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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5>

2007-10-23 11:23:06, Hit : 5818

작성자 : 표명렬
2. 이적 행위와 안보

한 편지를 읽고


지난 선거 시기, 어김없이 나와 별 관계가 없었던 유명(?) 정치인들로부터도 심심찮게 인사장이 날아들었다. 나 같은 사람까지 이렇게 신경을 써야하니, 정치하기란 참으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중 읽어가면서 몇 가지 안보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는 한 편지가 있었다.


그 편지는 먼저, ‘목숨을 걸고 간첩을 쫓던 사람이 그 간첩에 의해서 백주에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고’라고 지적하고 있었다. 이것이 사실에 근거한 말인지 알고 싶었다. 이는 국가 존립에 관련되는 매우 중대한 문제인데 설마 지금 우리나라가 법치도 공권력도 없는 그런 나라라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혹시 이 편지를 보낸 정치인은 과거 독재 정권이 정권의 안보를 위해 조작한 간첩 사건들, 그리고 수많은 억울한 의문사를 만들었던 일들이 애국적이었다고 생각하며 그때가 좋았다는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설혹 간첩 하나를 놓지는 한이 있더라도  죄 없는 무고한 사람을 고문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정신이 바로 우리의 안보를 튼튼히 해주는 힘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전방의 군인들은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하는 것인지 혼란을 느낄 정도’라고 염려하고 있었다. 우리 군인들은 그것을 모를 정도로 미련하고 열등하지 않다. 장병들은 아마도 이 편지의 주인공이 왜 그런 말을 한다는 것까지도 꿰뚫어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 걱정들이 오히려 장병들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사실에도 유의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포용도 좋고, 햇볕정책도 좋지만 나라의 안보를 이렇게 위태롭게 해서 되겠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포용정책은 우리의 안보를 더욱 튼튼히 다지는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그리고 실재 성공적인 정책이었음이 사실로서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라면 민족의 편에 서서 민족사의 미래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혜안과 통찰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군이 일본 군 출신의 친일 세력과 반민주적 독재 권력의 쿠데타 옹호 세력들에게 너무 오랫동안 침식 당해온 불행한 역사 때문에, 대부분의 예비역 장군들은 냉전 논리 중심의 정권 안보에 깊게 세뇌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정치군인이 아니었던 순수한 분들마저도 군인다운 단순함 때문에, 그런 식의 사고가 애국적 자세라는 착각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진정으로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우리 현대시의 불행 속에서 불가피하게 안보 분야 고급간부 출신들 거의가 극우적 냉전 수구 세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고가 경직되게 될 수밖에 없었던 점을 개탄하면서 나라의 안보와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이를 바로 하기를 독려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런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당파적 이익에 이용하겠다는 얄팍한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이적 행위의 장본인


군은 그 본질적 특성상 상․하간의 위계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특수 조직이다. 이는 군 운영상 필수 불가결한 조건으로서 만약 이런 중요한 위계상의 기본 개념이 허물어지면 군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 그렇기에 어떤 국가도 이를 고의적으로 파괴하려는 기도에 대해서는 엄중히 경계하고 강력히 징벌한다.


그런데 일부 언론의 군 관련 기사를 살펴보면, 그 특유의 말장난을 교묘히 구사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 군을 국민들로부터 불신 받고 욕먹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부하들이 상층부를 불신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만 관심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정부에 대한 악감(惡感)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틈만 있으면 군의 위신을 추락시키고자 갖가지 억측과 왜곡된 내용의 기사를 끈질기게 내보내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이적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또한 때로는 군 내부의 고위 간부급과 하위 간부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초급 간부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주장을 펼치고 있어 그들이 과연 나라를 생각하는 언론인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상․하 간부들 간의 이간을 획책하는 것은 간첩이나 오열이 하는 짓임은 자신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세월 민주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국가안보를 구실로 색깔 칠을 할 때 바로 위와 같은 행위는 ‘공산주의자들의 전략 전술’이며 수법이라고 잘도 써먹었을 테니 말이다.


