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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동아시아출판사 표명렬 저 2003.6>

2007-10-16 08:07:13, Hit : 6015

작성자 : 표명렬
 

저자 표명렬




표명렬은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생도시절부터 국군 속에 「민족」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에 큰 의문을 품어 오다가 1965년 전투부대 월남 파병시 제1진으로 참전하여 맹호부대 소총중대에서 수많은 전투를 경험하면서 그는 군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귀국 후 보병에서 정훈 병과로 전과하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정신전력 강화를 위한 모든 연구에는 늘 선발 참여하여 정신전력 이론체계를 주동적으로 세웠고 국군정신전력학교를 주도적으로 창설하였으며 육군 정훈감 시절에는 한국군 독자적 심리전 교리체계를 정립하여 민사 심리전 참모부를 창설했고 ‘민족의 군대’, ‘민주 군대’로 군대문화를 개혁해야한다 뜻을 이루기 위해 노심초사 동분 저주하다 1987년에 군 문을 나왔다.


49세에 전역한 그는 선물가게 체인인 (주)아트박스 명일동점을 차려 “어서 오세요!” 하며 직접 운영해 봤고 전쟁기념사업회의 문화예술 분과위원장, 취업알선 회사인 ‘월드맨 파워’ 대표이사, 통일국민당 중앙정치연수원 상근 부원장(원장대리) 등을 역임한 끝에 결국은 그의 꿈과 적성을 찾아 기업체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의식혁신 특강에 전념하여 ‘21세기 새로운 시대의 직업관’, ‘변해야 산다’, ‘행복창조’ 등 영향력 있는 명강사로 현재도 활동하고 있으며 월드컵 문화시민운동 중앙회 교육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는 군에서 이루지 못한 꿈이 한으로 남아서 인지, 군 개혁에 대한 기고 문을 일간지에 자주 실어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괴짜 장군이라며 찬사를 받고 있지만, 때로는 냉전 수구적 사고에 세뇌되어 찌들어 있는 분들로부터 “육사 출신이, 더구나 장군출신이 그럴 수가 있느냐”며 항의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들 대부분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의 관점에서 ‘육군사관학교’와 ‘장군’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이기주의적 관점에서의 터무니없는 독선적 우월주의에 빠져 있으면서 나 홀로 애국자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라 일축하며 이에 조금도 굴하지 않는 꿋꿋한 기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나는 누구보다 군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육사를 졸업했고 장군 출신이기 때문에 더욱 큰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 군의 발전을 염원하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해 왔음을 자부한다”며 “애초부터 개혁의 씨알과 정열이 없었던 사람들은 아무리 군대 생활을 오래하고 계급이 높아졌다하더라도 개혁을 위한 문제 자체가 보이지 않은 법이니 내가 오히려 이상하게만 보일 것이다”라 단호히 말한다. 이런 삶의 자세 때문에 신문사들로부터 개혁적인 ‘군사평론가’라는 직함을 얻기도 했다.


한 때는 매일 TV 선전에 나올 정도로 CF 아마추어 광고 모델로도 인기가 높았다.


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그대로 굳게 믿고 오늘도 앞만 보며 열심히 열강하며 쓰고 있다.




<뒷표지>




우리시대, 장군 출신의 유일한 개혁주의자


삶으로 말하는 개혁이기에 우리는 감동한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직후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고 난 후 “나는 우리나라의 의병참모 중장이다. 포로로 대접하라”고 의연하게 말씀했다. 그러나 광복이 된 후 지금 까지도 우리 군은 그를 대한민국 국군의 선배로 대접하지 않고 있다. 해방을 위한 투쟁에 헌신했던 광복군과 독립군은 우리 국군의 엄연한 효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은 군의 정통성과 존재의 이휴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군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은 자신을 비호하기 위해 언제나 합의보다는 물리력이라는 철권을 이용했다. 우리 군의 역사는 우리 현대사의 질곡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해방 이후엔 청산되지 않은 친일 세력에게 장악되었던 군대, 70․80년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는 독재 정권의 시녀 노릇을 종용받았던 우리 군대, 독재 정권과 군의 밀월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군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군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것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는 것이며,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인권과 민주가 살아 숨쉬는, 진정 우리시대 새로운 군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은이 표명렬


