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학영 한국 YWCA 전국연맹 사무총장
지난 6월 29일 자정, 대한민국 집회·시위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발생했다.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는 약 5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태평로와 종로일대 두 방향에서 세종로 사거리로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은 차벽을 설치하고 물대포를 쏘아대며 행진을 차단했다.
당시 태평로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시민들에게 바로 옆 서울시의회 건물 골목길을 통해 경찰 진압부대가 들어올 것이라는 제보가 전달됐다. 1백여명의 시민들이 경찰의 진압을 막기 위해 서울시의회 건물 골목길로 이동했다.
잠시 후 곤봉과 방패로 완전무장을 한 수백명의 전투경찰이 골목길에 모습을 드러냈다. 골목길을 통해 태평로로 진입, 집회 대열의 허리를 끊으려는 경찰의 작전이었다. 이렇게 되면 선두에 있던 시민들이 앞뒤로 포위돼 모조리 강제 연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 무슨 일이 있어도 경찰 진입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한 시민 1백여명이 골목안에서 스크럼을 짜고 아스팔트 바닥에 들어 누웠다. 경찰의 무력에 ‘눕자’라는 비폭력 평화행동으로 맞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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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폭력시위 없이 맨몸으로 스크럼을 짜고 누운 사람들을 보면 경찰도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한사람씩 뜯어내 연행하는 등 스크럼을 해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제 연행되는 상황은 이미 각오했다.
달려오던 전투경찰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 누워있는 시민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시민들의 예상이 적중했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확성기를 통해 “그냥 밟고 지나가!”라는 경찰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전경들이 차마 시민들 위로 지나가지 못하고 망설이자 “밟으란 말이야!”라는 명령이 계속됐다.
그렇게 2백여명의 전경들이 좁다란 골목에 피할 곳도 없이 누워있는 시민들을 무참히 밟고 지나갔다. 그냥 밟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치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곤봉과 방패로 찍어댔다. 10여명의 시민들이 큰 부상을 입었고, 2명이 실신하는 등 병원에 입원했다.
무참히 짓밟힌 시민들 한가운데에 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이 있었다. 이날 이학영 사무총장은 오른쪽 손목 골절과 정수리가 터지는 부상을 입었고, 얼굴과 정강이 등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다. 이 총장은 바로 병원에 실려가 4주만에야 퇴원했다. 그는 당시 경찰청 집회시위 자문위원직을 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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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었던 홍경표 지도력개발국장은 머리에 심한 타격을 받고 경련을 일으키며 실신했다. 이재명 간사는 귀가 찢어져 봉합수술을 받았고 등에도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홍상표 간사는 온몸에 멍이 들고 얼굴이 찢어졌다.
이윤희 간사는 “웃음 띤 얼굴로 꽃밭을 지긋이 밟고 지나가는 악동처럼, 누워있는 시민들을 군홧발과 방패로 무참히 짓밟아갔다”는 말로 이날의 상황을 표현했다.
한국YMCA전국연맹이 ‘YMCA촛불평화행동 눕자’를 조직해 경찰 폭력에 맞선 결과는 수많은 부상자를 내며 진압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YMCA는 며칠 뒤인 7월5일 촛불집회 때도 2차 ‘눕자’를 조직해 다시 한번 경찰폭력에 맞섰다.
석 달여의 시간이 지난 9월 26일 청와대 분수대 앞, 배재훈 연세대YMCA 회원이 ‘불법적인 폭력진압 책임 어청수 청장 파면 촉구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YMCA는 지난 6월 29일 폭력사태 이후 7월11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주말 제외)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각 지역 YMCA의 이사장, 사무총장, 간사, 회원 등이 돌아가며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는데 이날로 54회째를 맞았다.