적대적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화해와 평화의 시대가 도래되고 있는 상황이 수구세력들을 얼마나 불안하게 만들었으면 그리고 우리 민족이 가까스로 민족의식을 회복해 민족화해의 뜻 깊은 역사의 장으로 들어서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그런 작태를 서슴치 않는 것인지 참으로 측은한 생각이다. 그들이 무책임하게 토해내고 있는 망발들이 우리 국군 장병들의 정신력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 분석하여 그들의 끊임없는 괴롭힘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현재의 군은 정치적 중립을 엄정히 하여 오직 국가 안보를 위해 기본 임무에 충실히 정진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놀 줄 모르는 현재의 군 수뇌부들이 아마도 수구세력들은 못마땅하였을지 모른다. 과거 자기들이 짝하여 주고받으며 대해왔던 정치군인 일색의 통 큰(?) 사람들과 다르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이적 행위’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수구 언론은 국가보안법 등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이적 행위자라는 낙인을 찍고, 자신들의 존립기반을 조금이라도 위협하는 대상이면, 레드 콤플렉스를 교묘히 이용하여 빨갱이 사상의 원흉으로 몰아갔다.


과거 어둠의 시절, 독재에 신음하며 항거하던 국민들의 입장과 나라의 민주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과 한통속이 된 속임수의 필치를 휘둘러 잘못 탄생된 그 권력의 기반을 튼튼히 만들어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온 그들이 지금은 군부를 흔들고 심지어는 정부를 흔들고 있다. 아무리 정부를 당장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도록 밉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정부가 운영하도록 국민이 위임해준 국군 통수권과 그와 연계된 지휘체제의 기본 기강을 흔들고 흩뜨리려는 것과 같은 무책임한 작태는 국민의 이름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자신의 국가를 부정하지 않는 한, 어느 나라 신문도 이런 식의 반국가적 선은 넘지 않고 지키고 있는 것이 불문율이다. 이적 행위의 장본인이 누구인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작년 말 대통령 선거 시 투표일이 임박하여 특정 정당의 후보가 결정적으로 우세하다는 이른바 1강 2약의 대세론을 뒷받침하는 여론조사가 발표되자 예비역 장성 500여명이 특정 정당으로, 어떤 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공개하지 말기를 부탁하며 어떤 분은 고개를 치켜들고 줄줄이 입당을 했다. 군인은 무조건 승리해야만 하니 기왕 승리가 확실한 쪽으로 가겠다는 것이었을까? 물론 장군 출신들이라고 해서 못할 리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정당을 열렬히 지지하여 활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각자 개인의 문제이다.


그러나 많은 뜻있는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하필 대통령 선거를 바로 앞둔 시점에 때맞추어 집권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하니까 철새 때처럼 우르르 몰려 들어가는 형세가 꼴사납다는 것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대통령이 다 된 듯이 행세했던 그 당의 후보는 두 명의 자기 아들을 고의로 군대에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군 출신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 부분만은 인정하며 분노하고 있는 터인데, 입만 벌리면 “안보! 안보!”해오던 그들이 어떻게 그런 용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 바쳐 조국의 산하를 지키느라 말없이 희생 봉사하고 있는 우리 국군 장병들이 그런 작태를 보고 국가 안보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냉전 수구 세력들은 때만 되면 안보관을 검증한답시고 ‘색깔 덧칠하기 작업’을 한다. 누구의 안보관이 어떻고 해오다가 이제 그런 장난질이 먹혀들어 가지 않자, 대북 적개심과 대북 전쟁 불사의 강경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지고 안보관을 판단한다니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기 정권을 맡음이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그 막강한 세력의 둥지로 줄지어 날아간 그분들 나름대로는 분명한 명분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집권당의 ‘햇볕정책’이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만들었고 국민과 국군의 안보의식을 해이하게 만들어 나라가 바로 서지 않아 구국의 차원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잘못된 그들의 안보관을 설명해 주는 내용이다. 안보의 궁극적 목적은 전쟁을 회피하는 것이다. 평화다. 햇볕정책은 남․북의 전쟁을 방지하여 결과적으로 나라의 안보를 튼튼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꿈을 실현하게 만드는 디딤돌의 역할을 하고 있음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이 말하는 안보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친일에서 이어온 가장 반민족적인 냉전 수구 세력들을 옹호하기에 급급하여 북한에 대한 불신 조장과 살벌한 적대의식의 고취에 불과하다. 곧 안보의식의 강화라 강변하며 민족의 미래보다는 강대국의 이익을 추종하는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는 것이다.


