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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군 개혁 로드맵(2) <인물과 사상지>

2007-10-25 10:23:06, Hit : 6215

작성자 : 표명렬
사실 사고가 발생하면 직접적으로 가장 큰 책임을 지는 사람은 하급간부 자신들이기 때문에 그런 지시가 없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중대장이 사고예방에 관한 지시를 이행했다고 해서 사고가 발생하면 이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지시란 하급자의 권한은 박탈하면서 책임은 더 무겁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미 사고 내지 말라는 지시를 수없이 받은 자는 사고 책임에 더해서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책임, 심한 경우 “예! 문제없습니다”라 했던 허위보고의 책임까지 져야 할 입장이 되는 것이다.

특히 문제인 것은 사고가 났을 때 상급자의 입장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하 부대에 대해 책임추궁을 위한 근거확보가 되어“권한은 위임하되 책임은 위임할 수 없다”는 지휘통솔의 원칙에 크게 위배된다는 점이다.


조직원들이 윗사람으로부터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널 믿는다!’ 이며 가장 싫어하는 말은 ‘시키는 대로 해!’라는 불신의 표현이다. 군에서 하달되는 공문은 대부분 ‘시키는 대로 해!’ 보다 훨씬 강압적이며 공격적이다.


최근 나의 ‘군 개혁 로드맵’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어느 육사출신 대대장으로부터 하급간부들의 자율성과 도전의식을 잠재우고 자신감을 훼손하고 있는 군대문화를 개혁하는데도 관심 가져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임기 내내, 대대장 스스로 판단하여 소신껏 진행하라는 얘기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대장이나 소대장, 부 사관들은 말해 무엇하랴!


전쟁 없이 많은 군대를 오래 유지하다보면, 군대가 상급부대 위주로 검열용 겉치레의 형식주의로 흐르게 되기 쉽다. 교전 중인 전장에서와 구별되는 개념의 평시 부대관리 준칙 및 리더십 설정이 절실하다.


하급 부대의 입장에서는 상급부대의 간섭만 없으면 오히려 부대가 더욱 진취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병영생활을 보다 명랑하고 활력 있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초급간부들은 가능한 한 상급부대의 간섭이 적게 미치는 부대에서 근무하기를 선호한다.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하급부대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휘서신이나 지휘관의 강력한 강조만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상급부대 위주의 문화가 관습화 구조화 되어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하급부대 지휘관을 괴롭힐 뿐인 사고방지 강조 등 과 같은 일체의 지시공문 전문 등은 완전 철폐 해야한다.


상급부대 참모들이 자기 지휘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지도방문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는 예하 부대 방문도 정상적 조직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당분간 일절 금지시켜야 한다. 특히 각부대별로 비교를 하여 경쟁을 유발함으로서 예하 부대를 숨막히도록 하는 업무는 중단해야한다.


장개석 군대가 광대한 대륙을 빼앗기고 대만 섬으로 쫓겨온 후, 피를 토하는 자기 반성의 패인분석을 하여 얻은 결론의 핵심내용 중 하나가 특무부대의 월권행위와 부정부패였고 다른 하나가 바로 상급부대의 군림과 간섭으로 인한 하급부대의 자율성 상실 및 사기저하였다. 그리하여 상급부대란 하급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개념을 확고히 정립하여 모든 예하 부대 방문을 철폐하고 고급간부 능력 판단의 주요 기준을 하급부대에 대한 실질적인 자율권 보장과 헌신적 지원 실적 여부에 두는 등 뼈를 깎는 대 개혁을 단행하여 바람직한 군대문화 정착에 성공을 거두었다. 이리하여 대만 군대에서 윗사람이란 겸손하고 아래 사람에 대한 애정과 봉사의 정신이 뛰어난 분이라는 의식이 일반화되어있다. 


