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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폭풍의 계절’, 고래사랑싸움에 새우 등터지다<군대개혁에 바친 내 인생>

2008-01-21 18:39:46, Hit : 5170

작성자 : 표명렬
80년대 중반, 전두환 독재정권은 민주화를 외치는 대학생들만 가만있어 준다면 총통제 등을 만들어 영구 집권이 가능하다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진실을 추구하며 정의를 부르짖는 대학생들을 가장 골치아픈 존재로 여겼다.

‘국가안보, 북괴의 침략야욕’은 친일 독재 세력들이 국민들을 협박하기 위해 늘 앞세우던 단골 메뉴였다.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의 걸림돌을 제거하는데 있어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온 일품 무기였다.


그들은 상무정신을 강화하기 위함이라며 대학생 병영훈련 제도를 만들었다. 학생들을 최전방에 보내 병사들과 함께 기거하며 국토방위를 직접 체험시킨다는 설명을 곁들었지만, 말이 훈련이지 이것은 학생들에게 겁주어 기를 꺾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공포조성 작업이었다.


공권력의 폭력이 얼마나 무자비 무시무시한지를 너희들이 아는가? 매운 맛의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식이었다. “민주화니 뭐니 떠들어 봐야 총칼 몽둥이 앞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식이니 당한자만 손해요 억울하다”는 도망주의와 좌절감을 확산시키기 위함이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자포자기 패배의식을 조장하며 도전의식을 잠재우고 독재체제에 순응케 만들기 위한 참으로 무지몽매한 음모였다.


광주 민주화 운동 후, 나는 공 사석에서 “대한민국 대학생으로서 이 시대에 데모에도 한 번 참여 안한 자는 장차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정의감도 양심도 도덕적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 지도적 위치에 오르게 되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라고 자주 말해 눈총을 산적이 많았는데 막상 내가 이들에게 민주화 요구 등 현실참여를 자제하도록 교육해야 하는 육군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르게 되니 고민이 많았다.


전임 정훈감으로부터 인수받은 업무 중에는 중앙 군사학교 등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대학생들에 대한 정신교육용 영화 제작 사업이 있었다. 지휘부에서는 빨리 추진하지 않는다는 독촉이 심했다. 시나리오  내용을 읽어보니 너무나 뻔한 상투적인 애국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설득력이 미약하고 오히려 학생들의 반발심만 더 조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다음날 영화사 사장과 시나리오 작가를 육본에 들어오도록 했다. 밤새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영화의 제목은. ‘폭풍의 계절’이라고 내가 직접 지었다.


나는 그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제발 좀 북괴의 도발 가능성이니 애국이니 뭐니 속이 빤히 드려다 보이는 그런 상투적인 말 좀 그만하고 진실하게 대학생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자세부터 가지고 그런 정신적 바탕 위에서 기술하십시오! 젊은이들의 정의감과 꿈 자체를 문제 삼고 꺾어버리려는 듯한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대학생들이여! 너무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조금만 참고 기다려보자! 자칫하다가는 옳은 뜻을 이루기도 전에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 도 있다.” 무조건 몰아치지만 말고 그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진실한 애정의 메시지가 담긴 내용으로 바꾸라고 했다.


그들 모두가 전적으로 동감했다. “사실 그래야 하는데, 통상 지금까지 군에서의 요구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군에서 원하는 그대로 그냥 써 왔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서 그들 세계에서는 나를 ‘괴짜 장군’이라 한다고들 들었지만,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몇 번의 검토 끝에 영화가 완성되어 육군본부의 전 장군들이 모인 회의 끝에 시사회를 가졌다. 물론 반응은 아주 좋았다. 며칠 후 전두한 대통령이 국방부에 방문했는데 육군참모총장이 “육군에서 대학생 군사훈련 정신교육용 영화를 하나 만들었는데 아주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하고 묻지도 않은 말을 자랑삼아 보고했다. 이기백 국방장관이 옆에서  들으니 자기는 보고도 받지 못했는데 아무리 장관을 핫바지 취급을 하더라도 총장이 대통령한테 직접 말하는 건 너무 하다는 생각에 잔뜩 화가 났다. 보안사령관은 더 불쾌했다. 그런 내용은 전적으로 보안사가 책임지고 하는 건데 육군에서 나서는 것이 매우 배알이 꼬였었던 것 같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더니 이런 잡어들 사랑싸움 때문에 나와 정훈감실만 혼이 났다. 우선 그 영화를 만든 경위에 대해서 보안사의 조사를 받았다. 육군의 계획에 의해서 전임 정훈감이 추진 중에 있던 사업이었음으로 추궁할 구실을 찾지 못하자, 내용을 가지고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이것은 데모를 방지하려는 영화인지? 방조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는지? 매우 애매하다.”고 하여 상영중지가 되고 보안사에서는 군인 아파트지역의 가족들을 상대로 상영 후 반응을 분석한다고 했다. 조사의 결과야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데로 답은 만들어졌고 그 영화는 흐지부지 되었다. 자기들은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한마디씩 던진 말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큰 실망의 충격을 주었고 우리 정훈감실 직원들은 이런 잡어 같은 고래 싸움의 뒤치다꺼리 하느라 날마다 야근이었다.


새해가 되면 매년 대통령이 년 두에 장황하게 내놓는 공자 같은 말씀(?)이 있었다. 군은 이것을 슬라이드로 만들어 전군에 배포하여 열심히 교육했다. 그것은 들어보나 마나한 뻔한 이야기들이었다. 어둠 컴컴한 강당에서 그런 슬라이드 교육을 받으며 졸지 않고 있다면 그건 뭔가 크게 잘못된 사람이 분명할 것이다. 나는 좀더 설득력 있게 만들고 싶었다. 우선 제목을 ‘새해에 어머니가 부쳐온 글’이라고 정하여 후방의 어머니가 아들을 걱정하면서 보내는 편지의 내용 속에 “오늘 아침 신문에 보니 대통령께서 한 해 동안의 나라살림에 대한 말씀을 했더구나! 한 집안 살림도 이렇게 어려운데--” 이런 식으로 끌고 가도록 만들었다.


그 날 시사회가 끝난 다음 참모총장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떠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평을 하지 않았다. 표정들은 ‘참 잘 만들었구나!’였지만 대답은 총장의 뜻에 맞추어야하기 때문에 꿀 먹음은 벙어리가 된 체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윽고 총장이 직접 트집을 잡았다. “대통령 각하의 말씀인데 간접적으로 표현 할 것이 무엇이고? 직설적으로 강력히 충성심이 표현되도록 하는 기라! 기왕 만들었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하도록 해!” 하고 일어섰다. 이래저래 2년의 정훈감 기간이 나에겐 20년쯤으로 느껴지는 길고긴 폭풍의 계절이었다.






25. 내무생활에서의 하댓말 없애기<군대개혁에 바친 내 인생>
23. "보안대 일이나 잘해해! 정훈교육은 내 책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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