만약 지난 암흑의 독재정권 시대에 500명이 아니라 단 5명의 장군출신만이라도 참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도덕적 용기를 가지고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일의 가시밭길을 향해 위와 같이 작은 무리를 지어 위세를 보였다면 우리의 민족사는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소용돌이치던 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민족을 배반한 자신들의 과거 때문에 민족을 향해 더욱 무자비했던 반민족적 친일 세력 장군 출신들도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자숙했을 것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안보, 국가 심리전


생도 시절 특별활동 시간에 서대문 형무소를 견학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민족의 선각자들이 항일 독립투쟁을 벌이다가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고초를 받던 모습을 되새기며 그 정신을 기리자는 의미로 민족 공원이 세워져 있다. 당시 그냥 형무소의 모습 그대로였던 그곳을 구경시키겠다는 그런 좋은 구상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좋은 기회였다.


생도들이 단추가 길게 달린 독특한 복장을 하고 지나가니 죄수들이 마치 동물원 울안의 원숭이들처럼 후루루 철창 밖의 우리들을 보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기웃거렸다. 그러나 비 전향 사상범들이 수용되어 있다는 감방 앞을 지나갈 때는 전혀 달랐다. 누가 지나가거나 말거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무슨 깊은 도(道)라도 닦고 있는 사람들처럼 그들의 얼굴은 평안함에 잠겨 있는 듯 했고 그들의 자태에는 의연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비록 그릇되고 사악하며 이미 아무 의미도 없는 헛것이 되어버린 것이라 하더라도, 모든 불리한 여건과 조건을 그대로 감수하면서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있는 사상과 신념을 끝까지 굽히지 않고 지킨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행하기 쉽지 않은 대단한 일이라 여겨졌다.


우리나라 헌법은 기본적으로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더 가까이 오르고 인류의 지도적인 나라로 발전해 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변해 간다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은 존엄하다’는 사상이 모든 삶의 부분에서 보편화되어 실천되고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인권을 존중하는 온 세계인의 기대에 부응하여 비 전향 장기수들을 북송하는 민족 화해의 전향적 진전을 이미 이룩한 터이지만 김영삼 정부에서 처음 이인모 옹을 북송하였을 때, 냉전 지향의 극우세력들과 그들의 대변자처럼 옹호하는 일부 언론은 극단적인 수사를 총동원하여 반대했었다. 그러나 나는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냈었다. 그런 인도주의적 정신과 민족에 대한 진정한 애정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우리 체제의 강점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일이 이룩되기 전까지는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 성격은 점차 넓은 의미의 심리전적 대결로 변모해 갈 것이다. 심리전의 효과는 지금 당장 발생하지 않는다. 긴 시간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확실하다. 남북 상호왕래, 경제지원, 무력시위, 각종 회담, 군사동맹, 부분적 무력도발 등 전개되는 모든 과정들은 바로 ‘국가 심리전’이라는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조치 되어야할 것이다.