4)내무생활 파괴


한국군의 내무생활 개혁 참으로 시급하다. 구 일본군대에서 내무생활이 마치 감옥소 안에서 밥그릇 수많은 고참이 신참을 틀어 잡아 질서를 유지함을 당연시하던 반 인권적 인식에서 내무생활 문화가 출발하고 있음에도 친일세력들은 이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군대란 본래 그런 것”이라고만 되 내어왔다. 또한 훈련소 등에서의 엄격 일변도의 내무생활을 이상형으로 설정, 군인다움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그런 과정은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바꾸는 처음 시작이기 때문에 군인을 만들기 위한 세뇌 식 교육을 하는 용광로와 같은 성격이다. 때문에 정신차릴 수 없이 몰아세우며 절대군기 절대복종을 요구하고 길 드린다.


일반부대에 배치된 다음에도 식사군기, 취침군기, 면회군기, 오락군기, 등 군기로 옭아 메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그런 긴장되고 힘든 내무생활을 계속한다면 너무 지겨워 어떻게 2년 이상 견뎌 낼 수 있겠는가?


내무생활의 목적은 군기를 잡기 위함이 아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휴식이 있는 곳으로서 상급자의 눈치를 볼 필요 없는 곳이어야 한다. 상하의 계급이 아닌 자율과 자유의 시간이 보장된 공간이 되어야 한다. 공식 임무수행이나 교육훈련의 장소와는 엄밀히 구별되어야 한다.


. 현재 우리병사들의 병영생활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고 규제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규정은 ‘군인복무규율’을 근간으로 한 ‘국군 병영생활 규정’ 그리고 육군에서 최근 개혁적 의지를 가지고 연구 채택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병영생활 교범’ 등이다. 그러나 이들 내용은 거의가 하급 간부들과 병사들이 지켜야할 책임만 엄격히 강조하고 있을 뿐 고급 간부가 준수하여야할 내용과 하급간부 및 병사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


나는 6공 시절 국방부에서 내무생활 정상화를 위한 군인 복무규율 개정의 연구세미나에 연구위원으로 위촉받아 마무리 토의에 참가한 적이 있다. 나의 발표요지는 현재의 군인복무 규율은 과거 일본군의 내무생활을 이상형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으로서 피상적으로만 읽어보면 그럴듯한 낱말로 잘 꾸며져 있어 나물할 대 없어 보이지만, 거기 담긴 철학과 정신이 권위주의 시대에 병사들을 꼼짝 못하게 휘어잡기 위한 근거 제시 역할 위주로 되어있음을 지적, 민주화의 새로운 시대에 부합되도록 근본적인 개혁이 시급함을 역설했다.


나의 의견에 대해 기존의 군인 복무규율 제정을 주도했던 분이 긴 설명의 반박을 했다. 명망 있는 3성 장군 출신의 말인지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발언은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눈치 빠른 조선일보 국방부 출입기자가 나의 발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취재 차 사무실로 찾아왔다. 현재의 군인복무규율을 사병 인권 중시 개념으로 바꿔 고참병의 횡포 방지, 명랑한 내무생활 분위기 조성 등 민주화의 열린 시대에 맞게 개혁해야할 필요성에 대한 나의 열띤 주장을 듣고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국방부에서 하급 간부들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사병들의 인권을 중시하는 군인복무규율 개정을 검토 중이라는 사회면 톱기사 나갔다. 이를 읽어본 이른바 군 원로라는 일본군 출신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냉전 수구 세력들이 노발대발 국방부 장관에게 강하게 항의 질책했고 장관은 "그런 검토를 한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여 어떤 경위로 그런 기사가 나갔는지 조사하도록 지시가 내려졌다.


보안사의 조사 관 두 명이 난대 없이 사무실로 찾아와 국방부의 계획에 없는 그런 내용이 어떻게 신문사에 유출되었는지? 조사를 한 후 나의 손가락 도장을 여러 개 찍는 경위서를 받아갔다. 좀 시끄럽기는 했어도 이런 식으로라도 문제를 제기하여 군 개혁의 실마리를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수구 세력의 벽은 그때도 너무나 두터웠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군 복무를 마친 우리나라 젊은이들 대부분이 군대생활을 혐오하게 됨은 바로 잘못된 내무생활 문화에 기인한다. 고생은 하였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그런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무생활을 파괴적으로 개혁해야한다.