'관변단체' 비슷하게 인식되던 YMCA가 3달째 대정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실에서 이학영 사무총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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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의 사무실에서 인사를 나눈 이 사무총장은 안쪽에서 손수 녹차를 내왔다. 직접 녹차를 따라주던 그는 사무실이 어두워 주위를 둘러보는 기자에게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불을 켜지 않아서 그렇다”며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조명을 밝혔다. 늘어난 면티에 빛바랜 양복을 입은 그에게서 소박한 시민단체 활동가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살이 많이 빠져서인지 조금은 유약해 보이는 그에게서 나온 말은 예상외로 강경했다. “지난 6월말 경찰이 저지른 폭력사태에 대해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과 이명박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청수 청장 파면이 이뤄질 때까지 1인 시위는 계속될 것이고요.”
YMCA가 YMCA의 이름을 내걸고 권력에 맞서 시위를 하는 것은 역사에 없던 일. “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은 물론이고 일제시대 때도 각자 활동가들이 시위에 나서기는 했지만 YMCA 이름을 걸고 한 적은 없었죠.” 이 사무총장의 말처럼 YMCA는 투쟁보다는 시민교육, 사회개혁분야에서 활동해온 단체이다. 이러한 YMCA가 어쩌다 훨씬 전투적 시민들도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경찰청장 파면 촉구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석 달째 하고 있는 것일까?
“촛불시위 때 경찰이 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시민들도 이에 맞서는 모습을 보며 완충지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을 없애고, 경찰이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우리가 중간에 누우면 비폭력 평화 시위가 유지되지 않겠느냐 생각했죠.”
이 사무총장은 사건 전날 ‘저는 28일 저녁 광화문에서 물대포 앞에 드러누울 것입니다’라는 글을 통해 “만약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시민들을 진압하려고 하면 물대포의 가장 앞줄에 서서 물러나지 않으려 합니다. 물대포와 경찰이 밀고 오면 그 앞에 드러누워 스스로 연행을 당할 생각입니다. 만약 풀어주면 다시 돌아와서 누울 겁니다”라며 다른 회원과 일반 국민들에게 자신과 행동을 함께 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80년대에도 거리에 많이 누웠습니다. 그러면 경찰은 최루탄을 쏴 시위대가 도망가게 만들었고, 그래도 도망가지 않을 경우 뜯어냈습니다. 이번처럼 그대로 짓밟고 지나간 경우는 없었습니다. 경찰에게도 분명히 말했죠. 우리는 절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눕기만 하겠다고... 하지만 경찰은 해산 경고 방송도 없이 그냥 와서 방패로 찍고 짓밟았습니다.” 그의 예측이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광우병 위험 등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도 중요하지만 인간 신체에 대한 폭력, 그것도 국가기관이 국민들의 신체에 폭력을 가해 민주사회의 기본을 무너뜨린 것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와 YMCA의 확고한 생각이다.
“‘잘못했으니까 사과하고 책임자는 물러나라’는 주장은 아주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그래서 YMCA는 어청수 청장이 파면될 때까지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촛불의 힘이 축소되면서 그 어떤 시민단체도 행동에 옮기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YMCA전국연맹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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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사무총장은 환경운동연합 검찰수사, 시민단체 보조금 회수 논란 등 이명박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시민단체들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요즘 보면 NGO를 반정부 단체로 만들어 가고 있는데 NGO는 반정부·친정부로 구분해서는 안된다. 모든 국민과 시민단체를 자기 편과 남의 편으로 나누기 시작하면 어떻게 국가운영을 하겠냐”며 따끔하게 충고했다.
김대중 정부 때 동강댐 반대, 노무현 정부 때 부안 방폐장 반대 등 이전 정부에서도 정부와 시민단체간에 심한 마찰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처럼 시민단체를 탄압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한 그는 “과가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사고방식으로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려 하는 것은 비극”이라고 비판했다.
또 시민단체 보조금 논란에 대해 그는 ‘보조금’ 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새마을운동본부, 자유총연맹 등에 단체 운영비를 지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보조금’이고, 기타 다른 시민단체에는 이런 운영비 없이 (교육이나 환경 등의) 사업을 맞기면서 거기에 필요한 비용을 주는 일종의 ‘용역비’ 또는 ‘사업대행비’”라며 언론이 이를 구분해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사무총장은 “(이명박 정부하에서) NGO들이 일시적 어려움이나 불편이 있을 수 있지만 올바른 소리를 내는 행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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