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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장군 망신시키지 마시오!” <군대개혁에 바친 내 인생>

2008-01-21 19:07:43, Hit : 5063

작성자 : 표명렬
 오직 ‘정신(심리)전력 강화’ 이 한 가지 일에 미쳐서 정신없이 도전하고 고민하며 주장하느라 바람 잘 날 없이 고달프게 악쓰며 뛰어왔던 나의 군대생활도 1987년 7월 6일 드디어 막이 내려졌다.
‘정신전력’은 무형전력이기 때문에 말로서 그 중요성만을 강조 주장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강화될 수밖에 없도록 조직과 제도를 구축해야하는데 기존의 체제에서 이미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장군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나의 참모제도 개혁안에 대해 간단히 동의 서명할 이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나의 온 정열을 여기에 집중 끊임없이 발버둥친 결과 누가 봐도 불가능할 것 같던 심리전력 주관의 새로운 참모 조직을 기적적으로 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겨우 조직을 만들었을 뿐, 이를 교리 제도화하는 후속조치가 산적해 있는데 군을 떠나야하니 돌봐줄 사람 없는 갓난아기를 놔두고 그냥 사라져가는 부모의 심정 같았다.
박명환 참모차장께서는 나의 상관이었던 천용택 참모부장에게 “표장군은 지금 이뤄놓은 일을 마무리해야 하니 법적으로도 가능한 2년간의 복무연장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했다한다.
그러나 천 장군은 인사참모부장 임인조 장군이 “장군이 되서는 안 될 사람을 시킨 건데, 절대 불가 합니다”라는 말에 겁을 먹고 참모총장에게 건의조차 하지 않았다 한다.
사실 군단장으로 진출해야하는 그가 하나회의 막강한 실력자인 인사부장 임 장군의 말을 거스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더구나 건의해봤자 퇴자가 뻔할 것이고 하니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 금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만 49세에 꼭 쫓겨난 것만 같은 씁쓸한 기분을 안고 나의 몸과 마음 모든 것을 다 바쳐온 군문을 나왔다.
처음 몇 개월 동안은 아침 8시까지 부대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딴 세상에 온 것처럼 너무 좋았다. 마음대로 늦잠도 자며 한참 동안 자유의 천지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 할일 없이 무질서하게 지내다보니 허리디스크, 대상포진 등 병도 생기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직업을 찾기로 했다. 가능한 한 공직이 아닌 전혀 새로운 자유스런 직업을 내 자력으로 택하고 싶었다.
새로운 직업의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너무나 오래 동안 목에 힘을 주어 딱딱하게 굳어져버렸을 사고방식과 행위를 유연성 있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했다. 우선 가게를 차려 목에 힘을 빼는 훈련부터 하기로 했다. 무슨 가게를 할까? 궁리 끝에 당시 처음으로 생긴 문방구겸 선물가게 체인인 ‘아트박스’ 지점을 차리기로 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장군출신이--, 어떻게 고개를 숙여 “어서 오세요! ” “안녕히 가십시오!” 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주위사람의 말림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중이었는데 한분 좋은 스승을 만났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개인택시를 타고 가는데, 그 기사님의 모습이 정말이지 천사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환갑이 되었을 법한 할아버지인데 웃음을 잃지 않은 밝은 표정과 진심 어린 친절함, 안정되고 여유 있게 보이는 그런 분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새로 시작할 나의 직업에 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 친구가 “마흔 아홉에 정년퇴직이라! 그건 너무 빠르다!”라고 하자, 그 택시 기사님이 빙그레 웃으며 “저는 정년퇴직이 없습니다.” 하지 않은가!
그는 내가 새로운 직업을 찾고 있음을 감지하고 계속해서 자기의 직업에 대해서 말을 이어갔다. “저는 외상이 없습니다!” “저는 재고가 남지 않습니다!” “저는 날마다 많은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시내의 값싸고 잘하는 음식점은 안가본 데가 없습니다.” “손님은 왕이라고 했는데, 내가 차를 몰고 나오면 왕들이 서로 나에게 돈을 주겠다고 자기들끼리 다툽니다.---”
그리고 어디 꼭 기분 좋은 일만 있으랴 만은 낙관적이고 밝은 긍정적 사고가 아예 습관화 되어 몸에 베어있는 듯 했다.