이인모 옹의 북송은 물론, 김영삼 대통령이 인도주의적 확고한 신념이나 민족 문제에 대한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였다 하기 보다는 국제 여론과 예의 깜짝 쇼를 즐기기 위해 취한 행위에 불과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놀랠만한 변화였다. 당시 극단적 수구 세력들은 눈앞의 피상적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어 “우리가 이용만 당한 것이다. 저들은 요란한 군중대회를 열고 무슨 큰 승리나 한 것처럼 영웅 대접을 하고 있지 않느냐?” 하며 목소리를 높였었다.


그러나 더 멀리, 더 크게,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어법대로 우리 체제의 우월성과 우리가 반드시 승리해야 할 이유가 우리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게 까지도 자연스럽게 설명되는 것이며 북한 사람들의 마음 밭에 우리를 동경하게 하는 관심의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서 모든 비 전향 사상범들을 북으로 보내 준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세계인들은 우리를 향해 박수를 보내 주었고 우리의 자존심을 드높여준 쾌거였다. 세계화된 정보화의 열린 시대에는 모든 경쟁은 ‘누가 더 많이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감동시켜 마음을 사로잡느냐’에 승패가 달려있다. 기업끼리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 간의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나간 세계사 속의 흥망성쇠의 원리도 다 그러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이겠는가? 나 자신이 사람들을 좋은 쪽으로 보며 돕고 나누며 이해하고 사랑하며 용서하는 것 아니겠는가!


낙엽이 흩날리는 길을 한참 따라가니 교수형을 집행하는 형장이 나왔다. 사형수를 나무의자에 앉히고 밧줄을 목에 건 다음, 전원(電源)을 누르면 마루바닥이 밑으로 내려앉아 목이 매달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밧줄에는 기름때가 번들번들 묻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저기에 목을 걸었을까, 억울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를 생각하며 나는 밧줄을 만져 봤다.




증오심이 안보라는 착각을 넘어


통일은 이 시대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사명이요 꿈이다. 민족적 지상 과제이다. 그 실현은 화해와 협력의 정신으로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시켜 나감으로서 어디까지나 평화적 방법이어야 함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통일을 이루려 한다면 무엇보다 인내심을 가지고 피차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증오심과 적대의식을 해소시켜 나가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남북 쌍방 간에 존재하고 있는 반통일 세력의 방해와 저항을 최소화하고 차단하는 지혜의 노력이 필요하다.


손자병법에 따르면, 적대국과의 국력 차이가 10배 정도를 넘으면 전쟁을 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리 약한 나라도 벼랑에 몰린 상태에서 달려들면 손상을 끼칠 수는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과 우리는 20배 이상의 국력 차이가 있다. 역량이 월등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상대를 달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한 안보정책이라는 의미이다. 불필요하게 자극하여 분쟁을 일으켜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 통일에 대한 자신 있는 정책으로 이미 정착되어 실효를 거두고 있는 대북 정책에 대해 일부 냉전 수구 언론과 정권에만 눈이 멀어진 정치인들의 끈질긴 반대의 영향을 받아서 군인 출신 대부분은 이 정책이 우리의 안보를 흔들리게 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말들을 하며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대북 정책은 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꿈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로 우리 정부의 여느 다른 정책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여기에는 통일에 대한 철학과 신념을 구현하는 선언적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결코 전투행위를 독찰하는 야전 지침서와 같은 내용이 아니다. 군사학에서 말하고 있는 정책의 하위개념인 전략․전술․전투 개념과는 다르다. 정책이란 그 추진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전략적 의사결정과 전술적 선택이 가능하고 전투적인 행위도 발생할 수 있다.