5)대적관 교육 철폐


한국군이 일본 군대 출신의 반민족적 친일세력들로부터 전수 받아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있는 가장 대표적 악영향의 잔재는 바로 국군 속에 민족의식을 싹트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대북 적대의식 함양 교육이다.


이는 일본군대 내의 한국인 출신 병사들의 마음속에 민족감정이 일까봐 두려워 “군인은 끊임없이 적과 아를 구분하여 적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적개심을 견지하여야한다.”고 주장하여 세뇌 교육시켜온 바를 우리 군에 그대로 뿌리내린 결과 길러진 잘못된 사고이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 군대도 계획 목적 상으로는 가상적을 상정하여 군사적 판단과 계획의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특정나라를 적으로 뚜렷이 명시하여 증오와 적대의식을 고취하는 교육은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안보 정세 하에서 적을 공개적으로 고착시킴은 전략적으로 외교적 선택의 폭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적개심은 전투력 강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계급적 적대의식을 내세우던 과거 공산 독재국가에서나 행하던 교육내용이다.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열린 시대의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국민 정서를 황폐하게 만들뿐인 이런 시대착오적인 교육은 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 군의 5027작전계획이나 지휘소 연습 훈련 등은 북한 지역을 적 지역으로 북한군을 적군으로 상정하여 판단하고 계획 실시한다. 전방의 모든 대포는 북한 쪽을 향해 차려 포 되어있고 휴전선에서는 지금도 철책 선을 사이에 두고 상호 대치하고 있으며 적 전술 교육 시간에는 북한군의 전술을 공부하고 있다. 이것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군사적 계획 목적 상으로는 분명히 북한이 적이지만, 적개심 고취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적대의식 함양은  냉전시대에 극우세력들이 정권안보를 위해 써먹어 왔던 군사력 강화와는 상관없는 정치 이데올로기 교육에 불과하다. 전투력 강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투는 조직 폭력배들의 주먹다짐과는 다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아래, 무기를 가지고 생명을 던져 조직끼리 싸운다. 시스템에 따라, 최선을 다해 자기 책무를 완수할 뿐이다. 따라서 가장 맑은 이성적 판단에 의한 엄격하고 냉철한 행동을 요구한다. 적개심이나 분노는 군인정신 요소도 아니려니와 오히려 전승을 그르치게 할 수 있는 전장 심리상의 한갓 감정에 불과하다. 운동이나 화투놀이 등을 포함하여 상대와 승부를 겨루는 어떤 개임에서도 적대적 분노의 마음은 패망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지극히 상식에 속하는 사실을 도외시한 체 일본군대가 한국인 사병들에게 민족감정과 민족의식을 흐리게 만들기 위해 가르쳐온 위와 같은 거짓 내용을 정통성취약한 독재정권은 냉전 이데올로기에 접목시켜 침이 마르도록 세뇌시켜왔다.


결과, 우리 군은 “군인은 마땅히 적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 적에 대해서는 철두철미 적대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냉전시대에나 통하던 주적론(主敵論) 교육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이 크게 일자 이름만 대적관(對敵觀)으로 바꾸어 시행하고 있다. 언뜻 듣기에는 적과 싸워야하는 군인이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전투를 할 수 있겠는가? 라는 단어 풀이 수준의 당위성을 들고 있어 속기 쉬운데 이 지구상에 적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야만 아는 그런 미련한 군대는 없다. 대북 적대의식이 안보관이라며 냉전 수구세력들이 파 놓은 함정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음이 문제이다.


안보의식이 어디 그런 것인가? 이라크 파병 미군들이 대적관 교육을 시키던가? 적 전술 교육은 필요해도 적에 대한 적대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교육은 전혀 불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하면 안 된다. 이라크 포로에 대한 적대적 행위의 결과가 미군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적국 주민의 마음까지를 사로잡을 수 있을 때 승리는 확실히 보장된다. 동족간의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다.