“어떤 때는 젊은 남녀가 내 차를 잡으려고 가까이 서 있고, 저 먼 쪽에 한 노파가 짐 보따리를 나두고 서 있으면 나는 젊은이들을 안 태우고 그 노인을 태웁니다. 나는 봉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언뜻 에리히 프롬의 ‘존재냐 소유냐(To Have or To Be)’가 생각났다. 그 기사님이야말로 존재이유, 삶의 목적을 봉사에 두고 아름답게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분이라는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
물질적인 보상에만 집착함 없이, 남이 내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같은 것에 흔들림 없이, 나 자신이 어떤 생각과 행위의 자세를 가지고 일하고 있느냐? 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준 스승이었다.
난 처음 생각했던 바대로 강동 구 변두리 명일 동 버스 종점4거리 코너에 ‘아트박스’ 선물 가게 지점을 차렸다. 고객들은 대부분 여학생들과 젊은 엄마들이었다. 날마다 엄청나게 팔려 돈도 많이 벌었다. 선물을 어떤 것으로 할까 고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일을 도우며 봉사하고 있다 생각하니 조금도 주저주저 할 이유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의 소녀들 틈에 끼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하루는 들어오는 한 남자 손님을 향해 “어서 오십시오!”하고 고개 숙여 공손히 인사를 했는데 그가 못 볼 것을 본 듯 깜짝 놀란 표정으로 “표 장군님! 이거 어찌된 일이십니까?”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바라보니 국군정신전력학교에서 함께 근무했었던 김 주찬 해병 중령이었다.
이후 표명렬이 점방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군대 등 사방에 퍼져나갔다. 내가 장군 출신인줄 모르고 있었던 주위의 가게하고 있는 분들은 아주 기분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로 인해 자부심을 갖는 듯하니 이런 것이 바로 한때 지도적 그룹에 있었던 자로서의 모범적 삶이 아닌가 하는 교만한 생각도 들었다.
현역에 있던 선배 및 동기생 장군들로부터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 “어이 표장군! 요새 표장군은 돈벌라고 가시나 들한테 ‘어서 오세요!’하고 있다면서! 장군 망신시키지 마시오!.”하는 공갈조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격려의 전화도 있었다. 주로 대령으로 전역한 동기생과 고등학교 친구 들로부터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연대장시절 부하병사의 월북사고로 인하여 조기에 전역 당했던 조동호 동기회 총무는 직접 가게에 찾아와 내가 장사하는 모습을 보고 “야! 표장군! 역시 너답다. 너니까 할 수 있는 아주 멋있는 모습이다. 훌훌 털어버리고 그렇게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 저녁을 사주며 격려해 주었다.
직업은 다를 뿐이다. 장군은 군대라는 특별한 직업 속에서의 한갓 직위에 불과하다. 군대에서 장군으로서 누렸던 권한은 그 만큼 큰 책임을 수행하는데 필요해서 위임받아 행했을 뿐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가 보편화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 후 나는 고향 선배가 사주로 있는 ‘월드 맨 파워’라는 취업 전문 회사를 맡아 경영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올바른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서 크게 놀랬다. 직업을 통해서 삶의 보람을 느끼며 자아를 실현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직업의식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 이에 대한 준비를 했다.
나는 기업체로부터 초청받아 “직업의식 개혁” “21세게 새로운 시대의 직업관”등 ‘사람’과 ‘일’에 대한 생각의 습관을 어떻게 건전하게 길 드릴 것인가를 중심으로 한 특강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군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의무 복무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바람직한 직업관이 정립되어야하는데 나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못했다. 무작정 열심히 비전을 향해 뛰었을 뿐, 아주 중요한“재미있게!”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빠져있었다.
직업에 임하고 있는 나의 생각과 태도가 나의 존재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며 진정한 자부심과 보람의 근거가 된다. 우리 장병들이 군 복무를 통해 바람직한 직업의식을 함양하게 됨으로서 우리국민들의 직업의식을 건전화하는데 기여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란 막연한 강조만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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