대북 정책은 통일과 안보에 관련된 국가 중요 정책으로서 당리당략에 의한 말꼬투리잡기나 흠집 내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이러한 주요 정책을 논리적 정당성이나 실증적 대안의 제시도 없이 과거에 해오던 대로 소모적 색깔 논쟁을 조장하여 정적을 모함하는데 이용하려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망국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민족의 미래가 달려있는 이러한 막중한 정책이 북한의 대응과 반응에 따라서, 주변 강대국의 눈치를 살피며 이리 저리 끌려 다녔던 과거의 무(無)원칙 무정책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주었던지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북한이 무장간첩을 침투 시켰지만, 금강산에서 우리 관광객이 억류당했어도, 연평도에서 전투적 충돌이 있었지만, 우리는 끄떡없이 일관된 정책을 기조로 북한의 전투적 수준의 행위에 놀아나지 않고, 한 차원 높은 정책적 수준에서 의연하게 전략과 전술 그리고 전투를 구사하며 대처하지 않았던가?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강한 자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6.15 선언을 이끌어 낸 화해와 평화의 대북 정책이야말로 우리의 안보를 튼튼히 다지고 북한에 대해서 그리고 세계인을 향하여 남북문제를 주도적으로 주장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포용정책이 안보의식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안보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함인가? 증오심과 분노의 적대감정을 원색적으로 표출하여 “때려잡자 ×××!”하고 외치는 것이 강한 것인가? “불바다를 만들어 휩쓸어 버리겠다.”는 등 서슬 퍼런 강성 용어로 호언장담하는 것이 진정으로 강한 힘이라고 생각하는가?


과거 독재 정권이 통일을 이룩하려는 아무 비전도 없이, 오직 대북 경각심과 적개심 고취에만 혈안이 되어 주장하다보니 군인출신들은 이에 완전 세뇌되어버린 듯 하다. 물론 여기에는 독재 권력을 옹호 찬양해오던 특정 신문이 큰 몫을 해왔다. 그들은 과거 해오던 그대로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는 정반대로 통일을 향한 화해와 평화의 민족사적 흐름을 지금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냉전시대 그대로 일관되게  대북 적대의식 고취와 터무니없는 안보 위기 부풀리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그들의 수려한(?) 붓놀림에 속아 경직된 언어들이 마치 강력하고 애국적인 안보관인 것으로 국민들을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통일 의식이 고양되면 안보 의식이 해이해 질 수 있다는 이분법적 발상은 반통일적 사고의 전형이다. 통일은 우리의 안보가 지향하는 비전이요 당면한 목적이다. 환상이 아니다. 환상과 비전은 다르다. 포용정책은 바로 안보의 궁극적 목적인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이며 이는 강력한 물리적 안보역량을 전제로 하고 있다. 서해 교전에서 장렬히 산화한 자랑스런 우리 해군 장병들은 바로 고귀한 생명까지 바쳐 통일을 향한 이 포용정책을 강력히 뒷받침하지 않았던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명예롭게 전사한 장병들의 희생을 의미 없게 먹칠하여 말하던 자들이 과연 누구인지를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휴전없는 심리전


‘정신전력 강화’는 내 군대생활의 비전이요 군인으로서의 나의 존재 의미였다. 그 중심 내용은 민족의 군대로서의 국군의 혼을 살리는 일, 우리 군에 고질화되어 있는 일본 군대식의 부정적 ‘군대문화’를 개혁하여 민주적 군대문화를 뿌리내리는 일 그리고 이를 제도화 할 수 있는 한국군의 독자적 심리전 전략과 체제 정립이었다. 나는 월남전을 통해 이런 꿈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귀국한 다음해인 1967년 2월 정훈 병과로 전과했다.


전과 후 1972년 5월 한국군 최초로 대만 정치심리전 학교에 유학, 군에서 실시하는 모든 정신전력 강화를 위한 연구에는 항상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국방부에 정신전력 연구위원회를 만들어 연구를 주도하여 1977년 국군 정신전력 학교를 창설하였다. 이 학교를 모태로 하여 정신전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군사제도와 조직 및 교리를 연구․발전시키고자 하는 일에 매진했다.


