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평화재향군인회(가칭), 평화군인사랑회::

 
 
 
 
 
 
 
 

HOME > 평군자료실 > 표명렬의군개혁



 14. 전사자 호주머니에서 빼낸 칼(군대개혁에 바친 내 인생)

2007-12-30 19:47:09, Hit : 5384

작성자 : 표명렬
 두코 전투는 한국군 전투부대가 북쪽의 월맹 정규군과 일전을 겨룬 최초의 전투다. 두코 지역은 캄보디아 국경 가까이 있는 밀림의 대 평원 지대로서 북쪽의 월맹 정규군이 캄보디아를 거쳐서 월남으로 몰래몰래 들어오는 통로였다. 이런 월맹 정규군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임무를 띠고 맹호부대 기갑연대 제3대대가 두코 지역으로 이동하여 우리 11중대가 캄보디아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전초기지에 투입되었다. 적이 침투해 들어옴을 조기에 경고하고 포착 섬멸하는 역할이었다.

전 중대가 이동하여 적과의 접촉을 꾀하기 위해 하루 종일 조심조심 정글을 헤치며 정찰을 다니다가 저녁때가 되면 숙영지로 돌아오곤 했다. 숙영지에서 잠을 자는 동안 적의 야간 기습공격을 막기 위해 미군 전차 1개 반(4대)이 우리 중대 기지를 애어 싸 지켜주고 있었다. 우리는 판초우의로 얼기설기 하늘을 가려서 내리는 밤이슬을 대충 막은 다음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정찰을 떠나 정글을 뒤지고 다녔다.


이런 전투정찰 임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던 중에 우리 중대는 9중대와 임무를 교대하여 적의 위협이 거의 없는 안전한 대대본부 근처의 예비대 임무를 맡았다. 9중대장 이춘근 대위는 우리 중대와의 교대를 위한 합동 근무 중에 모든 진지를 유개호(뚜껑 있는 진지)로 만들었다. 작전 형태가 진지에서 적을 맞아 싸우는 진지전이 아니고 이동하면서 적을 발견하여 타격을 가해야하는 기동전 개념이었기 때문에 이런 난공불락의 진지를 구축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전술원칙에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 조치였다. 미군들도 입을 삐죽이며 호랑이(맹호부대)가 이빨이 다 빠져버려 두더지처럼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짓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전선이 없는 기동전 성격의 정찰 전에서는 적이 우리의 집결지를 알 수 없도록 수시로 숙영지를 옮겨야 하는데, 주위의 통 나무를 베어다가 흙을 두껍게 덮어 포탄이 떨어져도 끄떡없는 진지를 만든다는 것은 군대 상식에 어긋나는 그야말로 웃기는 짓이었다.


그러나 9중대장 이 대위의 이런 엉뚱한 조치가 오히려 월맹 정규군 1개 대대를 무력케 하는 전공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며칠동안 정찰도 하지 않고 중대장실 소대장실 등의 지붕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동안 중대기지가 적에게 노출되었다. 고의적 의도는 아니었지만, 적으로 하여금 중대를 공격 하도록 유도한 결과가 된 것이다.


그 날도 전 중대가 정찰을 갔다가 피곤한 몸으로 기지에 돌아와 취침을 하려는 참이었는데 제 1소대 1분대장으로부터 전방에서 땅 파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보고를 받은 소대장은 즉시 미군 전차 반에 연락하여 전차의 전조등을 비춰보도록 조치했다.


아뿔싸 중대 경계 철조망 근처까지 적이 새까맣게 붙어 있었다. 대전차 무기까지 갖춘 월맹정규군 1개 대대가 돌격개시선상에서 전개를 마치고 막 돌격하기 위해 호를 파다가(적 전술에는 돌격선상에서 호를 파도록 되어있음) 발각 된 것이다.


중대의 모든 화력을 쏟아 붇는 불꽃 튀기는 접전이 벌어졌다. 총탄이 비 오듯 퍼부어지고 밀려오는 적을 향해 너무 총을 많이 쏘아 총신이 벌겋게 달아올라 엿가락처럼 늘어질 정도가 되었다. 제1소대장 이춘식 소위는 분대장들을 격려하러 참호 속을 오가다가 적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헐떡이고 있었다. 미군 위생병이 쏟아지는 총탄 속을 헤치면서 뛰어 들어와 응급 처치해주었다. 미군 위생병은 부상병을 찾아 이쪽 참호에서 저쪽 참호로 뛰어 다녔다. 우리 병사들이 적이 오는 줄 잘못 알고 쏠까봐서 “에이드맨!(위생병이다!) 에이드맨(Aidman)!" 소리소리 질렀다.


미군 위생병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용감함이 없었더라면, 진두지휘하다가 쓸어졌던 이춘식 소위는 병원에 후송되기 전에 피를 너무 흘려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이춘근 대위와 중대장 임무 교대를 위해 진지에 와있던 신임 중대장은 진지 밖으로 뛰어나오다가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전투가 끝난 후 그 위생병에게 어디서 그런 용감함이 나오느냐? 하니 “아니, 전투 중에 수행해야할 나의 책임을 다 했을 뿐이다, 부상자가 생기면 응급 처치해야함은 너무도 당연한 나의 임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밀려오는 적이 이미 경계철조망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중대가 완전히 섬멸될 지경에 이르러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VT신관(포탄이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공중에서 파편이 되도록 설계된 고가의 포탄) 에 의한 진내사격(적군이고 아군이고를 구분 할 수 없이 뒤섞여 있을 때 함께 제압하기 위해 아군 진지 내에 포 사격을 가함)을 요청하여 순전히 포탄으로 적을 제압했다. 이는 아군의 진지를 유개 호(뚜껑 있는 진지)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으니 전적으로 이춘근 중대장의 엉터리 같은 결행이 월맹정규군 1개 대대를 끌어드려 섬멸하는 큰 공을 세운 것이다. 


