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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팬티 한벌과 바꾼 목숨 <군 개혁에 바친 내 인생>

2007-11-06 23:57:59, Hit : 6454

작성자 : 표명렬
 육군사관학교에는 '명예제도'라고 하는 자랑할만한(?) 훈육 제도가 있었다. 이것은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의 제도를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서 언뜻 듣기에는 그럴 사했지만 의식구조와 문화가 서구와 다른 우리 군 간부 양성과정에서 이를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많았다.

특히 그 중에 '양심보고'라 하는 제도는 그 적용이 매우 애매모호 했을 뿐만 아니라 자칫 행위의 2중성을 길러 반 훈육 적인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많았었다. 그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비록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규정을 위반하였을 때는 양심에 따라 즉시 보고하여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른 사람의 잘 못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즉각 고발하도록 되어 있었다. 남의 잘못까지 고해 바쳐야하니 카톨릭 교회의 고해성사, 개신교의 회개보다 더 심한 제도였다. 그러나 이를 생활화 실천하는 데는 문화적 벽에서 오는 갈등이 많았다.


우선 우리는 “규정은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인식이 철저하지 못 했다. ‘생도는 부모님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거수경례를 해야 한다.’라고 규정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사관생도가 된 다음 처음 휴가를 갔을 때 유교 전통에 철저하신 나의 할아버님께 큰절을 올리지 않고 거수경례를 한다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매일 아침이면 할아버지 방에 가서 문안 인사의 큰절을 드렸었다. 물론 어머님께서 시키셨기 때문에 싫어도 할 수 없이 한 것이긴 해도 할아버지께서는 이를 자신의 친구 분들에게 크게 자랑하시곤 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엎드리지 않고 거수경례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결국 규정 위반에 대한 양심보고를 함으로써 외출 정지를 당하였지만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외출을 나가더라도 생도는 반드시 생도 복을 입어야하고 내의를 포함하여 군에서 지급하지 않은 복장을 착용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었지만 이런 규정을 그대로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정(情)을 중시하여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두리 뭉실 살아온 우리는 남의 잘못을 딱 부러지게 꼬집어 고발한다는 것은 마치 고자질하는 것 같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화풍토와 맞지 않은 제도는 그 노리는 효과는 발하지 못하면서 엉뚱한 부작용만 낳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1학년 시절은 걸레 빨고 물통 들고 동분서주 이리 뛰고 저리 달리는 가운데 상급생들로부터 지적 받아 기압 받으러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빨래 시간은 우리들의 그 쥐꼬리만한 자유시간을 가장 많이 앗아갔다. 지금처럼 세탁기도 없던 때다. 거의 매일 저녁 자유시간 때면 러닝 양말 팬티 등을 있는 힘을 다해 비누 빨래 질 하였다. 벌거벗은 상태에서 샤워장 안에서 열심히 세탁하는 모습도 가관이었지만, 한창 빨래 중에 국기 내리는 나팔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중지하고 알몸의 차려 자세로 서 있어야하니 이 또한 꼴불견이었다. 처음에는 웃음을 참느라 무진 애 먹었지만 늘 그러다 보니 나체촌 사람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같은 중대 원 끼리는 알몸의 특징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미국으로 이민 가고 없지만 허 모 생도의 남성 심볼 때문에 부쳐진 '8인치'는 이 때 부쳐진 별명이다. 그는 졸업 후 역시 대구경(大口經) 8인치 포 부대의 포병 장교로 임관했다.


이렇게 빤 세탁물은 세수 대야에 담아 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 점호가 끝나면 급히 건조대로 가져다 넌다. 교수부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생도대 내무반에 돌아오면 제 빨리 건조대 뛰어가서 마른 세탁물을 걷어 드리곤 했다.


세탁물에는 자기 교번을 표지 하여 다른 사람의 것과 구별했다. 그러나 오래 되면 탈색되어 숫자가 희미하게 바래기도 하고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 뒤 섞였을 때는 내 것인지 아닌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더구나 1학년 생도들은 너무 정신  없이 허둥거리다 보면 더러 남의 것을 잘못 가져올 때도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한 1학년 생도가 건조대에 널어놓은 팬티가 없어졌다고 보고했다. ‘각 자 세탁물을 확인하여 자기 것이 아닌 팬티를 발견하면 즉시 반납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몇 번을 전달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급기야 생도들이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동안 훈육관들에 의해 생도들의 내의 보관함에 대한 검사가 실시되었다. 


조사결과 이 모 생도의 옷장 속에서 문제의 그 팬티가 발견되었다. 즉시 명예위원회 심사에 회부되어 여러 의견과 논란의 토의가 있었지만 그는 생도로서의 명예를 지키지 못 했고 몇 번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양심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교 조치되었다.   


기초 군사훈련 때 나는 그와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했었다. 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간 그의 두 눈은 항상 번쩍 번쩍 빛이 났으며 동작은 매우 민첩했고 고된 축구 대표 선수를 하면서도 정리 정돈, 선착순 등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매우 의욕적인 분이었다.


경북 산골에 있는 고향집을 향해 가던 중 그는 강물에 몸을 던져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육사에 합격하여 뭇 사람들의 선망이었던 그가 초라한 작업복을 걸치고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가자니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감당할 수 없었으리라.


명예제도는 개인주의가 발달된 서구 문화의 책임의식이 강한 조직 문화에 뿌리를 둔 제도이다. 만약 그 생도가 웨스트포인트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면 결코 자기 팬티가 없어졌다고 해서 비슷한 남의 것을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사회생활 통념으로는 어쩌다가 팬티 한 벌쯤 잘못 가져온 것을 가지고 「절도」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콩 ,수박, 심지어 닭서리까지 재미로 했다. 팬티는 바뀌기도 하고,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을 수도 있다. 사리가 똑 부러지듯이 분명치 않게 두리 뭉실 정으로 얽혀 적당히 살아온 우리들이다. 팬티 한 벌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은 이런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관생도 훈육제도는 우리의 문화에 맞도록 검토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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