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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민간인을 쐈는데 훈장 상신이라니? <군대개혁에 바친 내 일생<

2008-01-20 17:18:01, Hit : 4753

작성자 : 표명렬
역마살이 끼어서였을까? 젊은 시절 나는 한 고장에서 3년 이상 진득하게 살았던 경험의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대구 2군 사령부에서는 1981년부터 4년 가까이 근무했으니 꾀 오래 동안 정착한 곳이다. 한곳에 길게 근무 하다보니 이런 저런 경험이 많았다.

2군 예하의 부대들은 대개 민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서 항상 주민들과 밀접히 접촉하면서 임무를 수행한다. 평시 해안경계 임무수행 시도 그렇고 지역에 간첩이 침투 했을 시, 모든 작전은 주민신고 등의 면밀한 협조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주민들로부터 진정으로 신뢰 받는 군대가 되도록 노력함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2군에서는 민관군의 원활한 협조를 각별히 강조했다. ‘방위협의회’를 구성하여 정기적인 회의를 실시하는 등 여러 방법의 협조체제가 형식적으로는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방위협조 명목으로 자금을 각출하여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 쪽의 고급간부들과 지방 관리 및 유지들끼리 어울려 서로 도우며 재미있게 친목을 도모하는 윗사람들 끼리만의 친선 클럽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서 2군 예하 사단 등에서 근무했던 고급간부들 중에는 지역 특산품을 비롯해 그 지역 유명한 분들의 그림이나 글씨 등을 선물 받아 소장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특히 전라도 지역의 대대장만 되면 유명 화가의 그림 몇 폭은 보통이었다. 


지금은 지방에 따라 엔지오 단체가 활발한 곳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소위 지방유지라며 겉으로 튀어나게 활동하는 분들 중에는 진실로 그 지방을 위해서 희생 봉사하는 그런 사람은 드믄 편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리들이 새로 오면 그 지역의 인적 물적 정보 등을 안내 제공해 주고 권력의 편을 두둔하는 여론을 확산하는 오피니언리더로서 역할을 해줌으로서 사적 기득권을 챙기면서 “나 어제 XXX 장군하고 한잔했지!” 의시 대며 세도를 부리는 대체로 그런 분들이 많았다.


일본 식민통치시대부터 앞장서 그들을 도우며 자신들은 일반 국민들과는 구별되는 특권층으로 생각하는 권위주의적 의식이 깊이 뿌리내려진 분들이 당시는 대부분이었다. 주민들 편에 서서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여 애로를 타개하고 부대에 요구하기보다는 지역 내 군 부대장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주민들을 적당히 다독거리고 민군 간에 문제가 발생했을 시는 군부대 편을 두둔 무마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한 번은 동해안의 해안초소에서 야간 경계 근무 중 간첩이 침투하는 것으로 오인하여 한 여인을 사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새벽녘에 해안의 바위 쪽에 인지척이 있음을 발견한 초병이 “암호!”하고 수하를 했으나 응답이 없어서 발사 했는데 확인해 보니 미역을 따는 동리 아주머니였다는 것이다.


규칙과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간첩이 아닌 주민이 사살되었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간첩 침투를 방지하기 위해서 철조망이 처져있고 초병이 절차에 따라 엄격히 경고 하였으나 응답이 없어 사격을 가했으니 군으로서는 전혀 책임 없다며 그 아낙네의 죽음에 대해서는 당연하다는 듯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과정상의 하자가 없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무고한 양민이 사살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으니 이에 대해서는 부대도 깊이 반성하여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조치를 강구하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정상일 텐데. 초병이 근무를 잘했다는 쪽만을 특별히 강조하여 모두 말하니 꼭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필요하다면 과연 꼭 총을 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상황이었던 것인가? 잠결에 쏜 것은 아닌지? 그런 일은 절대 없겠지만, 혹 불미한 어떤 일을 저지르고 후환이 없도록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지? 등 여러 측면의 가능성에 대해서  민군 합동 현장조사를 엄밀히 실시하고 지역 주민 대표들과 논의하여 무엇인가 보완할 필요가 없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었다. 군의 존재이유가 바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침 참모회의 전 환담자리에서 부사령관은 발포한 초병이 근무를 철저히 한 결과이기 때문에 훈장 상신해야 한다고 전혀 합당치 않은 말을 가지고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이 분들이 도대체 제정신인가 생각하며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의견을 개진했다.


침투하는 적 하나를 놓지는 한이 있더라도 세심한 판단으로 확인하여 주민에게 발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었다. 간첩 하나가 들어왔다고 나라가 흔들리는 것도 아닌데 인명을 경시하여 과잉으로 대처하지 않았을지? 등을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병사가 처벌받을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상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꼭 일본제국의 점령군이 하던 것처럼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연관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달린 심각한 문제임임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간과하고 있었다. 