펴낸이 한성봉


편집 차수연, 김영주


마케팅 임재청, 변대숙


펴낸곳 도서출판 동아시아


주소 서울시 중구 남산동 2가 15-11호 301호


전화 02) 757-9724~5


팩스 02) 757-9726


전자우편 dongasia@unitel.co.kr


등록 1998년 3월 5일 제22-1280호




<머리말>




난 군의 역사를 새로 쓰고 싶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실감난다. 민주화를 이룩한 지 1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반(反)개혁적 수구 세력들의 영향력 하에 놓인 분야가 너무 많아 개혁은 쉽지가 않다.


기득권 세력들은 연대적 시너지 역량을 발휘한다. 이런저런 이유들을 들어 개혁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데 지금까지는 성공해왔다. 특히 그들의 나팔수 격인 수구 족벌 신문 특유의 번지르르한 말장난이 반개혁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핵 문제와 미군 주둔문제를 비롯한 안보상황과 우리나라 경제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을 실상 이상으로 부풀려 위기 의식을 조성함으로서 개혁의지를 저지시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개혁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지난번 검찰 개혁의 첫 단계인 인적 청산 과정에서 검사들의 조직적 반발은 개혁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해괴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결연한 개혁의지 표명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수구 세력의 집요한 훼방에도 불구하고 인적 청산은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는 제도개혁을 통하여 검찰의 조직문화를 새롭게 변화시켜야 할 때이다.


우리 군은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의 단호한 결단에 의거 ‘하나회’를 숙청함으로써 인적청산은 완성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단계인 제도개혁에는 지금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군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 때문에 군대문화가 극히 왜곡되게 형성되어 있음에도 한번도 이를 개혁하려 시도해 본 적이 없다.


국군은 해방정국의 소용돌이를 거쳐오면서 민족을 배반하여 일본 천황을 위해 솔선 부역했던 친일세력들에게 완전 석권 당함으로써 기형적 군대문화가 배태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남북대결의 냉전상황을 빌미 삼아 우리 국군이 민족적 자부심과 민족에 대한 애정을 가진 ‘민족의 군대’로 육성되는 것을 고의로 방해하였다.


또한 32년 간 독재권력의 정치적 시녀로서의 역할에 천착하느라 인간존엄의 가치관에 입각한 민주적 군대문화를 뿌리내리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그 결과 인권무시, 생명경시의 일본 군국주의 군대문화가 깊게 뿌리 내려져 의문사와 고참병의 횡포가 끝이지 않게 되었다.


민주화된 이후에도 군은 이들 수구 냉전 지향적 친일 세력들과 독재 옹호 세력들의 직․간접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잘못된 군대문화에 대한 과학적 진단과 개혁․개선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지 못했다. 전투적 기능 숙달에만 치우치도록 세뇌된 사고의 틀을 깨지 못하고 바람직한 군대문화 형성을 위한 문제의식 자체가 실종 마비 되어버린 상태였다.


발전은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책이 지금까지 ‘군대란 본래 그런 것이야!’ 라며 묵인되고 받아 드려져온 군대의 모습을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시각에서 재조명하여 군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너무나 열악한 환경과 조건 하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꿋꿋이 견디며 목숨까지 바쳐 나라를 지키신 위대한 호국 영령들과 군문을 거쳐간 존경하는 선배 장병 님들 그리고 지금도 묵묵히 조국의 산하를 지키고 있는 자랑스런 국군 장병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드리며 이 글을 바친다.