우리 제11중대는 캄보디아 국경 쪽으로 야간 행군이동을 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정글을 헤치며 밤중에 기동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기 짝 없는 결정이었지만, 대대본부 참모들이나 대대장은 부하들의 죽음과 위험 같은 것은 전혀 고려치 않은 것 같았다. 미군 비행기가 높이 떠 하늘을 돌며 낙하산 조명탄을 밤새도록 던져주어 우리가 기동하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날이 환하게 밝아올 즈음 우리중대는 작전지에 도착하였다.


폭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자욱이 깔려있는 처절한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붕대를 감다가 눈을 빤히 뜨고 토막 나 있는 시체 포탄에 작살난 시체가 걸레 조각처럼 찢기고 짓이겨져 나무 가지 위에 참호 곁에 널려 있었다. 


이런 지옥 같이 처참 처절한 장면을 보는 순간 우리는 모두 얼굴을 찌 뿌려 그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가 축 처져 온몸이 늘어진 상태로 앉아있는데 미군 전차병들은 우리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희색이 만면 신나는 얼굴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167구의 시체를 하나하나 뒤적이며 호주머니 검사까지 하고 있었다. 어떤 미군 병사는 월맹군 시체 호주머니에서 빼낸 주머니칼을 우리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며 애인에게 선물할 것이라며 좋아했다. 중대전투교범에 의하면,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다. 첩보자료 수집을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는 전술교리고 뭐고 없이 모두 그대로 주저 앉아있었다.


이윽고 웨스트모렌 주월 사령관이 헬기를 타고 내렸다. 우리는 복장을 가다듬고 정렬을 하느라 법석을 부렸으나 미군들은 쉬고 있는 동작 그냥 그대로였다. 누어있는 채로 “하이! 웨스트모렌!”하며 손만 흔드는 병사도 있었다. 우리도 자유시간에는 4성 장군이 와도 끄떡없이 자유스러운 그런 군대가 되어야한다 생각했다. 주월 사령관은 널려 있는 월맹 정규군의 시체를 보더니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들은 사병 장군을 불문하고 적의 시체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런 것이 군인다움 아닌가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더라도 목적과 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즐길 수 있어야함이 참 직업군인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주월 사령관이 돌아가고 난 다음 미군들은 전차에 달린 도자로 짓이겨지고 찢어진 시신 조각들을 한곳으로 밀어 모아 흙을 덮어 커다란 분묘를 만들어 주었다. 장난기 서린 표정으로 그 위에 나무 가지로 만든 십자가를 세워주어 죽은 자들의 명복도 빌어주었다. 전쟁기념관 광장에 필자의 아이디어로 국군이 인민군 패잔병 된 아우를 감싸주고 있는 “형제의 상‘ 동상이 세워졌는데 김영삼 정부의 청와대에서 ”어떻게 인민군을 감쌀 수 있는가? 사상이 의심스러운 자의 착안이다“라 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두코 전투에서 미군들의 모습이 생각난 적이 있다.


그들은 결코 증오심을 가지고 적대의식에 불타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가 부여한 공적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는 편안한 자세로 임무에 임하고 있었다.


‘주적론’ ‘대북 적개심’ 이 따위는 군인정신이나 전투정신과는 아무 관련 없는 정치적 목적의 수사다. 지금도 우리장병들에게 이런 냉전 수구적 정치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그토록 치열했던 월남전에서의 미군들이 월맹군이나 월남 공산군에 대한 적개심 고취를 위한 교육을 하던가? 우리 맹호부대에도 전혀 없었다. 실재 전장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짓이요 오히려 전투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전 극우 세력들이 군을 자신들의 방패막이로 만들기 위해 꾸민 억지에 불과함을 알아야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목숨을 노리던 적군이었지만, 승리하고 난 다음에는 그들의 명복을 빌어줄 수 있는 그런 군대가 진정으로 강한 멋있는 군대의 모습 아니겠는가?


미군의 여단 규모 수색작전 시는 준장인 여단장도 직접 M-16소총을 들고 장병들과 나란히 함께 같은 대열에 서서 개활지를 횡단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 대대장들은 항상 많은 예비 중대에 둘러싸여 산꼭대기의 안전한 지휘소에 앉아서 큰소리만 치며 주로 헬기를 타고 왔다 갔다 했다.


이것이 어디 군대만의 일이었겠는가! 그동안 이 나라 각계각층의 소위 지도층이라는 분들이 살아온 모습의 진면목이 아니겠는가! 이런 분들이 장군 자리를 거의 다 차지해왔으니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이완용 일파나 다름없이 군사주권인 작전통제권 환수 반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15.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다.(군대개혁에 바친 내 인생)
13. 자존심 때문에 벽돌 깬 병사(군개혁에 바친 내 인생)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