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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독재정권 문어지면 전쟁기념관 부서질 줄 알았는데<군대개혁에 바친 내 인생>

2008-01-21 18:55:27, Hit : 4824

작성자 : 표명렬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전쟁을 통해서 국가 이익을 창출하거나 확대했던 역사적 경험이 없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외적으로부터의 숱한 침략을 받아왔고 통한의 식민지 경험까지 했지만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

광복 후에는 강대국의 냉전각축에 놀아나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렀다. 이렇게 전쟁의 참담함에 시달려온 우리민족이야말로 인류의 평화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평화사랑의 이런 위대한 우리민족에 대해 식민사관에 찌든 일본군 출신들은 일본제국 군대에 몸담았던 매국적 행위가 무슨 큰 자랑이라도 되듯 후배 간부들에게 “전쟁도 한번 주도적으로 일으켜보지 못한 부끄러운 민족”이라는 망발을 함부로 떠벌여왔다.


이런 자들이 긴 세월동안 우리 군을 장악 민족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해왔으니 고급간부 출신 예비역들에게 민족적 자존심이 깃들 이 없다. 일본 극우분자들이 안중근 열사를 폭도라고 주절대며 김구 선생을 폄하하는 망발을 그대로 받아 앵무새처럼 지껄이고 다니는 얼빠진 육사 출신 예비역 간부가 있음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들 친일 반역도들과 군사독재의 냉전극우 무리들은 지금도 그들이 일제의 앞잡이 하던 때 품고 있던 사고방식 그대로 변함없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속국처럼 되어도 실속만 챙기면 상관없다는 듯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오지 말아야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자신들의 기득권만 보장된다면 나라꼴이야 어찌 되든 좋다는 집단이기심에 포로 된 자들이다. 민족적 자존심이라곤 손톱만치도 없는, 사대주의에 완전 함몰된 무리들이다. 


이런 친일 독재의 냉전극우주의 자들이 그동안 우리사회의 정치, 경제, 교육, 법조, 문화, 언론, 군대 등 각 분야를 석권하여 기득권세력으로 탄탄한 철옹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군국주의 천황의 충견노릇 하던 그대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에 빌붙어 불의한 권력의 전위대역을 담당해준 대가였다. 또한 군사주의 미국의 이익에 충직하게 봉사해온 덕분으로 얻어낸 전리품이라 할 수 있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정상적인 경쟁을 거쳐 정당하게 차지한 기득권이 아니었다.


민족사적 준엄한 심판을 받았어야할 친일 역도들은 자신들의 잔인무도한 민족 반역의 범죄행위를 낱낱이 기억하고 있는 항일 독립 운동가들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광복된 조국의 군과 경찰을 완전 장악한 그들은 이들 민족주의자들 대부분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하여 자신들의 행적이 들어나지 않게 하는 일에 혈안이 되었다. 6.25는 이런 그들을 애국자로 둔갑시켜준 결정적 계기였다.


노태우가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일본군대 출신 일색의 소위 군 원로라는 사람들에게 6.25전쟁 기념관을 지어주기로 공약했다. 이는 동족상잔의 625를 치러낸 친일세력들을 애국자로 부각하여 천년만년 받들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민 세뇌교육의 선전선동을 통해 친일 매국노들, 살인마적 군사독재자들을 애국자로 변조하기 위한 거대 음모 중의 하나였다. 전쟁을 기념 한다--. 그것도 6.25전쟁을. 어디 될법한 말인가? 


전제 군주 시대의 서구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왕실의 존망이 전쟁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가장 큰 관심은 전쟁이었다. 모든 국력은 전쟁 준비에 집중되었다. 영국의 런던 교외에는 전쟁 박물관이 있다.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 장군이 나포레온에게 승리하였음을 크게 부각하고 있다. 파리에는 나폴레옹 기념관이 있으며 스페인도 전쟁박물관을 만들어 전쟁을 통해서 영화를 누렸던 역사를 기념하고 있다.


국방부에 전쟁기념사업회가 발족 되었을 때 나는 사업회의 활동 방향과 전쟁기념관 건립의 대강인 기조를 작성하는 책임을 맡아 일한 적이 있다.