  바쁘다는 핑계로 불효 막급하고 있던 사이 표표히 하늘 나라로 가버리신 아버님 영전에 이 글을 올린다. 의식개혁 하나에만 미쳐 날뛰다 뒤뚱거리고 있을 때마다 용기를 잃지 않게 감싸준 사랑하는 아내 권태경 테레사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늘 엄격히만 대했던 사랑하는 아들 정훈이와 딸 재원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 물줄기를 바라보며 덕소에서 표명렬 씀


<차례>




머리말




1부.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원래 그런 것이란 없다


한 젊은이에게 들은 이야기/ 전투는 적군과 하는 것이다/ 존비어(尊卑語) 폐지 실험/ 제발 큰 소리 지르게 하지 말자!/ 집단 감시 기능/ 발상의 대전환, 군대 파괴/ 강자존 vs 적자존/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개혁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좌절된 6.25 민족 진혼곡/ 비무장 지대를 평화공원으로/ 철학이 없는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 걸림돌을 넘어


역사 속에 답이 있다


화랑의 후예라니/ 신흥무관학교를 아는가?/ 국군의 효시는 광복군이다/ 반쪽 짜리 공개/ 안중근 의사와 우리 군의 전통/ 동대문 창신동의 눈물/ ‘만인의총’과 ‘마사다’/ 역사적 전환


군대에는 인권이 없어도 되는가


의문사(疑問死)와 구조개혁/ 군대와 여성/ 불행한 역사적 경험과 반(反)인권


기무사 개혁 없는 군 개혁은 공염불이다


정권 안보인가, 국민 안보인가/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얼버무리기 개혁/ 욕된 과거와 지혜롭게 단절하기




2부. 1950년에 멈춘 시계




스스로를 보수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6.25 전쟁이 자랑스럽다고 여기는 자들/ 지겨운 국가보안법 논쟁/ 아직도 주적론(主敵論) 논쟁을 하고 있습니까?/ 그대들의 망발 “총도 쏘지 못하는 군대”


이적 행위와 안보


한 편지를 읽고/ 이적 행위의 장본인/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안보, 국가 심리전/ 증오심이 안보라는 착각을 넘어/ 휴전없는 심리전/ 김일성 사망 정보와 제대로 생각하는 안보/




3부. 우리시대, 새로운 군대를 향하여




간부가 변해야 군대가 산다


‘지휘권’에 대한 오해/ 월남전 총풍사건/ 조작극의 마술사, 유능한 장교/ 세상에 이런 작전도 있다/ 아침부터 뛰는 육군본부


군인다움에 대해 묻기


귀를 자르다/ 두코전투에서 배움/ 훈장과 고문/ 적을 바라봐야 군인이다./ 자전거 교장 님/ 오복(五福)을 만드는 군사령관/ 서랍 속의 훈장 


“군에 갔다 와야 사람된다”에 대한 반대


젊은이와 군대 그리고 잃어버리는 것들/ 군대는 보수집단이다/ 군을 위한 변명/ 말뿐인 ‘국민의 군대’/ ‘민관군’과 ‘군관민’/ “귀관들 형편없어!”/ 세월이 가도 채우지 못한 허전함


역사의 길목 그리고 육사 개혁


만인 대 만인의 투쟁/ 5.16 쿠테타와 육사/ 12. 12 반란과 김오랑 소령/ 광주 학살, 사관생도 신조는 없다/ 세뇌 작업, 육사 교육의 문제점/ 「민족일보」 구독 사건/ 씁쓸한 육사 발전기금/ 껍데기 총뿐인 졸업식/ 비장하게 불렀던 육사 교가




에필로그




개혁을 시작하며


전방에서 만났던 한 기자/ 나의 삶과 군, 그리고 개혁


<1부 도비라>




1부.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새로운 것은 낡은 것의 적이다. 따라서 새 시대는 언제나 구 시대로부터 범죄시 된다.




-실러(Schiller,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1부 본문>




1. 원래 그런 것이란 없다




한 젊은이에게 들은 이야기


최근에 군에 다녀온 한 젊은이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하루 종일 돌담을 허물고 새 길을 내는 미화작업을 했다. 그러나 다음 날 돌을 본래 위치로 옮겨 원상 복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유는 돌을 옮기기 전의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상부에 보고 해야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거 군 생활을 한 사람들은 위와 같은 이야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군대란 본래 그런 것이야. 무조건 복종을 체질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수 있지.” 그러나 이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일이다.


