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최 전 위원장이 건설업자로부터 돈을 받아 대선에 사용했다고 밝힌 뒤부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4일 최 위원장이 제기한 대선자금 문제를 두고 “검찰이 수사하기로 한 만큼 청와대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밝혔다. 다른 핵심 참모는 “이번 건이 대선자금 전반의 수사로 확대될 일은 아닌 것 같다”며 “만에 하나 최 전 위원장이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해도 개인적 차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 전 위원장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 문제는 개인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한·스리랑카 정상회담을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라자팍사 대통령이 방명록에 서명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청와대의 발빼기에도 불구하고 이번 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은 완전한 레임덕에 빠지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친인척·측근 비리에 불법 대선자금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도덕 불감증 정권’이란 딱지가 붙게 됐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기업의 돈을 받지 않고 탄생한 정권”이라고 강조해왔다. 지난해 9월에는 이를 근거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임기를 10개월 남겨둔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근거를 잃었다.
산발적이던 친인척·측근 비리는 2011년 중반 배건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부감찰팀장 구속을 시작으로 줄줄이 터져나왔다.
임기말 권력의 힘이 빠지면서 숨어 있던 비리가 동시에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까지 비리로 기소됐거나 의혹이 제기된 측근과 친인척만 20명을 넘었다. 비리 유형은 절대 다수가 기업체로부터 대가성 금품을 받은 것이었다.
대선 당시 이 대통령에게 자문하고 현안을 조율하던 ‘6인 회의’는 붕괴됐다. 대선 캠프인 안국포럼 출신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청탁 대가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은 부산저축은행 로비 대가로 1억7000만원을 받아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1억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3년이 구형됐다.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가 로비 대가로 4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등 친인척 비리도 적지 않다. 앞서 정권 출범 초기인 2008년 김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30억원을 받아 실형을 선고받았다. 여기에 최 전 위원장 대선비용 고백으로 불법 대선자금 문제까지 불거졌다. 주변 관리에 실패한 데 따른 부메랑이 임기말에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임기말 정치적 상황도 열악하다. 새누리당이 19대 총선에서 과반을 얻으면서 이 대통령은 청문회 등 야당의 직접 공격은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대권 도전에 부담이 된다면 바람막이 역할을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박 위원장은 전날 최 전 위원장 건에 “잘못한 것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책임질 일은 져야 한다”면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여당 내 친이계는 와해됐고 측근들은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났다. 최 전 위원장이 이 대통령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대선자금 문제를 거론해 내부 갈등 모습도 엿보인다. 상황은 악화하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우군은 보이지 않는 셈이다. 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가 외로운 내리막길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경향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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