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통일을 위해 그곳에 가자 군대의 존립 목적은 적의 침략으로부터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함에 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군인이 비무장 무저항의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살상함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범죄 행위다. 전투상황을 빙자하여 민간인을 파리 목숨처럼, 짐승 사냥하듯 학살한 극악무도한 살인행위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끝까지 추적, 그 책임을 물어 응징해야 함은 민주국가의 책무다.
－민간인 학살지서 ‘귀한 만남’－
해방정국 하의 냉전 대결의 소용돌이를 틈타 미군정에 빌붙어 국권 도취 야욕에 눈이 먼 민족 반역의 무리들은 친일 앞잡이들을 주구삼아 국군 병사들의 총검을 앞세워 자신들의 더러운 과거를 덮고 부귀영달을 영속하기 위해 독립운동에 가담했거나 민족의식을 지닌 식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만행을 저질러왔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합당한 절차도 없이 참담하게 죽어간 백만에 가까운 원귀가 지금도 까마귀 울음 따라 구천을 헤매며 떠돌고 있다.
그 가족들은 ‘빨갱이’ 집안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붙여 사회로부터 백안시되었다. 가난을 대물림 하고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렸으며 부모의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큰소리로 통곡도 할 수 없는 공포의 암울한 삶을 이어왔다. 이들에게 국가란? 역사란? 정의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바야흐로 한반도에는 평화통일에의 여러 좋은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와 용서의 사전 준비 없이는 더 큰 혼란의 역경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늘 끝까지 닿아있을 피학살자 가족들의 원한을 해소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정지작업을 해야 한다. 학살지 탐방 등이 바로 이런 일에 일조할 것이다.
부슬비 내리는 대전 산내 학살지역에서 만난 한 유가족 할머니는 “이런 세상이 내 눈 감기 전에 꼭 오리라 믿고 살아왔다. 오늘은 너무나 기쁜 날이다!”라는 환희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군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렸는데 이제 한이 풀릴 것 같다”라고도 했다. 평화재향군인회가 제대군인 단체라는 점과 예비역 장군이 찾아왔다는 점에 대해 이렇게 분에 넘치는 의미를 부여하며 감동하는 순수한 분들이었다.
잘못을 뉘우친 진정한 사죄만 있다면 평생 암흑의 길을 걸어오며 쌓이고 사무친 분노와 증오도 봄눈 녹듯 흘려 보낼 수 있는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었다. 잘못된 과거를 인정하고 속죄하는 가해자 측의 진정한 용기가 지금까지 없었음이 참으로 부끄럽고 아쉬웠다.
극우신문과 그 추종자들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며 색깔 칠하기에 광분할지 모르지만, 과오를 변명하고 숨기려는 비굴함보다 착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대신 사과하는 당당함이야말로 군의 사기를 높여 줄 것이다. 반민족적 친일 독재 무리들의 기득권 보호에 연연해하던 그런 나약한 군대가 아님을 의젓이 확인함으로써 국군의 자부심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변명대신 사과하는 군인 돼야－
임실의 동굴 지역 학살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재향군인회에서 국군묘지를 건립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학살의 현장을 보존하여 후세에 교훈을 주고 추모를 해야 할 그 장소 앞에 묘지 터를 결정해 길을 가로막게 해 버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많은 학살들이 철저히 무시, 외면 당하고 있었다.
표지판 하나 없이 초라하게 팽개쳐진 학살터와 반듯하게 잘 닦여진 호국묘지를 하나로 묶어 평화와 화해의 공원으로 만들 수가 없을까? 그런 때가 언젠가는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유가족들의 진지하고 담담한 표정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음 제2차 탐방은 4000여 명이 학살당한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으로 간다. 용서와 화해의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3차, 4차 탐방길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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