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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민족의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노력 <군개혁에 바친 내인생>

2007-11-22 22:32:36, Hit : 5531

작성자 : 표명렬
 세월은 쏴놓은 화살처럼 멈춤 없이 흘러가 어느덧 4학년이 되었다. 생도 훈육은 전적으로 전체 2개 대대로 구성된 생도 자치제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전반기 6개월 동안 후배 훈육을 책임지는 제1차 제1 대대장 생도 직에 임명되었다. 1차 근무생도는 우리보다 3년 후배인 21기 신입생들의 기초군사 훈련을 이끌어 가는 책임을 맡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내가 신입생 기초군사 훈련을 받을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은 사관생도에게 어떤 비전과 꿈을 심어주고 의식을 불어넣어 주어야할 것인가? 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 없이 무작정 기능적으로 전투 잘 하는 싸움꾼을 만드는 데만 집중된 교육이었음을 안타깝게 생각해온 터이라 이 부분에 역점을 두어 후배들의 가슴 속에 꿈을 심어 주려 노력했다.

생도들은 누구보다 민족의식이 투철하여 민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뜨겁게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이것이 사관생도 훈육에 있어서 가장 중시되어야할 가치일진데 놀랍게도 우리 사관학교에는 민족의식 함양을 위한 어떤 비전도 개념도 없었다. 민간인에서 처음 군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의 각인된 교육이 군대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참으로 중요한데 이 절호의 과정에서 민족의식을 불어넣기 위한 교육이 없었다. 내가 후배들을 지도해야할 상급생이 되고 근무생도가 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이 점이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존재한다는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의 존재 이유는? 우리가 가야할 길은? 등의 모든 물음에 대하여 ‘민족’을 떠나서는 답이 되지 않은데도 제일 중요한 이 ‘민족’이라는 주제가 빠져 있었다. 생도 정신교육과 훈육의 핵심이 되어야할 민족혼 불어넣기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민족을 떠나서 우리 국군의 존재 이유, 전통, 이념, 자부심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래서 나의 영혼을 바쳐 후배들을 향해 쏟아내던 사자후는 대부분 민족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외침이었다. 항일 독립전쟁의 빛나는 전통과 그 넋을 우리가 이어왔음을 늘 크게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군이 친일세력들의 독무대가 되어있다는 사실 자체를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매 주 월요일 아침은 대대점호 날이었다. 교회의 목사들이 설교를 준비하듯이 나의 1주일은 이날 후배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준비하는 일에 열중했다. 일요일에는 학교 뒤 92고지를 오르내리며 다음 날 생도들에게 들려 줄 한 마디를 연습하고 또 연습하곤 했다. 나의 부르짖음에 대한 후배들의 반응은 참으로 대단했다. 사실 내 자신 민족을 생각하는 열정으로 말로만 외쳤을 뿐, 정리된 논리의 깊은 알맹이가 없음에도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후배들이 취침도 하지 않고 내 방에 찾아왔을 때는 내심 당황하기도 했다.


4.19 이후의 민주화 바람으로 이승만의 독재 권력에 의해 묶여있던 많은 금서들이 해제되던 때였다. 나는 밀즈의 ‘들어라 양키들아!’를 눈물 흘리며 탐독하였고 ‘민족일보’를 구독했다. 하급생들에 대한 기압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귀관들! 손에 든 소총이 어느 나라 것인가? 배낭은? 야전삽은? 모포는? 대검은? 심지어 숟가락까지 U.S.A 라 써있지 않은가? 양말 군화도. 우리가 완전군장하고 뛸 때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가? 자주적 군대가 되도록 정신 차리라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가? 조소로 들리지 않는가? 아직은 우리가 너무 가난하여 이렇게 도움을 받고 있지만 영혼마저 빼앗겨서는 안 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며 민족적 자존심을 일깨우는 기회교육을 열심히 시켰다. 물론 지금은 무기를 포함한 이런 하드웨어는 우리의 것으로 다 바뀌었다. 그러나 자주적인 국방의식의 문화가 바뀌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다.


나와 고등학교 동기였으나 1차 신체검사 전날 양고기를 먹어 피부 두드러기가 나 1년 뒤늦게 육사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19기로 임관했었던 국영주 씨는 고등학교시절 공부 등 여러모로 이름을 날리던 분이었다. 내가 중매를 들어 지금 미국에서 아주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대위 시절 대한극장 앞의 어느 제과점에서 만나났을 때“야! 표명렬!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실 너 별로 알려진 존재가 아니었는데, 육사에 와서 보고 참으로 대단하더구나. 너 듣기 좋게 하는 말이 아니다.”라며 분에 넘치는 칭송의 말을 해주었다.


“그래! 그때 너희들은 모두 여건이 좋았지만 나는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집안 형편이 너무나 어려워 고학생이나 다름없이 참으로 힘겹게 생활했지! 공부고 친구사귀기고 뭐고 없이 그냥 정신없이 지냈었지!”라고 대답했다.


그에 의하면, 내가 대대장 생도 때에 매주 한번 들려줬던 감동적인 훈화에 자신을 포함한 많은 후배들이 늘 숙연한 감명을 받았었다고 하면서 “어디서 그런 신념에 찬 생각이 나오느냐?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너의 그 열정적 감화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라며 분에 넘치는 칭찬을 해 주었다.


나는 당시 이과 과목이 주가 되어있던 학교공부는 멀리 던져버리고 여러 사회과학 책을 탐독하며 눈물 흘리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 시대의 운동권 대학생들이 걸어온 길이나 다름없이 나름대로의 역사의식, 민족의식을 갖추고자 노력했었다는 생각이다. 참으로 역설적이게, 내가 군을 택하지 않았다면 그 어둠의 독재시절을 무사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 할 때가 많다.


지금의 평화재향군인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예정조화 준비된 길이 아니었겠느냐 라며 슬며시 웃는다.







9. '민족'이 없는 사관생도 훈육 <군 개혁에 바친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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