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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부에 와닿는 평화'를 희망한다.<정욱식 씀>

2008-07-26 19:23:12, Hit : 4093

작성자 : 관리자

오는 7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5년째가 되는 날이다. 그동안 한반도 주민들은 알았던 몰랐던 끊임없는 전쟁의 공포를 겪어야 했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쓰여져야 할 소중한 자원을 소모적인 군비경쟁으로 낭비하면서 심각한 인권유린과 생존권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또한 한반도의 정전체제는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부당한 개입을 가져와 정상적인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을 겪고도 반세기가 넘도록 전쟁의 유산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고통스럽고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미국의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과 북한의 김정일 정권의 핵개발로 조성된 한반도 위기는 9·19 공동성명과 2·13 및 10·3 합의를 거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공동의 목표로 세우는 데 성공했다. 10·4 남북정상선언을 통해 남북한이 전쟁의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에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들어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6자회담의 2·13 합의와 10·3 합의, 그리고 남북정상간의 10·4 선언 등을 거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활발했던 작년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이는 새롭게 출범한 남한의 이명박 정부가 평화체제 구축보다는 한미 전략동맹을 상위의 목표로 설정하고,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지난 7월 11일에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 발생하고 남북한 당국이 이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남한의 이명박 정부가 평화체제 구축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평화체제 논의의 핵심 당사자인 남북한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두 가지 부정적인 전망을 낳고 있다. 하나는 평화체제 논의 자체가 상당 기간 지체될 가능성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남한의 역할과 입지가 축소된 상태에서 북미간의 논의가 중심을 차지할 가능성이다. 두 가지 모두 한국에게는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여, 역사적 기회를 놓치지 말라


 체감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오늘날 한반도는 분단과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질서 재편기에 서 있다.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잘 발전시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한반도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정전체제의 국제적 요인이었던 동북아 국제관계도 평화안보체제의 기틀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한다면, 한국은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라는 낯설고도 위험한 존재와 상대해야 하고, 이는 주변국가들의 이해관계 및 개입과 맞물려 한반도의 운명이 타자화되는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바로 이 점을 자각해야 한다. 조금만 발상을 전환하면,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는 업적을 세울 수 있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 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만큼이나 한국 지도자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미 9·19 공동성명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동시 행동 차원에서 이뤄나가기로 합의했다. 10·4 남북정상선언에서는 이를 위해 남북한이 힘을 모으기로 했다. 검증의 파고를 넘기면 북한의 핵폐기와 평화체제를 맞바꾸는 협상이 시작된다. 한마디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것이다. 


 '피부에 와 닿는 평화'를 위하여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우리 사회가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말하고, 평화체제 논의도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크게 떨어져 있다는 현실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반세기 넘게 정전체제가 지속되면서 일종의 '불감증'이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고, 20년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피로감'이 누적되어 있을 수도 있다. '욕망의 정치'가 전면화되면서 가치의 우선순위가 흐릿해진 것도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진단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보통사람에게 한반도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한반도 평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삶의 질은 좋아지지 않았다'는 성찰적 진단과 연결된다. 오히려 6·15 공동선언 이후 본격화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삶의 질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피부로 와 닿을 정도로 기여하지 못한다면, 평화와 통일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6·15 공동선언을 비롯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온 개혁·진보 진영이 반성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과정으로서의 평화', '피부에 와 닿는 평화'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조합에는 평화프로세스에 군비 동결과 군축을 포함시킴으로써 평화의 진전에 걸맞은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을 만드는 것이 있다.


 국방비를 '동결'한다면


 '과정으로서의 평화', '피부에 와 닿는 평화'를 통해 평화의 혜택이 한반도 주민에게도 균등하게 퍼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국방비 증액 자제 등 군비증강의 억제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6·15 공동선언 이후 한국의 국방비는 급격하게 늘어왔다.


 2000-2008년 남한의 국방비는 14조5천억원, 15조4천억원, 16조4천억원, 17조5천억원, 19조1천억원, 21조5천억원, 22조5천억원, 24조5천억원, 26조6천억원이다. 그런데 반사실적 가정을 통해 2001년부터 국방비를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2000년 수준으로 동결했다면, 8년간 약 46조6천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절감된 예산을 사회복지와 교육, 그리고 대북 지원에 사용했다면 한반도 주민들의 삶의 질은 상당히 개선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수립된 '국방개혁 2020'은 2006년부터 2020년까지 621조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전력증강에 나선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고비용 저효율' 국방정책을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바꾸어 2020년까지의 국방예산을 2008년 예산보다 약간 높은 27조원 정도로 동결할 경우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약 224조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총과 밥'의 논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기실 평화(平和)라는 어원이 의미하듯이 평화는 근본적으로 "공평하게 먹게 할 수 있을 때", 즉 모든 사람들의 생존권과 복지가 보장될 때 비로소 공고해질 수 있다. 평화 구축을 통해 복지가 증진되고, 복지가 증진되어 평화가 더욱 공고해지는 선순환적 평화-복지 구조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가 국가간의 평화, 정부간의 평화를 넘어선 보통사람의 평화도 함께 고민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이미 북한의 GDP를 추월한 남한의 국방비를 '동결'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마이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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