흔히 전투 경험자들이 무용담을 말할 때. 부하가 슬어져 피를 토하는 장면을 목도하게되면 적개심이 끓어올라 앞뒤 가릴 것 없이 일제히 돌격하여 적을 쳐 부셨노라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는데 이는 영화의 장면에서나 아니면 정상적인 전투가 아닌 일방적 소탕작전에서나 가능한 특수한 경우의 이야기다.


수색 작전 중이었는데 옆 마을에서 날아온 총탄에 의해 내 부하가 전사했다고 해서 격분하여 그 마을에 진격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 분풀이했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은 용감함도 전우애도 애국심도 아니다. 아니, 이런 군대는 군대도 아니다. 아무리 전투 중이라도 민간인을 해쳐서는 안 된다 함은 군인의 본질 자체에 관한 문제다. 도저히 용서될 수 없고 절대 금기되어야 할 지극히 야만적인 이런 행위를 일본군 출신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있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려 왔다.


반민족적 친일 분자들과 그들의 추종자인 반민주 독재 세력들에 의해서 저지러진 거창 학살, 제주학살, 광주학살 등 민족사의 참담한 비극은 바로 이런 무자비한 적대의식 함양이 군인의 본분인양 왜곡 교육시킨 결과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냉전 지향적 극우세력들은 그들이 저지른 죄 값이 두려워서인지 지금도 끈질기게 침이 마르도록 주적론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2003년 10월 15일자 국방일보에 어느 상병이 쓴 글을 보면, 훈련병 시절 소대장이 “우리의 주적이 어느 나라인가” 하는 물음에 난생처음 듣는 말이라 머뭇거리다가 그냥 “일본이라고 생각합니다.”했더니 “틀렸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다” 라고 가르쳐 주어 처음 알았다 자랑하며 국민들의 안보관이 걱정스럽다는 투의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군에 다녀오면 입대전과 달리 북한 사람에 대해서 적대의식을 가지고 돌아온다면 이는 참으로 우려해야할 인성파괴 교육이며 반통일적 의식 배양일 뿐 아니라 국가의 대북 정책을 공공연히 부정하는 교육임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안보의 궁극적 목적은 인류평화와 우리 민족의 평화적 통일이다. 이를 실현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는 남북한 서로가 신뢰를 쌓아 가는 일이다. 적대의식 고취는 반 평화적이며 반 통일로 가는 잘못된 길이다.


냉전 지향의 극우세력들은 지금도 해묵은 월남 패망의 예를 들어 대북 적대의식 고취를 선동하고 있는데 베트남이 망한 것은 월맹에 대한 적대의식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월등한 물리적 전투력에도 불구하고 남북 월남인들의 마음을 누가 사로잡느냐의 싸움에서 진 것이다. 오늘 우리는 기아와 암흑의 독재 하에 놓여있는 북한을 민족적 애정의 자비와 측은지심을 가지고 대함이 바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과적으로 통일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이 됨을 알아야 한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보다는 전쟁의 가능성이 있는 불안한 지역으로 남게 함으로서 이익을 도모하자하는 외세의 흉계에 앞장서 동조하며 협조자 역할 하는 자들이 발붙일 수 없도록 눈을 크게 떠 깨어 있어야한다.


조국과 민족의 꿈이요 비전인 통일의 길에 철저히 역행하는 이런 교육을 하고 있음에도 무엇에 홀려있는지 수수방관이다. 정부의 대북 기본정책이 엄연히 포용과 협력의 평화 정책임에도 이런 교육을 고집하고 있으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이는 필경 한국군대가 반민족적 족벌신문이 벌리고 있는 말장난의 함정에 빠져 놀아나고 있거나 냉전 수구세력들의 극우 바람몰이의 부추김 때문에 갈피를 못 잡아 허둥대고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군 통수권자가 “대북 화해와 평화 정책은 강력한 국방력이 뒷받침되었을 때만이 가능하다” 고 한 말을 일부러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강력한 적대의식과 호전성이 어디 강력한 국방력이며 안보의식인가? 안보의 궁극적 목적은 평화다. 강력한 안보의식은 강력한 평화의식이다. 자비의 유연한 평화의식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경직된 무자비의 적대의식을 극복 승리한다. 평화 불감증이 바로 안보 불감증이다. 대북 적대의식은 우리의 안보관을 소아병적으로 위축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6) 부패 척결