정신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무형 전력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조직체를 구성하는 문제가 핵심적인 과제였다. 아무리 정신전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더라도 이를 계획하고 판단하며 추진을 주관하는 참모 조직이 없으면 한갓 구호에 그칠 뿐 그 분야의 업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의 논거는 아주 간단하고 명료했다. “정신전력은 심리전력이다. 우리 군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미군의 입장과는 다르다. 우리는 동족간의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동족간의 전쟁에서는 물리적 역량보다 더 중요한 전력은 바로 심리전력이다.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마음을 우리 쪽으로 돌리는 것이 승리의 요체이다. 특히 문화와 의식구조 그리고 심리전의 수단인 언어와 문자가 동일한 동족간의 전쟁에서는 외국을 상대로 싸우는 미군과 달라 심리전을 특수전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적과 접촉하고 있는 모든 장병이 대적 선전요원이며 심리전 요원이고 심리전 방어의 전문가가 되어야한다. 따라서 넓은 의미의 한국적 심리전 개념을 다시 설정하여 이 분야의 업무를 통합 추진하는 일반참모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2군 정훈참모 시절 사령부 내에 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를 거친 후 군사령관의 최종 결재를 얻었다. 사령관께서는 육군 본부 회의에 참석하여 우리 2군에서는 이 안을 적용하겠음을 당시 참모총장 황영시 장군에게 보고하기 위해 준비하여 서울에 올라갔는데 그 날 그만 전역 명령을 받았다. 나는 직접 그 안을 가지고 육군 본부의 관계자들을 찾아다녔다. 열을 올려 설명했지만 모두 귀찮다는 표정들이었다. 요직에 앉아 있던 분들은 그런 새로운 아이디어 같은 것에는 관심들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라는 말을 나는 확실히 믿고 있었다.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 훗날 내가 정훈감이 되어 마침내 이 뜻을 이루었다.


내가 정훈 병과의 책임자가 된 것은 만인의총(萬人義塚)에 묻혀 계시는 선조들을 비롯한 수많은 의병 할아버님들, 항일 독립 전쟁에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신 수많은 독립군 광복군 선배님들이 나를 향해 “민족 혼(魂)이 없는 군대는 죽은 군대다. 민족정기가 바로 선 국군을 만들라!”는 뜻을 실현하기 위함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복무 계획 작성부터 이 꿈을 이루는데 목표를 정하고 모든 사업 계획을 여기에 지향하였다. “조직이 일을 한다. 무형의 심리전력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참모 조직을 만들어 민족의 혼이 살아 숨쉬는 군대, 인간을 귀히 여기는 군대 문화로 군을 개혁하리라”는 생각으로 2군에서 이미 채택하기로 결정하였으나 보고 과정에서 좌절된 참모기구 설치안(案)을 다시 들고 나섰다.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동기생 장군들도 나의 순진한 처사에 혀를 차며 반대를 했지만,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참모부장들을 설득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찾아다니며 보고를 했다. 필요성과 타당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편제와 교리를 연구하고 발전시켜야할 주무 부서인 작전 참모부에서는 속된 말로 코 방귀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 기회는 끊임없이 찾아오고 얼마든지 발견된다. 참으로 기적처럼 찬스가 찾아왔다.




김일성 사망 정보와 제대로 생각하는 안보


86년 11월 당시 전방 비무장지대에서 김일성이 사망한 것 같다는 여러 증후를 발견하여 첩보 보고를 했다. 그런데 이 내용이 김일성 사망 정보로 언론에 흘려져 조선일보 등에 대서특필하여 요란했던 사실이 있었다. 사실 무근임이 밝혀짐에 따라 군이 큰 망신을 당했었다. 이는 바로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국가심리전 체계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여실히 설명해 주는 사실이었다.


