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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사관학교의 전신, 신흥무관학교를 아는가? <군대개혁에 바친 내일생>

2008-01-22 15:15:51, Hit : 4988

작성자 : 표명렬
  1907년 초 안창호, 이동영, 노백린 등 30여 명의 애국지사들이 서울에 모여 항일 결사조직인 ‘신민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장차 나라가 일제에 탈취 당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에 민족독립운동도 장기전으로 갈 것으로 판단하여 해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이희영 등 동지 몇 명이 만주 삼원보 땅에 가서 국권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군대를 양성해야만 한다고 외치면서 ‘신흥강습소’를 설치하였다. 이것이 우리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신흥무관학교’의 효시이다.

초대 교장은 석오(石吾) 이동녕이었다. 그가 새벽 조회 때 수백 명의 사관생도를 앞에 놓고 엄숙히 훈계한 말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대한의 청년 동지 여러분! 지금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우리가 추운 땅 만주에서 무관학교를 세우고 소정의 교육을 받는 것은 조국을 다시 찾겠다는 군인 정신의 총화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견디는 고된 훈련을 통해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을 길러 무관으로서의 기백과 담력을 키우자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부터 1919년까지 3500명의 20대 초반의 청년들을 집중 육성한 우리 민족의 군사학교다. 여기서 소정의 교육을 받은 청년사관들은 곧 실전에 배치되었다. 항일 무장 투쟁사에 기리 빛날 봉오동 전투(1920년 6월)와 청산리 대첩(1920년 10월)에서 기간요원들은 모두 이곳 ‘신흥’ 출신 이었다


제2대 교장이었던 임시정부 요인 이시영은 “신흥무관 학교는 우리 민족의 최초의 사관 집단 육성소로서 그 정신이 곧 애국애족의 효시요 요람인 것이다. 나는 이것을 참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애국적 군인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8. 15를 쟁취할 수 있었다”라고 회고하였다. 광복 이후 초대 부통령이 되었던 그는 만주벌을 누비던 신흥의 높은 기상을 늘 잊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동녕은 1919년 4월 13일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선포할 때 그는 초대 임시의정원 의장(지금의 국회의장)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부터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입니다. 군주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입니다.” 이 때의 감격스러웠던 대한민국 선포식에서 50대의 그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는 1940년 3월 13일 중국 기강의 낡은 임시정부 청사 2층에서 72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이동녕 주석이야말로 우리 육군사관학교의 자랑스러운 초대 교장이다. 그러나 그의 초상이 육사에는 걸려 있지 않다. 우리가 육군사관학교에 다닐 때 그랬듯이 지금도 생도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항일 독립전쟁에서 장렬히 목숨 바친 선배님들의 거룩한 넋들이 모아져 우리 국군이 창설되었고 우리 육군사관학교가 설치되었다는 이런 자랑스럽고도 감격스런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지내왔다.


역사왜곡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친일 세력들에 의한 고의적인 역사의식 말살과 민족정기 훼손 작업에 휘말려 우리 국군의 역사, 우리 육군사관학교의 역사는 너무나 왜곡되게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잘못된 내용을 오랫동안 열심히 가르치고 듣다보니 그들이 원하고 유도한바 그대로 우리의 의식이 형성되어 고착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민족혼이 빠진 군대, 민족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군 간부들을 양산하게 되었다. 조국 광복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희생하신 선배님들 앞에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군은 민족의 빛나는 항일 독립전쟁 과정에서 탄생한 우리 국군의 위대한 건군 사상과 이를 실재 군사력으로 뒷받침한 육군사관학교의 건학 이념 및 정체성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롭게 정립하여 친일세력들이 만들어낸 왜곡된 역사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군의 효시는 광복군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이는 군대생활 시절, 가장 많이 듣고 외치던 말 중의 하나다. 여기서 ‘민족’ 이라는 말이 ‘국민’보다 훨씬 더 우리의 가슴에 가깝게 와 닿는 것은 단일 민족으로서의 역사성과 문화적 동질성을 함께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민족이라는 말에는 문화가 꿈틀거려 이어지고 정(情)이 서려있어 정신적 일체감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것은 미군 등에는 없는 우리 국군이 가지고 있는 큰 장점이다.


우리 장병들에게 일깨워야 할 가장 중요한 정신은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장병들로 하여금 우리 민족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국군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자부심이 없는 군대는 죽은 군대다.


우리 국군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이 비탄의 신음 속을 헤매고 있을 때에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 항일 독립 전쟁을 전개했던 위대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북한을 앞세운 공산 진영의 6.25 남침을 단호히 물리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 온 자랑스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국군 장병들에게 우리 국군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군이 우리 민족을 위하여 걸어온 이러한 빛나는 역사와 자랑스런 전통을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국군 창설 과정의 민족사적 의의와 역사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처음 군대 생활을 시작 할 때 대한민국 국군의 효시는 ‘국방 경비대’라고 배웠다. 그리고는 더 이상의 설명이 이어지지 않았다. 국군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어서 이 중요한 국군 역사의 부분에서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냥 지내온 것이다. 