전쟁기념관 건립의 기본 개념을 ‘우리 민족은 참으로 위대하다’를 대 전제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불러일으키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민족정신 고양의 교육도장으로 만들리라고 마음먹었다. 전쟁 기념관을 관람하고 나오면 우리 민족의 위대성에 가슴 뿌듯해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심한 민족이다. 전쟁도 한 번 일으켜 보지 못한 전쟁준비를 전혀 안했던 너무나 허약한 민족으로서 강대국에 당해야만 싼, 별수 없는 민족이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며 나와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민족을 멸시하며 살아온 분들이 전쟁기념관 건립의 실권을 쥐고 있었다. 대부분 일본 군대 출신들로 군내에서는 존경받아온 분들도 있었는데 가까이 곁에서 보니 처세에 특별히 능하여 인기 관리를 그렇게 잘하고 있었을 뿐, 그들의 속내 정신과 행동양식은 대부분 식민사관에 찌들대로 찌든 구제불능인 분들이 많았다. 구라파 선진국이 전쟁준비를 하고 있을 때 우리는 당파싸움만 하고 있었다는 것을 부각하라는 식의 일제 식민사관에 완전 세뇌된 자들이었다. 


이렇게 대전제(大前提)와 기본 발상부터 근본적으로 크게 어긋나 있으니 나와는 사사건건 충돌이었다. 우선 전쟁기념관의 명칭 문제부터 의견이 달랐다. 그 분들은 당초 ‘6.25 전쟁기념관’을 의도하였었는데 여론이 너무 좋지 않고 명분이 약해지자 그냥 ‘전쟁기념관’으로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사업회 전(全)직원들의 여론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로는 전쟁을 기념한다는 말이 적절치 않다”고 의견이 종합되었고 사회 각계 인사들의 의견 조사에서도 같은 설명들이어서 이를 근거로 명칭을 바꾸어야한다고 주장 건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너희들이 전쟁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라는 식이었다.


기념관 건물의 형태에 대한 논의에서도 갈등이 심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육군본부 현재의 건물 뼈대를 그대로 두고 개 보수하여 건립하자고 주장했지만 그분들은 완전히 헐어버리고 웅장한 새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육군에서도 육본의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참모총장이 종합하여 사업회장을 방문 의사를 표명하였다. 프랑스의 나포레온 기념관이 당시의 병원을 개조하여 만든 것처럼 일본군의 마구간이었고 육군본부 건물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허물고 새로 지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백번 옳았지만 일은 각본 짜여진 대로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사업회는 반대의견에 부닥치거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원로자문위원회’라는 들러리 역을 소집하여 크게 대접하고는 방망이를 두들기면 그만이었다. 막대한 예산을 드려 웅대한 새 건물을 짓기로 거기서 결정한 다음, 이를 근거로 하여 굳세게 밀고 나갔다. 국가 재정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건설회사만 배불릴 일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옛날의 왕궁을 연상케 하는 권위주의적인 웅장 거대한 건물을 짓고자 하였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처럼 실용적인 현대식 건축물을 주장하였다. 결국 그분들의 생각을 공식화하는 원로자문위원회 검토라는 요식절차를 또다시 밟아 그들 뜻대로 결정해버렸다. 기왕의 왕궁을 사용한다면 모르지만, 새삼스럽게 서구의 옛 궁전처럼 본 건물 양옆으로 회랑을 길게 뻗어 나오게 한 것이라든지 건물 정면에 연못을 파게 만든 것 등 참으로 못마땅한 설계였었지만 그대로 추진되었다.


내가 작성한 전쟁기념사업의 기조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했다. 나는 기념관 속에 우리 민족의 살아서 꿈틀거리는 민족혼과 그것을 설명하는 우리 민족의 군사 사상을 담고자 하였다. 우리 민족의 위대성에 대해서 놀라운 감동을 받게 되는 그런 기념관을 생각하였지만 실재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결국 사표를 내고 나왔다.


난 군사독재가 문어지면 정의로운 젊은이들에 의해 전쟁기념관은 부셔질 것이라고 여겼다. 군사독재의 유물인 전쟁기념사업회 법 폐기하고 평화 기념관이나 평화박물관 혹은 민족기념관으로 바꿔야한다.


 









29., “장군 망신시키지 마시오!” <군대개혁에 바친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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