미군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비무장 지대가 군사 정전의 군사적 의미 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 정부로서는 동족인 적과 직접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지대는 정치 심리전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음에도, 마치 전방 사단의 전초기지 수준 정도로 파악하여 현지 지휘관에게만 맡겨져 있을 뿐 국방부나 육군 수준에서는 관심의 대상도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육군에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강구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나는 “바로 이 때다” 하고 참모 차장에게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보고를 했다. “지금 우리는 전쟁 중 입니다. 심리전은 휴전이 없습니다. 지금도 전방에서는 치열하게 심리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심리전에 관한 아무 대책이 없습니다. 이것은 조직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모총장님은 아침마다 일반 참모부로부터 브리핑을 듣고 계시는데 현재 진행 중인 심리전에 대해서는 아무도 보고해 주지 않습니다. 정보참모부의 임무라고 하지만 심리전 정보 업무라는 수준을 넘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작전 상황에 대해서 총장님께서는 무관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과 같은 실수는 필연적이며 아주 조그마한 착오에 불과 합니다. 통일을 이룩할 때까지는 우리 군의 참모체제를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 운영하여야 합니다. 무기 체계와 관련된 교리와 연관된 참모체제와 전혀 상치되지 않습니다. 심리전 업무를 통합하여 일반참모부로 만들면 됩니다. 말로만 독자적 교리 발전이라고 떠들면 뭐 합니까? 심리 전력이야말로 우리가 독자적으로 발전 시켜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책임 수행하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당시 참모차장 박명철 장군은“표장군! 나도 지금까지 군을 위해 많은 생각도하고 연구도 했는데.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아무도 나에게 해준 적이 없었소! 참으로 중요한 내용입니다.”하며 나의 착안에 손을 들어주었다. 참모총장에게 다시 정리된 내용을 보고했다. 참모총장도 상당히 긴장된 자세로 나의 설명을 경청하였다. 참모부장들은 육군의 이런 중요한 정책이 정훈감에 의해서 제안되고 논의되다니 자존심에 관계되는 문제라는 눈치였다. 주무 부서인 작전 참모부와 정보 참모부의 반발이 가장 심했다.


여러 번의 정책회의가 있었다. 정책회의 의장인 참모차장의 확고한 입장 그리고 나의 끈질긴 설득과 신념 어린 호소 끝에 드디어 육본에 민사심리전 참모부를 설치하는 정책이 통과되었다. 나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분되어 있었다. 내 군 생활의 모든 것을 바쳐 이룩한 이 사업의 후속 조치를 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우선 새로 구성된 참모부 운영의 지침과 절차를 규정하는 참모 업무교리를 만드는 일이 급선무였다. 모든 부대훈련과 지휘소 연습 그리고 학교기관의 교육에서 운영하고 훈련할 수 있는 민사심리전 참모계획, 참모판단, 참모회의, 참모보고 등에 관한 교리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참모부가 창설되고 얼마 안 있다가 나는 예편되었다. 초대 참모부장을 역임한 천용택 장군과 제2대 참모부장을 역임했던 편장원 장군은 모두 군단장으로 진출했다. 그 만큼 중요한 업무였다. 그러나 참모부 조직이 정착될 수 있는 기본 틀을 갖추는 후속조치의 노력들이 전혀 없었다. 일반 참모부로서 갖추어야하는 참모 업무 교리와 참모 요원에 대한 인사관리 등의 제도 정착에는 관심이 없었다. 창설 때부터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던 다른 참모부장들은 기회만 노리면서 소소한 이유들을 들어 끊임없이 해체를 주장하였고 정훈 병과에서도 병과 이기주의에 집착하여 분리되기를 원하여 2대 참모부장 이후 없어지고 말았다.


정신전력이라는 무형전력을 심리전력으로 개념화하여 독자적 심리전력을 건설하고 우리 군의 군대 문화와 의식을 개혁하고자 했던 나의 꿈은 이렇게 무산되고 말았다. 나는 한때 이를 회복하기 위해 국회에 진출하여 국방분과 위원 자격으로 대안을 제시한 후 국정감사를 통해 확인하는 방법 등으로 뜻을 관철하려고 정계에 뛰어들려 노력했지만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길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반드시 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아직도 나는 믿으며 도전하고 있다.







군대는 감옥이 아니다. 제도 바꿔라!
스스로를 보수라고 여기는 자들에게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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