부대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런 유의 사고와 의문사 등에 대해서는 현장을 엄격히 보존하고 근처 지역의 권위 있는 관련 시민단체 등이 즉각 참여하여 함께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법적 조치를 강구해야한다.


이 법규를 근거로 사고관련 당사자가 책임을 직접 분명히 지도록 하여 지휘책임이라는 막연한 확대해석에 전전긍긍하는 지휘부담을 해소시켜야 한다. 사고발생이 지휘관의 진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에 부대에서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 통제하고 가능한 한 축소 은폐 혹은 조작하려드는 경향이 있어왔음을 알아야한다. 


나는 그 후 당시의 연대장을 찾아가 만났다. 그는 “이곳 바닷가 사람들은 질이 안 좋아서--”라고 하며 주민들을 내려 깔보며 부정적인 관점에서 매우 좋지 않게 말하였다. 어쩌면 광주 민주화 운동당시 광주에서 만난 어떤 육사 출신의 말과 이렇게도 똑 같을 수 있을까? 아무 진지한 고뇌의 빛도 없이 인간적인 동정심도 없이 “여기 분들의 기질이 ----어쩌고”하며 부정적으로 말하는 자세가 너무나 비슷했다. ‘당시와 같은 상황에서의 발포는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냐? 고 하며 오히려 심각하게 생각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연대장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1965년 초 내가 건봉산 앞 전방에서 DMZ 중대장을 하고 있을 때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중대 통신병이 전화선 보수를 위해 민간인 통제선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중 언 듯 보니 앞에 보이는 바위틈으로 짐승이 숨는 것 같아서 즉각 총을 쐈다. 확인해 보니 짐승이 아니었다. 사람의 머리가 명중되어 즉사한 것이다.


신원을 확인한 결과 ‘민간인 통제선’ 근방에서 고철을 수집해가지고 팔아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나는 중대원의 실수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보리쌀 한 가마니를 싣고 그 집을 찾아갔다. 방 한 칸을 빌려 어린 아이들과 어렵게 살고 있는 사정이 너무나 딱한 분이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호된 욕설과 원망을 듣게 되리라 단단히 각오를 하고 몸집이 큰 사병 2명과 함께 나섰는데 상황은 전혀 딴판이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슬픈 기색들이 전혀 없었고 초상집 같지가 않았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부인 혼자만 머리를 풀고 통곡하고 있었다.


동리 사람들은 새 파랗게 젊은 중대장인 나에게 깍듯이 대하면서 오히려 통 사정을 하였다. 이것은 전적으로 피해자의 잘못이니 문제를 확대시키지만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들은 이 일로 인해서 출입통제가 더 엄격해짐으로써 자기들의 생계가 끊기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 같았었다. 정말이지 파리 목숨보다 못한 사람 목숨이었다.


나는 이일로 인해서 상급부대로부터 엄한 질책이 있을 것으로 예상 했는데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보리 한가마니로 한사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면한 결과가 되었다. 정말이지 죽은 사람만 억울한, 죽음의 층과 차가 너무나 심한 세상이었다. 중위시절 그 때의 죄책감 때문에 내가 유별나게 “아낙네를 쏜 사람에게 무슨 놈의 훈장 이냐?” 라 큰소리 쳤을지 모른다.


목숨을 걸고 적의 생명을 노려야하는 소총 가진 전투원들에게 있어 생명 존중 ,인간 존중의 신념이 없다면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혐오의 대상이 되겠는가? 특히 군 간부들에게 있어서 끊임없이 쌓아 가야할 철학과 신념이며 정신적 덕목은 바로 ‘인간 존엄, 인간존중’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 군은 일본군대 문화가 너무 깊게 뿌리내려져 있어 이런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너무나 소홀히 해왔다. ‘군의 민주화 개혁’의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모택동이 중국대륙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택동 군은 지역 주민에게 극진한 마음으로 예의를 지키고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하고 실천했다. 이를 본받아 대만군대에서도 대민원칙과 대민 접촉 시 주의사항 등을 설정하여 생활화 실천하고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참고하여 나는 대민 3대원칙과 대민접촉 7대 실천사항을 설정 2군 산하 전 부대 내무반에 부착하여 외우고 실천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지휘관이 관심 없으면 유야무야되고 병사들만 괴롭힐 뿐임을 또 한번 학인 하였을 뿐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었고 군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밤중에 홍두깨 같은 뚱딴지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지금쯤은 잘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19. 윗사람 잘못 만나면 대령도 지옥같은 군대생활인데 병사들이야<군대개혁에 바친 내일생>
17. 삼청교육대에서 만난 그 사람 무사했을까? <군대개혁에 바친 내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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