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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분재화 된 사고(思考) <군 개혁에 바친 내 인생>

2007-12-06 07:06:31, Hit : 5561

작성자 : 표명렬

사관학교 생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추억거리를 더듬어 말하라하면, 처음 입교하여 군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죽도록 고생하며 받았던 기초 군사훈련과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에 얽힌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전(全) 생도들은 석식 후 B연병장(운동장)으로 모이라! 응원 연습이 있다!”는 전달을 받은 우리 1학년 생도들은 신이 났다. 응원연습이니 그 시간만은 자유스런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오락시간처럼 상급생들의 간섭과 지적의 눈초리 없는 평화로움을 기대하며 집합했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꼼짝 딸싹 못하게 줄맞춰 앉혀놓고는 응원단장과 보조단원들의 지시와 구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기계처럼 움직이고 고함치는 연습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조금만 딴 생각을 해도 상급생들은 금방 귀신같이 알아차려 “어이 그 생도! 일어서!”했다. “형편없어!”하는 신경질적인 쇄 소리의 사방에서 빗발쳤다.


결전의 날이 가까워 올수록 연습 시간은 길어지고 해 공군 사관학교에 대한 우리들의 적대감은 불타올랐다. 날마다 목이 쉬도록 고래고래 소리 질러 악을 쓰며 적개심을 증폭하다 보니, 마치 타 사관학교는 반드시 타도해야만 할 적이요 원수로 착각할 정도로 증오심이 일었다.


몇 주만 집중 교육해도 이러니, 그 악몽의 긴 독재기간동안 친일도당들은 모든 교육과 언론은 박정희를 침이 마르도록 찬양케 하고 항일 독립 운동했던 대부분의 민족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증오토록 만들어 왔으니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거의가 이에 완전 세뇌되어 구제불능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어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들은 지금도 그 새빨간 거짓을 진실인 양 믿는 중병에 걸려 있다. 특히 맹목적으로 철두철미 세뇌된 군 간부출신들의 병세가 극심하다.


왜 승리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인가? 그리고 오래도록 진정한 승리자로 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의미는 일깨우지 않았다. “패배는 곧 죽음이다.” 라는 전투적 사고만을 끊임없이 주입시킴으로서 정의고 불의고 상관하지 않는 사생결단의 이기심만을 부추겨 왔다.


1973년도 대만의 정치작전 학교 유학 시절 때 일이다. 중대 대항 농구 시합이 있었는데 우리 중대가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나는 거의 발작적으로 응원을 했다. 다른 장교들은 상대편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하면서 경기를 여유 있게 즐기고 있었다. 승패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는 관전의 자세였다. 나는 화가 치밀어 “군인에게 있어 모든 경기는 바로 전투다. 무조건 이겨야 된다. 왜들 이렇게 미온적으로 구경만 하고 있느냐”고 핏대를 세웠다.


나의 모습이 얼마나 딱해 보였던지 빙그레 웃고 있던 옆의 한 동료 장교가 다가와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이것은 전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운동이다. 저 분들은 적이 아니다. 장차 우리와 함께 적과 싸울 전우들이다. 모두간부들이다. 경기규칙을 준수해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지 악 쓸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너희가 이 모양이니 이런 섬으로 쫓겨 왔지’라 비웃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내가 얼마나 유치한 전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책과 전략을 다루어야할 고급장교가 중소대장 시절에나 있을 법한 전투적 용맹성과 객기를 분출하는 것은 수양되지 않은 미숙한 자세임을 무언으로 가르쳐주었다.


대만 군은 우리와 같은 동양적인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광활한 중국 대륙을 빼앗기고 쫓겨 온 후 그야말로 뼈를 깎는 후회의 통렬한 반성을 통해서 군대를 혁명적으로 개혁했다


우리 반 동기생 중에는 총통부(우리나라 청와대) 소속의 헌병장교, 보안사요원, 감찰장교 등 소위 권력기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 대부분은 다른 장교들 보다 훨씬 겸손하고 온유했다. 계급이 높을수록, 중책을 맡고 있을수록, 목에 힘이 들어 있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의 분위기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모든 경쟁은 결과 못지않게 그 과정이 중요하다. 최선을 다 했는지가 중요하다. 승자의 겸허함과 패자의 의연함은 모두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군인은 절대로 이겨야 한다. 패배는 곧 죽음이다”라는 전투적 사고 한가지로만 배워왔다.


이는 비단 군대뿐만이 아니다. 각 분야 모두가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대결의식과 흑백논리의 전투적 사고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고가 세월이 가도 분재된 나무처럼 왜소한 모습 그대로이다. “위대한 박정희. 때려잡자 빨갱이들”의 틀에서 자라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되 내이고 있다.


정훈감 시절, 육본의 하루일과는 연병장을 10바퀴 이상 뛰는 구보로부터 시작했다. 참모 총장이 맨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있으니 빠질 수 없었다. 위관장교의 솔선수범과 장군의 솔선수범은 질적으로 달라야할 텐데 그렇지 못했다. 생각은 중소대장 때 그대로 인데 계급만 높아져 분재된 나무 같았다. 육군본부는 머리로 일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맑은 머리를 굴려야할 아침 그 좋은 시간에 우리는 헉헉거리며 땀을 빼고 있었다. 하긴 그 후 어떤 대통령도 “머리는 빌리면 된다.”며 청와대에서도 계속 뛰었다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그랬던 것 같다.


“무찌르자! 공산당”의 전투적 사고 하나로만 세뇌 분재된 사관학교 출신 예비역들은 대부분 미국 네오콘이나 일본의 극우 망동주의자들의 대변인이라도 되듯 아직도 북한을“때려 부셔버려야 할 철천지원수”로 인식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사고에 분재되어 '나 홀로 애국‘의 착각에 깊이 빠져 반민족, 반통일, 반 평화적 극우세력의 전위대를 자임하고 있어 갈수록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도 그들은 도저히 정상적 신문이라 할 수 없는, 매국적 극우 선동을 위한 전단지의 말장난을 금과옥조로 여겨 놀아나고 있으니 측은지심을 금할 수 없다. 국민들이 과연 언제까지 인내해줄지?


그 업보를 후배들이 받지 않도록 독재시대에 잘못 세뇌되어 구제불능 된 선배들과의 의식면에서의 분리작업이 이루어져야한다. 이는 생도들로 하여금 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하는 사관학교 훈육개혁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성취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11. 불효 막급했던 젊은 날<군대개혁에 바친 내 인생>
다시 듣고 싶은 이지상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곡은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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