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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뛰는 장군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6 >

2007-10-25 09:24:21, Hit : 5636

작성자 : 표명렬
 

        3부. 우리시대, 새로운 군대를 향하여




창조는 괴로움의 구원인 동시에 삶의 위로인 것이다.


그러나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괴로움이 따르면서 많은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니체(Nietzsche, Friedrich Wilhelm)


<3부 본문>




1. 간부가 변해야 군대가 산다




‘지휘권’에 대한 오해


군대에서 지휘관의 권한은 대단하다. 그래서 지휘관은 다른 참모 장교와 구별하는 권위로서 양어깨에 초록색 견장을 달고 다닌다. 그의 손에는 지휘봉이 들려있다. 군은 조직의 성격상 지휘관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다. 물론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특히 전장에서의 지휘권은 절대적이다. 이는 야전교범에 잘 수록되어 있다. 전투를 수행 중인 상황 하에서는 어차피 어느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주거나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속된 말로 “죽으나 사나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부하에 대한 생사여탈권 까지를 포함한 모든 절대권한이 위임되어 있다.


지휘관은 승패의 결과에 대해서 홀로 책임진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어 먹던 삶아먹던’ 실패에 대해서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도 내포된다. 이렇게 전투시의 지휘권은 ‘권한’ 중심적이다. 이는 평시 부대관리에 있어서 지휘관의 권한과는 판이하게 구별된다.


평시 부대관리를 위한 지휘권은 ‘권한’ 중심이 아니고 ‘책임’ 중심이다. 그러나 우리 군에서는 이를 전장에서의 지휘권과 같은 의미로 사용 할 때가 많았다. 부대 관리 중 어떤 결정을 할 때 지휘관이 “내가 책임진다.”며 무리하고 불합리한 결정을 내려 밀어 부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지휘권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책임진단 말인가? 잘못되면 자리를 물러나겠다는 의미인데, 일을 그르친 다음에는 물러나건 안 물러나건 아무 소용이 없다.


지휘관은 참모들의 계획과 판단에 의한 건의를 받아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분석과 검토를 거쳐서 결정한다. 편견이나 공명심에 의한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올바른 지휘권의 행사라고 할 수 없다. 멋대로 하는 것이 지휘권은 아니다. 그래서 전장에서 전선을 순시하고 있는 지휘관의 모습과 평시에 부하들을 대하며 부대를 관리하는 지휘관의 마음자세는 다르다. 전투원을 직접 지휘하고 있는 대대 급 이하의 지휘관과 많은 전문 참모를 거느리고 정책 단위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성급 지휘관과는 근무자세가 같을 수 없다.


고위직이 될수록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는 혜안의 유연성과 여유를 가지고 당장에 나타나는 효과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들으려고 노력하며 더 많이 고민하고 신중  해야 한다. 권한 행사보다는 책임수행에 관심을 가져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과거 우리는 직위가 높아지면 거기에 비례해서 목이 굳어지고 목소리가 변하고 거동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힘이 들어가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비서 등을 앞세워 지나치게 접근을 차단하며 가능한 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 하는 등 지극히 권위주의적인 모습이다.


몇 년 전 검찰 뇌물 비리 사건 때, 평검사들이 감히(?) 대 선배 검사장들과 자유 토론식 마라톤 회의를 가졌다고 해서 일간지가 대서특필하는 요란 법석을 떤 적이 있었다. 선진국은 물론 내가 경험한 바로는 대만의 경우였더라도 그런 일을 가지고 검찰의 위계질서 운운하며 요란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하들이 상관에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당당하게 질문하고 의견을 발표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일상화되어 있으니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검사들이 취한 모습을 보면서 “권위주의 적이고 폐쇄적이며 국민 위에 군림해온 관료조직의 문화에서 자란 소위 우리나라 엘리트 관료들의 한계가 바로 저런 것이로구나!” 하는 실망감을 금치 못했었다. 처음에는 뭔가 검찰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정의로운 일을 할 것 같았는데, 결국은 자기 집단의 기득권을 손상 받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 타협하고 말았다. 마치 의사들이 수술을 하면 쾌유될 수 있는 암 환자를 앞에 놓고 잘못하면 욕먹고 책임져야하며 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것 같으니까 임시방편의 진통제만 주고 덮어 버린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검찰 조직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분야에 있어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헤쳐 보면 결국은 각계각층에 있는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직위의 사람 등 소위 엘리트라는 사람들의 집단 이기주의적 사고방식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의 공(公)조직 문화는 국민을 위한 봉사보다는 관료적 권위주의에 찌들어 있어서 그것이 왜 문제인지 그리고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 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공조직의 윗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고 설문한다면 대부분의 응답자는 그들은 조직에 더 많이 봉사하고 더 청렴하며 더 큰 책임을 지며 봉사하기를 애쓰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답과는 반대의 내용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추측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군도 예외가 아니다.


이처럼 과거 권위주의 시대는 마치 윗사람을 위해서 조직이 존재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높은 사람 위주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높다는 의미는 더 많이 봉사한다는 본래의 의미로 돌아가야 한다. 군대가 장군들이나 고급 장교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군대다. 의무 복무 중인 병사들이 바로 국민들이다. 간부들에게는 국민인 그들이 보람을 가지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토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마치 우리 국군 전체가 지금 야전에서 전투 중에 있는 것 같다. 야전교범에 정의되어 있는 ‘권한’ 위주로 되어 있는 지휘권의 개념을 ‘책임’ 위주로 ‘봉사’의 의미로 전환해야 한다 .