“군대가 뭔가 잘못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입니다”라고 말하는 그 젊은이의 말은 20여 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다녀온 한 후배로부터 들은 대답과 너무나 비슷했다. “완전히 속은 기분입니다.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철저히 당했다는 억울함밖에 없습니다.” 나는 부끄러웠다. 사회가 민주화가 되면 군도 많이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말로 위로했지만, 군대 개혁이 참으로 시급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첫 사회 생활을 군대 생활부터 시작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이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생활했느냐가 평생 동안 직업에 임하는 마음의 자세를 결정할 수 있다. 장병들이 자신의 업무에 보람을 느끼며 즐거움을 발견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열정을 다할 수 있는 분위기였던가? 아니면 그와 정반대였던가? 이것이 전역 후 직장에서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때 군 복무를 필한 자들에 대한 가산점 제도가 위헌으로 판결됨에 따라 이에 대한 남성들의 반발이 극심했었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히 군 현역 복무 자들의 집단 이기주의적 요구로만 비추어질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거센 항의가 빗발치게된 데는 두 가지의 큰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우리나라 병역 및 모병 제도의 문제점과 그 운영의 불공정한 실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고 둘째는 병영생활의 문제점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라 볼 수 있다. 병역의무 이행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강군 육성은 기본적으로 곤란하다. 지난 99년 4. 13 총선 당시 처음으로 국회의원 출마자들의 병역의무 이행 여부의 정보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부유층에 속한 사람들이나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분일수록 자신과 자제들의 병역면제가 월등히 많았다.


부조리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업무의 진행과정 및 결과를 철저히 공개하여 투명성을 확보해야 함이 기초이다. 그 문제에 관계되고 관심 가질 수 있는 대상들의 집단감시에 의하여 청탁, 결탁, 조작 등이 불가능하도록 해야한다. 병역 면제의 경우 면제된 자의 면제사유 및 그 집행과정이 즉각 지방자치정부, 사정기관, 관련시민단체, 언론기관, 등에 가능한  최대로 공개하는 제도를 구축함으로서 사회적 감시망을 확보해야 한다. 다음은 그들이 그토록 반발했던 속마음의 진정한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잘못된 병영생활의 개혁이다. 과거 우리 군의 병영 문화는 마지못해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처럼 되어 있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애국”이니 “애족”이니 하는 것은 건성의 말뿐이고, 왜 우리가 이토록 고생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의미와 답을 병영생활 속에서 느끼지 못하고 보냈다는 점이 문제다. 때문에, “너희가 군대 생활이 얼마나 내 인생을 망가지게 했다는 사실을 과연 아느냐?”하는 병영생활 체험에 대한 심리적 상처와 반감, 모멸감 때문일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군대 생활이 진실로 내 인생에 유익하고 보람된 기간이었다고 마음 속으로 느낄 수 있도록 병영생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전투는 적군과 하는 것이다


사관학교 생활 중 가장 오래도록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추억거리를 말하라 한다면, 처음으로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죽을 고생하며 받았던 기초 군사훈련과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에 얽힌 사연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상급생, 하급생 모두가 한 덩이가 되어 지칠 줄 모르는 뜨거운 열기로 응원에 열중했던 체육대회의 경험들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1학년 시절, 처음 응원연습이 있던 날 “전(全) 생도들은 저녁 식사 후 B운동장으로 모여라”라는 전달을 받고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그 시간만은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상급생들의 간섭과 지적의 눈초리가 없는 오락시간 같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우리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집합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우리는 응원단장과 보조단원들의 지시와 구령에 따라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고함치는 연습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였다. 조금만 딴 생각을 해도 동작이 틀려 상급생들의 신경질적인 지적이 사방에서 빗발쳤다.


