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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안중근 의사와 우리 군의 전통<군대개혁에 바친 내 일생>

2008-01-23 10:00:08, Hit : 4993

작성자 : 표명렬

우리 민족 고유의 군사 사상을 몇 마디로 표현하라 한다면 방어적 총력전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문화 민족이다.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이 땅에서 살아오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다른 나라를 먼저 침략 공격한 적이 없다. 방어 전쟁만으로 5천년 역사를 지켜온 위대한 민족이다. 그러나 일단 적의 침공을 받았을 때는 민.관.군이 따로 없이 모두가 한데 뭉쳐 끝까지 싸우는 총력전으로 나라를 지켜온 자랑스런 민족이다. 왕실간의 권좌 쟁탈을 위한 전쟁도, 종교적분쟁의 전쟁도, 계급간의 전쟁도, 식민지 쟁탈이나 경제적 이익 도모의 전쟁도 아닌 우리 민족사에만 있는 ‘의병전쟁’이라는 독특한 전쟁의 형태가 바로 우리의 군사 사상을 설명해주고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군사 사상을 기조로 한 우리 국군의 정신적 전통은 향토수호의 의병전쟁, 광복군의 항일 독립 전쟁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면면히 이어 내려온다. 그 중에서도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왔던 광복군의 빛나는 활약상은 우리 국군의 자부심을 드높일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근거요 힘이다. 그런데도 우리 군 어디에서도 이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신흥무관학교 출신 간부들에 의해서 치러졌던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의 그 자랑스런 피가 우리국군의 맥박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건만 군을 장악하고 있었던 친일 세력들은 그 장엄한 항일 독립 전쟁의 발자취에 대해서 눈과 귀를 막고 폄하해 왔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직후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고 난 후 “나는 우리나라의 의병참모 중장이다. 포로로 대접하라”고 의연하게 말씀했다. 그러나 광복이 된 후 지금 까지도 우리 군은 그를 대한민국 국군의 선배로 대접하지 않고 있다. 항일 독립 전쟁에서 광복군․독립군의 이름으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배님들이 너무나 많았었건만 우리는 그 분들의 행적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


군 정신교육의 근본적인 개혁이 절실하다. 특히 사관학교 생도들을 비롯한 양성과정의 훈육은 전면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사관학교의 생도 정신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훈육은 대학과정의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과는 구별된다. 사관학교에 들어서면 안중근 의사의 애국 혼을 흠뻑 느낄 수 있고 광복군 선배님들의 빛나는 승리의 발자취를 확인 할 수 있어야 한다. 윤봉길 이봉창 선배님 등 위대한 우리 선배님들의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릴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었던 시대에 왕실을 지키기 위한 군인이었던 화랑 관창을 예를 들어 그의 애국심이 어떻고 하는 시대착오적인 말들은 더 이상 오가지 말아야 한다.


동대문 창신동의 눈물


1986년 9월 17일, 광복군 창군 제 46주년 기념일을 맞아 나는 당시 참모총장을 설득하여 광복군 선배님들을 육군본부에 모셔 대접하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우선 먼저 광복군 동지회 사무실을 방문하여 행사 계획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동대문 창신동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서너 평의 어둠침침한 방안에 몇 분이 모여 계셨다.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신 분들에 대해 우리가 너무나 무관심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선배님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의연 당당하셨다.


광복군 선배님들은 우리 군대 내에서 수적으로 너무 열세했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부귀영화를 쫓아 일본군에 몸을 담은 처세술에 능한 분들과는 경쟁이 되지 않아 거의 광복 후 군의 요직으로 진출하지 못했다. 대부분 성격이 곧고 불의를 참지 못하시니 세상 살아가기가 고달프시고 어려웠으리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또한 미 군정 당국과 군사 고문단의 입장에서는 우리 군대를 만들 당시 기능주의적 관점으로만 판단하였기 때문에 누가 더 총을 잘 쏘고, 각개 전투를 잘 하며 중대 전술 등 정규 훈련을 더 많이 받았느냐가 중요했다. 민족의식, 애국애족 같은 것은 그들에게 오히려 골치 아픈 부담이었을 지 모른다. 이렇게 되어 마침내 우리 군은 친일 세력들의 독무대가 되었다.


노령의 선배님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했다. 의장대의 분열이 있을 때는 눈물을 흘리시는 선배님들이 많으셨다. 국군으로부터 이런 정식의 대접을 받기는 처음이라 하시며 깊은 감회를 감추지 못했다. 분열이 끝난 다음 대강당에서 ‘항일 독립 전쟁 정신’이라는 연극을 관람하고 육군 회관에서 만찬을 하였다.


만찬 장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선배님들이 일어서서 ‘광복군 군가’를 눈물을 쏟으시며 부르실 때의 그 비장한 모습을 보며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육군 본부 장군들과 노(老)선배님들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푸른 하늘 은하수’도 불렀고 ‘전우의 시체’도 불렀다.







46. 이런 군대를 꿈꾼다<군대개혁에 바친 내일생>
44. 사관학교의 전신, 신흥무관학교를 아는가? <군대개혁에 바친 내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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