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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보안대 일이나 잘해해! 정훈교육은 내 책임이야!

2008-01-21 18:35:06, Hit : 5010

작성자 : 표명렬
 “보안대 일이나 잘해! 정훈교육은 내 책임이야!”

대학생들의 화염병이 난무하고 체루 탄의 매운 연기가 서울 시내 어디를 가든 온종일 걷히지 않고 자욱하던 때였다. 꼭 무슨 큰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뒤숭숭한 분위기에 잠겨있는 가운데 87년 1월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 세상에 알려 졌다.


김주열 열사의 무자비한 죽음 사건이 4.19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처럼 이 사건은 민주화를 부르짖던 청년학생들을 격분케 하여 용기백배 투쟁하는 진군의 나팔 소리가 될 것이라고 난 믿었다.


장군들의 분위기에 장단 맞추느라 겉으로는 염려스러운 듯이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나는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더 큰 힘으로 곳곳에서 일어서 주기를 바라며 시간 시간마다의 뉴스에 귀를 기우렷다.


하루는 장군식당에서 점심식사 중이었는데 마침 옆자리에 앉아있던 육본 보안 부대장이 이런 내 마음속을 다 읽고 있다는 듯이 나를 향해 “표 장군! 박 종철 사건 말이요, 억! 하면 욱! 할 수도 있는 건데”(당시 수사관이 수사도중 책상을 치면서 큰 소리로 ‘억’소리 치니까 ‘윽’하고 사망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음) 언론에서 너무 빠르게 나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군은 이에 대한 정훈교육을 빨리 시켜야하지 않겠어요!” 했다. 나는 “상황을 조금 더 지켜 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아직 사실 내용이 확실하지도 않고요”라 답했다.


그러자 그는 대뜸 큰소리로 “당신은 그러니까 문제 있는 장군이야!” 호통 치지 않은가! 난 당황하여 “아니 왜 이러 시요!”했더니 그는 완전히 실성한 사람처럼 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지금이 적기라고 나 나름대로 판단해서 말 한건데, 하라고 하면 하는 것이지 무슨 잔소리가 많아?”하며 완전히 부하 다루듯이 고압적인 자세로 마구 퍼붓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평소에 나를 얼마나 우습게보았으면 이런 식의 모욕적인 발언을 함부로 내 뱉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참고 참으려 해도 화가 치밀어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말이 좋아 장군이지, 날마다 푸대접 받으면서 신경 쓰느라 쌓인 분노가 일시에 폭발했다.


“야 이 세끼야! 육군의 정신교육 책임자는 정훈감인 나야! 너는 보안대 일이나 잘해! 네가 뭔데 문제 있다 없다 이래라 저래라 누구더러 함부로 말해!” 나도 일어서서 두 눈을 부라려 한데 갈기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말했다. 그는 “나는 대통령 각하께서 직접 육본에 파견한 사람으로서 운운” 하며 나를 문제 있는 장군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야! 이 새끼야! 나도 대통령이 임명한 장군이야! 하며 대꾸했다. 그는 밥 수저를 던지더니 획 나가버렸다.


울분이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보안부대장과 감히(?) 말다툼하고 있으니 다른 장군들은 입장이 곤란했던지 슬슬 빠져나가버렸다. 옆에서 함께 식사하던 동기생 오상숙 장군이 나를 달랬다. 그는 특별히 마음이 온유하고 착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분이다. “어차피 정훈감은 마치고 나가야할 것 아닌가? 기분은 나쁘겠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가서 잘 못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참으로 할 일이 많은데 그냥 옷 벗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부대장 방에 들려 ”최 장군! 내가 잘 못 했습니다.“라는 마음에 없는 굴욕적인 말을 던지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 후 내가 하는 일은 사사건건 걸리고 방해받았다. 살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육본에서는 정훈감실에서 주관하여 매 분기마다 유명강사를 초빙하여 교양강의를 실시했다. 한 번은 한 모 교수를 초청하여 관료제도의 문제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그날따라 전례 없이 참모총장이 직접 참석했다.


교육이 끝난 다음 총장이 나를 급히 불렀다. 어디서 그런 엉터리 강사를 초빙해 왔느냐며 강사 선정이 너무나 잘 못되었다고 한참 꾸중을 하더니 “그 교수 아주 삐딱한 것 같아! 정훈감이 만나서 직접 설득을 시켜봐!”하는 것이다. “네!”하고 대답은 했지만, 내가 그를 설득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총장의 지시라 어찌할지 몰라 고민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며칠 후 작전참모부장이 “내가 저녁 값을 조치해 줄 터이니 그 교수를 빨리 만나시요!”라고 재촉했다. 사실 저녁 값 때문이 아닌데. 내가 미덥지가 않았던지, 미국 유학 갓 다녀온 20기 이무웅 장군과 자리를 함께 하라고 했다. 나의 하는 일은 항상 의심받고 있었지만, 덕분에 나는 그 날 좋아하는 생선회를 허리 띠 풀고 먹을 수 있었다.


그 교수야 물론 막후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일을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니 비싼 생선회를 마음껏 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강의를 잘해서 대접받는다고 여겼으리라.


그가 김대중 정부 들어서서 제2건국 운동의 이론체계를 세워 전파하러 돌아 다니 길래, 국민의식개혁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과 대안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그를 만나 잘 못 가고 있는 제2건국에 대해 논의 건의하고 싶었는데 접촉 자체가 어려웠다. 정신문화원장 시도 비서실에 나의 신분을 자세히 밝히고 한번  뵙고 싶다고 몇 번 연락했는데도 가타부타 아무 답이 없었다. 관료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강의는 멋들어지게 했어도, 그 자신도 관료의 세계에 직접 들어와 보니 역시 편리한 점 많고 세속적인 기분에 취해 스스로 권위주의적인 탈을 벗지 못하게 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실망스럽고 불쾌했다.


노무현 정권의 소위 386세대라는 사람들 중에도 이와 비슷해진 분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개혁한다고 요란하기만 했지 쉽게 관료화됨으로서 중추적 주도권은 직업 관료들에게 모두 다 빼앗기고 잘못된 정책에 대한 질책만 뒤집어쓰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친일, 독재의 기득권 세력이 우리사회 각 분야에 너무나 깊게 뿌리내려져 있어 대단한 결단이 아니면 처음의 작심을 지키기 매우 어렵게 되어있다. 그래서 프라톤은 철인정치를 말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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