결전의 날이 가까워 올수록 연습 시간은 길어지고 다른 사관학교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는 열광의 도는 더 달아올랐다. 기다리던 대회 날이 왔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우리는 운동장에 도착하였다. 목이 터져라 악을 쓰며 적대감을 증폭하다 보니, 마치 해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는 우리가 반드시 타도해야만 할 원수처럼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상대방의 선수들은 공부에 상관없이, 운동 특기 하나만 가지고 무시험으로 사관학교에 합격한 부정선수나 다름없는 엉터리들이라는 악의에 찬 비난도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는 왜 승리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인가? 승리를 위한 리더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오래도록 진정한 승리자로 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런 진지한 의미는 일깨우지 못하고, 군인에게는 무조건 승리만이 있을 뿐이라는 신병훈련과정에서 강조해온 바 그대로의 전투적 사고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전력에 관련한 연구를 목적으로 나는 1973년도 소령시절 대만의 정치심리전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유학하여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타이베이 공항에 도착하니 국방부 정치심리전부의 장군 한 분과 참모 몇 사람이 직접 나와서 영접해 주었다. 입교를 대기하느라 호텔에 며칠 묵고 있는 동안 당시 대만의 최고 실력자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정도로 영향력 있었던 왕승 대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 “정치심리전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대만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하며 육군 구락부에서 만나자고 했다. 내가 그렇게 융숭한 만찬 대접을 받기는 난생 처음 이었다. 그 분은 시종 인자한 표정으로, 주로 나에게 말을 시켜놓고 듣는 편이었다.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철이 없어 내가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우쭐대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중대 대항 농구 시합이 있었는데 우리 중대가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나는 소리소리 지르며 두 손을 저어 거의 발작적으로 응원을 했다. 다른 장교들은 상대편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하면서 경기를 여유 있게 즐기고 있었다. 승패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고 관전을 즐기며 응원했다. 나는 화가 치밀어 “군인에게 있어 모든 경기나 게임은 바로 전투나 마찬가지다. 왜들 이렇게 미온적으로 점잖게 구경만 하고 있느냐”고 핏대를 세워 불평을 했다.


빙그레 웃고 있던 옆의 한 동료 장교가 나의 모습을 얼마나 딱하게 보았던지, 조용히 다가와 타이르듯 말했다. “이것은 전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운동이다. 저 분들은 적이 아니다. 장차 우리와 함께 적과 싸울 전우들이다. 더구나 모두가 고급간부들이다. 경기규칙을 준수해서 최선을 다해 당당하게 싸우면 되는 것이지 악을 쓸 일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러니까 너희들은 대륙을 다 빼앗기고 이 모양으로  섬으로 쫓겨왔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생활해 가면서 내가 얼마나 유치한 전투적 사고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책과 전략을 다루어야할 고급장교가 소대장 시절에나 발휘하던 전투적 용맹성과 경쟁심에 불타는 객기를 분출하는 것은 미숙한 자세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같은 반 동기생 중에는 총통부(우리나라 청와대) 소속의 헌병장교, 보안사요원, 감찰장교 등 소위 권력기관에서 파견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 대부분은 다른 장교들 보다 겸손하고 사려가 깊고 온유하였다. 계급이 높을수록,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을 수록,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였다. 우리나라와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대만 군대는 뼈를 깎는 쓰라린 패배의 고통을 통해서, 나처럼 고급장교가 되어서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적대의식을 가지고 응원하는 수준의 생각에 머물러 있는 자가 윗자리로 진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실패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 모든 경쟁은 결과 못지 않게 그 과정이 중요하다. 최선을 다 했는지가 중요하다. 승자의 겸허함과 패자의 의연함은 모두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군인은 절대로 이겨야 한다. 패배는 곧 죽음이다”라는 전투적 사고 한가지로만 배워왔다. 이는 비단 군대뿐만이 아니다. 각 분야 모두가 ‘죽기 아니면 살기’의 대결의식과 흑백논리의 전투적 사고에 익숙해 있었다. 그래서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거의가 분재된 나무처럼 세월이 가도 자라지 못하고 왜소한 모습 그대로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존비어(尊卑語) 폐지 실험


내가 정훈감으로 재직할 당시 군대 사회학에 대해서 관심 가지고 있던 교수들을 초빙하여 군의 내무생활 개혁에 관한 토의를 진행하였다. 나는 「내무생활 폐지에 관한 연구」라고 일부러 좀 쇼킹한 제목을 걸고, 구 일본 군대의 내무생활 문화를 탈피하여 새로운 민주시민 의식을 함양하고 명랑한 내무생활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내무생활의 목적과 방법 등에 가히 혁명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지금의 내무생활을 근본적으로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하나의 실험으로 군대에서의 공식근무에 관련된 용어가 아닌 일반 내무생활 중에는 상호간에 존비어(尊卑語)를 폐지하고 존칭어만 사용하였을 때 나타나는 현상에 관한 연구를 제안했다.


