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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레슬링 대표 선수로 뽑히다 < 군 개혁에 바친 내 일생 7 >

2007-11-13 09:13:41, Hit : 10097

작성자 : 표명렬
 사관학교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는 운동의 날로 정해져있어서 말 타기 활쏘기 등을 포함해 여려 운동을 섭렵할 수 있었다. 매년 가을철에는 이 시간을 이용하여 모든 운동 종목에 걸쳐서 중대별 대항 경기가 있었다. 

그 중에서 레슬링은 가장 인기 없는 종목 중의 하나였다. 중대 대표 선수로 나가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늘 출전선수 부족이었다. 시합이 있기 전에 중대장 생도가 적당히 선수를 차출하여 시합에 임하게 하는 실정이었다. 나는 레슬링에 대해서 전혀 아는바 없었지만 왜들 선수로 차출되는 것을 싫어하는지 은근히 호기심이 들었다. 남들이 안하려 하니 솔선해서 한 번 해봐야겠다는 의협심(?)이 발동되어 우리 제4중대 레슬링 대표 선수로 나가겠다고 손을 들어 자원했다.


당시 나는 175cm 키에 65kg 몸무게의 비쩍 마른 전신주 같은 체구여서(지금은 80kg) 나와 같은 내무반에서 함께 생활하던 이종택 생도는 나를 ‘갈비’씨라고 별명을 지어 놀려 주곤 했는데 제 4중대 레슬링 선수로 출전한다니 깔깔 웃어댔다. 목이 유난히 굵은 그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상급생들로부터 내무반 건물을 한바퀴 돌고 들어오라는 선착순 기압을 받을 때마다 항상 헉헉거리며 맨 나중에 들어오는 육중한 그를 우리는 ‘비개’ 생도라고 불러 놀려대곤 했다. 70을 바라보는 지금은 정반대가 되어 그는 갈비씨가 되고 나는 비개 씨까지는 아니더라도 몰라보게 무게 나가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움직여 운동은 하지 않으면서 저녁 때 사람 만나 식사하는 일이 많아지고 시간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두드리기를 좋아해서 인 듯 하다.


어떻든 나의 호리호리한 키의 마른 체구에 약간 졸린 듯한 눈매에 애잔한 모습은 누가 봐도 레슬링 선수로는 전혀 맞지 않아 보였던 것 같다. 중대장 생도가 별로 탐탁치 않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노려보더니 퉁명스럽게 “알았어! 표 생도는 레슬링 선수다!”라 했다. 출전 선수로 합격을 한 것이다. 어차피 선수 부족인데 나간다고 하니 사실 고마워해야할 일이었다.


밖에서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거칠고 힘든 운동 같았지만 막상 매트위에 올라가 상대와 싸워보니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았다. 양쪽 어깨가 일시에 매트에 닿아 폴승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기본기인 브리지 연습을 비지땀을 흘리며 고개가 아프도록 열심히 했다. 드디어 시합 날이 왔다. 나의 처음 상대는 우리가 염라대왕이라고 별명을 부쳐줄 정도로 아주 험상궂게 생기고 기압 잘 주기로 유명한 3학년 정재경 레슬링부 부부장 생도였다. 한 눈에 누가 봐도 개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승패가 뻔히 들여다보인 시합이었다. 시작과 동시 갈비씨인 나의 몸이 그의 육중하고 다부진 체구 밑에 깔렸다.


‘나는 지금 참호 속에서 적과 맨 주먹의 백병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완전한 실재의 결투 상황이다!’ 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나의 모든 꿈은 사라진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정신을 통일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에잇!!” 고함소리를 지르며 내 위의 적을 내동댕이쳐 던져버렸다. 순간 기적이 벌어졌다. 모두들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부 부장 생도가 천장을 바라보며 바닥 위에 벌렁 뒤집어졌다. 심판이 신이 나 폴승을 했다며 나의 팔을 힘차게 들어 주었다.


“호랑이에 물러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들려주시던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이윽고 4학년 레슬링 부장 생도가 다가오더니 “겉보기하고는 사뭇 다르구먼!, 순발력이 아주 뛰어나! 좋아! 귀관은 오늘부터 레슬링  대표선수다!”라는 점찍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나는 전혀 마음에도 없는 사관학교 레슬링 대표선수가 되었다. 사실 태권 대표선수가 되어 열심히 하고 싶었는데 부장생도의 말 한마디에 꼼짝없이 레슬링부에 붙잡혔다. 대표선수가 되면 수요일 운동의 날에 다른 운동은 할 수 없고 오직 그 종목만 하도록 되어있었다.


6개월 동안 나는 매주 수요일이면 승마 등 하고 싶은 운동 다 제쳐두고 오직 레슬링 하나에만 매달려 브리지 연습 등으로 땀 흘리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원해서 시합에 나갔을 때는 상대를 깔아 눕히기도 했는데 마음 내키지 않는 대표선수가 된 다음부터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시합 때마다 힘없이 넘어졌고 늘 무릎 등에 부상을 입어 의무실을 찾아다녔다. 매주 수요일 레슬링 도장에 들어 갈 때마다 도살장에 이끌려 가는 듯 싫었다. 


그 학기가 지난 다음 부장생도의 허락을 가까스로 얻어 태권도 대표선수로 옮겼다. 태권도부에는 늦게 들어갔지만, 지긋지긋했던 레슬링을 벗어나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태권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수련하여 졸업 시에는 2개의 검정 띠를 딸 수 있었다.


자발적인 동기부여가 “즐겁게! 기쁘게!” 최선을 다하게 하는 힘임을 깊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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