딸이 되고자 노력했다. 어느 날 그녀는 아버지의 연설문을 받아 적다가 ‘학살’이란 단어를 보았고, 이 학살대상인 유대인의 거리를 가본 후부터 아버지의 진실성을 의심한다. 그러나 차마 묻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 반유대주의 연설을 했던 아버지도 죽고, 어머니와 남편마저 소피는 잃는다. 이 사실을 안 스팅고가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다그치자, 소피는 ‘홀로 되는 것이 두려워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그녀 앞에서 독일장교는 두 아이 중 한 명만 선택하라고 명령한다. 이 선택으로 6살 된 딸은 가스실로 끌려가 죽고, 8살 된 아들도 사라진다. 그녀를 지켜주겠다며 스팅고가 청혼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도, 그 누구도 약속할 수 없어요.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너무나 많은 거짓말을 해서….”

모든 선택은, 그것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더 끔찍하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되지 못한 다른 것을 버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삶의 진실은 이 끔찍한 선택에서 얼마나 진실하기 어려운가를 자각하는 데 있다. 그녀가 스웨덴 난민수용소로 옮겨진 후, 교회에서 무릎 꿇고 손목을 그어 자살하려 한 것은 이 선택의 끔찍함 혹은 진실의 고통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피는 말한다. “세상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많아요. 당신한테 할 수 없는 얘기도 많고요.” 진실하기란 철부지 두 아이 가운데서 ‘살 아이’와 ‘죽을 아이’를 고르는 일과 같다. 그것은 그토록 저주스러운 일인 것이다. 진실을 견지하기란 ‘더 이상 삶을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어려울 때도 있다.

나는 ‘진실’이란 말을 떠올릴 때면, 소피의 “난 선택할 수 없어요”와, “잊었어? 우리는 죽어가고 있어”라고 외치던 연인 네이단의 말이 생각난다. 사랑에는, 영화가 보여주듯이, 결핵과 뇌종양과 암도 수반한다. 미는 모든 불미스러운 것들을 뚫고 나갈 때, 조금씩 생겨난다. 그것은 너무도 아득한 일이다. 네이단이 연주한 첫 곡도 슈만의 ‘먼 나라들과 사람들’이었다.

삶의 복합성을 말하는 것은 진실의 어려움을 떠올리기 위함이지 진실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삶이 아무리 애매하다고 해도 진실의 추구를 멈출 순 없다. 단지 진리가 무엇인가 이상으로, ‘진리라고 알려진 것’에 이르는 길의 미묘한 굴곡을 헤아리는 일도 진실의 바른 이해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필자는 애써왔다. 진실의 주장도 중요하지만, 진실이 얼마나 선택의 고통을 야기하고, 얼마나 자주 슬픔의 심연으로 몸을 내던져야 가능한지 살피는 것도 이미 진실하다. 우리는 남의 잘못을 기뻐하지 않으면서도 자신과 사회를 부단히 갱신시켜갈 수 있는가? 그래서 보이는 진실을 넘어 삶의 더 넓고 깊은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나는 1년 반에 걸친 칼럼을 끝맺는다. 지면을 허락해준 경향신문사와, 내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경향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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