우리나라의 조직 문화는 유교적 전통에 깊이 영향을 받아 수직적 경직성이 지나치게 심하다. 이는 언어의 특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직장의 상사, 학교의 선배나 집안의 윗사람에게는 꼭꼭 존댓말을 해야 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반말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 권위주의적 문화의 바탕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 군대의 극단적 권위주의 문화에 찌든 분들이 우리 군을 주도하다보니 군 문화는 철저한 권위주의적 문화로 굳어졌다.


이에 부하들에 대한 인격무시, 고참병의 횡포 등 고질적인 병폐가 끊임없이 일고 있었다. 만약 상호간에 존대어를 사용한다면 보다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성립되어 이런 내무생활의 병폐가 많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다.


그래서 특정 부대를 설정하여 병사들간에는 계급을 없애고 직책만 부여하여 공식 근무가 아닌 영내 생활에서는 모두가 존칭어를 사용하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분명 군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상사가 많이 줄어들고 내무생활이 실질적으로 명랑해져 전투력이 보다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금도 확신한다..


너무나 파격적인 발상이라 채택은 안 되었지만,  서울대학교의 홍두승 박사는 나의 이 괴짜 발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했었다. 한국사회학, 우리나라의 민주적 정치문화의 정착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은 지금이라도 한번 실험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이런 실험은 군대조직에서만 가능하다.


이제 ‘군은 잘하고 있습니다’ 라는 번지르르한  홍보성의 말일랑 그만 하자.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군의 내무생활을 보다 인간미가 넘치고 신바람이 날 수 있게 개혁하자. 군에 다녀온 모든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군대생활이 아름다운 추억의 보람으로 간직되게 개혁하자.




제발 큰 소리 지르게 하지 말자!


군대생활이 각자 인생에 있어 재미있고 유익한 기간이 될 수 있도록 병사들의 입장에서 군 생활에 관련된 모든 제도들을 그 설립의 목적과 기본가설부터 근본적으로 검토하여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군대란 본래 그런 것이야”라며 윗사람 편이 위주로 되어 있는 낡은 개념의 군에 대한 인식을 일대 전환하여야 한다.


지금의 부대 내의 내무생활 제도는 사관학교나 훈련소 등 양성과정에서 시행하고 있는 내무생활을 이상적인 모델로 하고 있다. 일반 부대에서도 이와 같은 개념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양성과정은 부대의 임무 자체가 교육이다.  오로지 군인을 만들기 위한 일에 몰두 3주 이상의 세뇌 식 교육을 하는 과정이다. 사회에서 길들여진 기존의 사고 방식과 행동양식을 송두리째 씻어 버리기 위해 피교육자들을 정신 없이 몰아세운다. 끊임없이 긴장을 요구하는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일단 부대에 배치되고 나면 주어진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내무생활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긴장되고 지겨우면 어떤 심정으로 군대생활을 하겠는가. 군 복무 기간 동안 내내 양성과정에서와 같은 엄격 일변도의 고달픈 내무생활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야말로 죽지 못해 할 수 없이 견디며 살아가는 지긋지긋한 생활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간부들은 양성과정에서의 내무생활을 기준으로 상정하여 “우리 부대에서는 병사들을 위해서 이런 것도 설치해 주고, 이렇게 자유스럽게 합니다”라며 시혜를 베풀고 있다고 자랑하는데 이런 식의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진정으로 자유스러울 수 있도록 제도 자체를 고쳐야 한다. 병사들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병사들을 주체로 하여 그들의 입장에서 필요와 요구가 무엇인지,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이 무엇인지, 그러나 절대로 허락할 수 없는 한계는 또한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한다. 윗사람의 선심으로서가 아니라 제도로서 당당하게 권리와 자율성이 보장되고 책임의식이 자라날 수 있는 역동적인 내무생활로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최근 어떤 부대에서 의식개혁에 관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질문을 던질 때마다. “예! 상병, 아무개”하며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관등 성명을 대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제지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런 경직된 모습이 군기가 서있고 군인답다고 생각하는지 걱정스러웠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3) 역사 속에 답이 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2) 군대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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