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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계란 한개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던 시절(군대개혁에 바친 내 인생)

2007-12-20 19:14:43, Hit : 5289

작성자 : 표명렬
 -"나도 계란이요! "-

정작 목숨까지 던져서 전장으로 떠나는 사람은 소총중대 이하 장병들인데도 이들은 진정한 위로와 환송을 받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귀찮게 끌려 다니고 여기저기 행사에 동원되어 매스컴이 요구한대로 목에 힘주어 말하는 사람들의 그럴듯한 배경그림을 만들어주는데 필요한 엑스트라 역만 했다.


반복되는 지루한 연습 끝에 마지막으로 여의도에서 “맹호부대 용사들아!”를 불며 대대적인 파병 환송식을 마친 다음 우리는 기차에 실려 부산항으로 옮겨졌다. 부산항을 떠나기 전 부두에 배가 정박된 상태에서 또 우리들의 진을 완전히 뺀 그 지긋지긋한 환송 행사가 있었다.


대대장들과 연대장은 윗사람과 거기 모인 지방 유지들에게 질서 정연 멋있는 그리고 사기 높은 듯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가진 쇼를 다 했다. 보여주기 위한 행사에 우리 병사들이 얼마나 지쳐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TV에 멋있게 잘나가고 장군들로부터 잘한다는 말을 듣는대만 정신 팔려 있었다. “줄도 하나 못 맞춰! 이XX들! 줄이 비틀어 졌어! 임마 잘 맞춰! 박수소리가 왜 이리 적어! 크게 좀 못 처!”빨리 나와! 즉시 들어가! 보이지 않게 꺼져“ 하며 대수롭지도 않은 일들을 가지고 순전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멋있다 잘한다는 칭찬 소리를 듣기위해서 인간 몰이꾼이 되어 안간힘을 쓰며 소리소리 질러 우리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너무 시달려  완전 지쳐 있었다. 


차라리 빨리 떠나 버렸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출발한다 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소대장 몇 명과 함께 잠시 육지에 내렸다. 조국 땅을 마지막 밟아본다는 감격이 북받쳐 발을 구르며 무작정 뛰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잘 있거라! 내 사랑 내 조국아!” 흙에다 뺨을 데고 이리저리 부비기도 했다. 나의 선조들이 대대로 묻혀계신 나의 고향 완도 쪽을 향해 엎드려 절하고 또 절했다. 할아버지, 어머님, 아버님의 근심어린 얼굴 모습이 자꾸 자꾸 떠올랐다.


원래 미 해군들의 배위에서 식사가 좋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대단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일류 호텔식당에 못지않을 이름도 모르는 다양하고 풍부한 메뉴가 즐비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음식이 나올까? 식사시간이 기다려졌다. 메뉴판을 보며 각자가 직접 선택해서 주문하는 이런 식사는 처음 이었다. 영어를 잘 못하니까 앞사람이 가장 쉬운 단어인 에그!(egg)하고 계란을 주문하면 “나도 같은 것으로요!(Me too!)”가 계속 되었다. 사실 당시 우리는 온 계란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랐었다. 이래저래 애꿎은 계란만 집중적으로 시키는 바람에 얼마 안 있다 동이 나버렸다. 이런 사정을 알리 없는 필리핀 출신의 취사병은 한국 사람들은 무슨 놈의 계란을 그렇게도 잘 먹느냐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며칠 가지 않아서 우리가 아직 일류 음식을 선택해서 먹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여겼던지 식사가 통일된 메뉴로 간편하게 바뀌었다. 눈치 볼 필요 없어 차라리 편했다.


대만해협을 지날 때 파도가 높았다. 드디어 월남퀴논 항에 도착했다. 하선하기 전에 먼저 와있던 선발대 사람들이 승선하여 우리에게 겁을 주었다. 베트콩이 여기저기 우글거리고 있으니 정신 팔면 코비어간다고들 했다. 우리는 너무 긴장하여 마치 적진지를 향해 최후 돌격이라도 하듯이 철모 끈을 내리고 꽂아 칼 자세로 크게 “야!”함성을 지르면서 바꿔 탄 보트에서 모래 위 육지로 뛰어 내렸다.


모를 심고 있는 농부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애써 우리를 외면했다. 굳어 있는 표정이 한눈에 봐도 우리에게 우호적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날고 있고 우리 맹호 부대 용사들을 태운 긴 차량행렬이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가거나 말거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하도 전쟁에 시달려 주인인 본인들은 지쳐있고 무관심한데, 괜스럽게 외국 군인들이 몰려 와서 전쟁을 하고 있음에 분노하고 있는 것 같은 창백하고 무관심한 표정이 소름을 끼칠 정도로 차가웠다. 이런 첫 인상으로 보아 “아! 이 전쟁은 실패다. 졌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전쟁의 당위성에 대한 월남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음이 분명해 보였다. 


기지에 도착하여 휴대품 일제 검사를 실시했다. 병사들은 미군 수송선에서 내리면서 별별 것들을 다 배낭 속에 넣어 가지고 왔다. 스푼, 포크, 나이프 한두 개씩은 거의가 다 넣고 있었다. 어떤 병사는 무엇에 쓸려고 그랬는지 수송선 세면대 앞의 거울까지 뜯어 왔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 가난에 쪼들려 살아 온 터이라 죽음을 향해가면서도 그런 하찮은 물건들에  대해 애착을 가진 것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아 병사들을 나무랄 수가 없었다.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쓴 웃음을 지으며 “검사 끝!” 해버렸다.







13. 자존심 때문에 벽돌 깬 병사(군개혁에 바친 내 인생)
11. 불효 막급했던 젊은 날<군대개혁에 바친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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