만약 “우리 국군의 시작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이다”라고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알려 주었다면 그 교관의 눈에서는 광채가 났을 것이고 목소리는 자랑스러움에 떨렸을 것이다. 그렇게 무 덤덤하게 몇 마디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은 더 크게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그리고 민족 앞에,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행동해야 하겠다는 깊은 생각을 하며 더욱 입술을 굳게 물고 살았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국군은 첫 시작부터 친일 세력들의 의도대로 가장 중요한 민족이라는 의미를 배제한 체 출발하였다. 자랑스런 마음으로 가슴 벅차게 느껴야 할 국군의 이념과 존재 의의 등을 우리는 그냥 건성으로 외우며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자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법통은 항일 민족 독립전쟁의 주축이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우리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왕실에서 벗어나 민국(民國)이 건립된 그때를 효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국군의 효시는 임시정부의 정식 군대였던 ‘광복군’이 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화랑도 정신이나 성웅(聖雄)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정신 등은 하나의 역사적 참고 사실은 될 수 있어도 우리 국군사의 구체적인 정신적 모체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 국군 정신사의 가장 중요한 항일 독립 전쟁의 자랑스런 역사의 부분은 삭제해 버리고 왕실 시대로 멀리 거슬러 올라가 화랑도 정신 운운하며 궁색하게 국군의 정신을 말하다가 다시 국방 경비대를 들이밀며 그 정기를 흐리게 해왔다. 이것은 바로 일본 군대 출신의 친일 세력들이 우리 국군을 석권하자 자신들의 반민족적 친일 행적을 감추기 위해서 국군의 정신사적 맥을 짤라 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우리 국군에 미친 해악의 그림자는 오래도록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문민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외치며 해외에 묻혀 있던 독립 운동가들의 유해를 국립묘지로 모셔오는 등 부산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껏 일제의 총독부 건물을 허무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일만 요란했을 뿐, 문화와 정신 속에 뿌리깊게 베어 있는 총독부는 조금도 손대지 않았다. 군국주의 일본 군대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우리 국군의 문화와 의식의 개혁이야말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 번째 대상이 되어야 함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국군은 민족의 정통성을 이어온 자랑스런 민족의 군대다. 그러나 우리가 민족의 군대로서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에 소홀한 동안, 본질적으로 계급의 군대일 뿐, 민족의 군대가 될 수 없는 북한군이 마치 민족의 정통성을 가진 군대로 자신을 날조하고 선전해왔다. 전체주의 독재권력을 지탱해주는 하수인에 불과한 북한군과 우리 국군은 본질적으로 엄연히 다른데도 말이다. 민족의 군대로서 국군의 정통성과 혼을 되살려 내야 한다.


새 천년 들어 몇몇 뜻 있는 정치인들에 의해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명단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광복 후 57년이 지나서야 겨우 일부 명단만 공개되었는데도 그 대표적 극우 냉전 수구 신문은 사안의 중요성에 관한 본질문제는 덮어버린 체 발표과정의 절차상에 무슨 큰 잘못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엉뚱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국민들의 관심을 지엽적인 문제에만 쏠리도록 안간힘을 다했다.


이렇게 우리 사회 곳곳에는 친일 세력들과 그들을 적극 대변하고 사수하듯 감싸고 있는 나팔수들이 탄탄히 자리 잡아 사회 각계각층을 장악하고 있다. 그들의 영향력 때문이었는지 가장 먼저 발표되고 가장 철저히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할 핵심 대상이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일본군 장교로 임관하여 반민족 활동의 첨병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조국이 적의 침탈을 받아 그 지배 하에 놓여 있을 때, 그 적군에 대항하여 싸우는 무장투쟁이야말로 국권회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항쟁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을 성취한 후에는 반드시 적군 편에 서서 이적행위를 했던 사람들을 처벌하는 하고, 그러한 역사적 교훈을 후대에 남겨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자랑스런 우리의 독립군과 광복군이 항일 독립 전쟁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을 때, 일본 군 장교로 자원입대하여 이들을 제압하고 제거하는 일에 앞장섰던 반민족 세력들은 조국 광복과 더불어 어느 부류의 인사들보다 가장 먼저 응분의 엄격한 심판을 받았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지러웠던 해방 정국의 상황에서 미군정의 의도와 이승만의 정치적 야욕이 합치되어 오히려 이들 반민족 세력들은 군을 완전 장악하고 급기야 정권까지 차지했다. 이 역사적인 과오는 우리 국군의 정신사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들은 민족을 배반했던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 행적을 감추느라 국군의 존재 이유가 되어야 할 ‘민족’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제거했다. 그리하여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서려있는 민족의 군대, 인간존엄을 제일의 가치로 하는 민주군대로의 성장을 저해했다.


지금도 그들은 군의 원로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갖가지 형태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 국군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도 그들의 명단은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









45.안중근 의사와 우리 군의 전통<군대개혁에 바친 내 일생>
43.군 정훈교육 달라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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