군대는 그 성격상 방대한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거대 소비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국방예산안은 GDP대비 2.85%인 20조 8226억 원으로서 그 구성 비율을 보면 인건비, 부대활동비. 급식피복비, 장비운영비, 교육훈련비, 시설건설비 등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경상운영비가 전체예산의 66.%인 13조 7375억 원이고 무기도입 등 전력 투자비가 34%인 7조 851억 원이다.


5-60년대 군대 내의 부정부패는 주로 병사들의 몫으로 분배되어야할 식량과 소모성 보급품 등을 빼 돌림이 대부분이었다. 사병들의 허기와 추위와 고통의 눈물을 담보로 한 이런 부정이 전군 어디에나 독버섯처럼 퍼져 있었다.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전력 투자비가 대폭 증가됨에 따라 이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대형 부조리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간단한 사정의 칼끝만으로도 5.6공 시절의 국방부 장관들 거의가 무기 도입 관련 대형 부조리에 연루되어 투옥된 적이 있다. 김영삼 정부 하에서의 국방부 장관도 이로 인해 투옥되었고 김대중 정부하의 장관도 비슷한 혐의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과거 군과 관련된 부정부패의 이면에는 무소불위의 특권을 휘둘러온 현장 기무사 요원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되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구로부터도 견제 받지 않는 조직의 성격 때문에 그들의 비리는 노출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중요한 무기도입, 대형공사 입찰, 대형 납품 등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고위직에 대한 부패 방지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무기상을 비롯해 대형 사업관련 음성적 로비스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위 층에 접근을 꾀하려 들지만, 민간인 신분인 그들을 추적 조사하는데는 한계가 있어왔다. 군사기밀이란 이유로 접근자체가 어려운데다가 극히 제한된 간부들만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장차 설치될 ‘공직자부패방지 위원회’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지만, 군의 특성상 관련 첩보 및 정보는 결국 기무사나 헌병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바 실효성이 문제이다. 이에 군 검찰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 군 검찰 요원은 검찰청 혹은 부패방지  위원회에서 국방부에 파견 지원케 하는 제도를 구축함으로서 국방관련 대형 부조리를 원천 봉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군사법원 제도의 정상화방안과 함께 군 개혁을 위해 필히 연구되어야할 분야다.


5. 결언


문민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한다며 구 총독부 건물을 허는 등 보이기 위한 일에 요란했지만, 우리 속에 뿌리내려 도사리고 있는 친일과 독재의 독소를 청산하는 일에는 관심 없었다. 군내의 하나회를 도태시키는 숙군 작업을 군 개혁으로 착각하여 병든 군대문화를 정상화하는 진정한 개혁은 염두도내지 못하였다.


국민의 정부 때도 마찬가지 딴에는 「국방개혁안」을 내 놓고 했지만, 이는 개혁안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연구 발전 업무의 성격으로서 오히려 군 개혁의 담론을 가로막는 선수치기 역할만 했다.


참여정부는 왜곡 형성 고질화되어 있는 우리군의 군대문화를 새로운 시대 정신에 부합되도록 바로 잡는 일대 개혁을 단행함으로서 우리 군의 꿈이요 비전인 자주국방의 기틀을 다져야한다. 문화와 의식의 정신적 토대 없는 자주국방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이에 앞 4항의 개혁을 통해, 지금까지 강대국 의존의 사대주의에 찌들어있는 냉전 수구세력들이 안보 문제를 독점하여 자기보호만을 위해 패배주의적으로 이용해온 어둠의 시대를 끝내고 우리민족과 군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지닌 진정으로 강한 안보역량을 구축하는 발전의 계기로 만들자 끝(표명렬).





훈장 받으려 고문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7 >
아침부터 뛰는 장군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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