월남전 총풍사건


거의가 죽어서 돌아올 것이라는 음산한 소문이 떠돌던 전투부대의 제1진 파병 때에는 이 핑계 저 이유를 들어 꽁무니를 빼려던 사람들도 큰 위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서로 월남에 가기를 다투어 지원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목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상급부대로 갈수록 안전하기 때문에 이런 부대로의 파월을 싸고 비리들이 속출하였다. 이때부터 월남에서 전투 경험을 얻는다고 하지만, 사실상 군인으로서 배울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나쁜 방향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부대에서는 동굴 수색 작전을 하던 중에 소총을 무더기로 발견하였다. 베트콩의 무기 창고를 덮친 것이다. 큰 전투도 치르지 않고 쉽게 그냥 무기를  다발로 주었으니 높은 훈장을 받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에 따라 묘책을 짜냈다. 교량 초소 장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작 전투의 ‘총풍사건’을 만든 것이다. 연대 훈련시험(RCT) 때 대항군을 운영한 것처럼 적군을 만들어 실재 접전하는 교전 상황을 조작하여 시나리오대로 전투를 개시한 것이다. 모든 상황은 정식으로 보고 되었고, 병사들은 멋도 모르고 실제 피를 흘리며 열심히 싸웠지만 사실은 사기 극이었다.


그래도 월남전에서의 총풍사건은 적과 내통하여 짜고 만들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보니 훨씬 소름끼치는 총풍사건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나라 안의 최고 권력기관들에 의해서 기획․자행되고 있었고, 그런 공작을 구상하고 적의 위협을 뻥튀기 하여 정권을 만드는 일에 힘을 실어 주었던 정치인과 언론들이 지금도 아주 버젓이 애국자인 척 목소리를 내고 있다. 월남 총풍사건 정도를 가지고 비분강개했던 것은 내가 너무나 순진하여 세상을 몰랐던 때문이었을까?


당시 주월(駐越) 한국 군 사령부에서는 “가능한 한 우리 장병들의 피해가 없도록 하라! 여기 월남전에서 장병들의 희생이란 의미가 없다”라고 했다고 간부들은 윗분들의 동포 사랑의 정신에 대해서 높은 평가들을 하고 있었다. 사실 어느 지휘관이 피해를 많이 내기를 바라겠는가? 피해가 없도록 하라는 말은 너무나 당연히 이해가 되지만, 희생할 의미가 없다는 말은 장병들의 환심은 살수 있을지 모르지만 군인다운 말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고위 간부들에게만 전달되어 작전 구상과 시행을 그런 개념에 맞추어 행하면 될 일이었다.


그 전쟁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정치인들이나 하는 말이다. 군인은 모든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열심을 다해 싸워 승리하는 것만이 선(善)이다. 군인으로서 갖추어야만 하는 아주 기본적인 정신적 자세  하나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결과가 바로 총풍사건 같은 그런 부끄러운 일들을 저지르게 만든 근본 이유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조작극의 마술사, 유능한 장교


월남전 참전 당시 내가 근무하던 부대의 작전지역 내에는 월남의 남북을 종으로 연결하는 병참선인 19번 도로가 놓여 있었다. 군수물자와 병참물자를 가뜩 실은 미군 트럭들이 이 길을 지나 다녔다. 우리 중대 주둔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곳 도로상에 교량이 하나 있었다. 이를 방호하기 위해서 연대 직할 부대에서 1개 소대 규모의 병력이 초소를 설치 운용하고 있었다. 하루는 대낮인데 그곳에서 총소리가 콩 볶듯 요란하게 한참 들렸다. 전투가 크게 붙은 것 같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베트콩의 교량 습격을 물리치는 전투가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너무나 황당하였다. 아군끼리 꾸민 조작극이었다. 그들의 무용담(?)을 들어 보니, 초소 장이 그 도로를 통해서 보급품을 운반하는 미군의 책임 팀장과 운전병에게 겁을 주어 보급품도 얻고 그들과 친숙해지기 위해 자작 전투를 획책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소대 병력 일부를 산등성이 쪽에 은밀히 잠복 시켜 두었다가 미군 보급 차가 교량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면 일제히 사격을 가하도록 사기 극을 벌인 것이다.


미군들은 혼비백산 차를 그대로 두고 초소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용감무쌍한(?) 초소 장은 그들을 안심시킨 다음, 각본대로 진두지휘하여 적(?)을 공격 격퇴(?)함으로써 일약 그들의 영웅이 되었다. 순진한 미군들은 그의 대담성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넘버 원! 넘버 원!”은 연발했다.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몰라 얼싸안고 좋아하며 가지고 가던 보급품을 몽땅 퍼 주었다. 그 후 그들은 의형제를 맺어, 수많은 보급품을 뭉텅이로 내려 주었고 아예 차를 몰고 가서 별별 군수물자를 얻어다가 연대 본부 사람들 여기저기에 바치고 선심을 쓰며 흥청거렸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중한 벌을 받아야 마땅한 일을 저지른 그가 오히려 상급자들로부터 유능한 장교로 칭찬을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사고라면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러나 그런 장교가 능력이 출중한 우수한 간부로 평가받는 풍토였으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어찌 우리 군의 정상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지나온 우리의 역사 속에서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식의 삶을 살아왔던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험난했던 민족사의 여러 악 조건 속에서도 백성들, 민초들은 말  없이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던 것처럼 우리 병사들은 조그마한 배려에도 감지덕지 감사하며 역겨운 일을 만나도 의례 그러려니 이해했다. 참으로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목숨을 건 위험을 무릅쓰고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세상에 이런 작전도 있다


월남에서의 맹호 5호 작전 때의 일이다. 우리 제11중대는 적의 유인 전술에 말려들어 참패를 당했다. 몇 명이나 사상 당했는지, 끌고 오지 못한 시체는 누구인지 조차 분명치 않아 인원 점검을 위한 점호를 했다. 우리가 여태껏 군대생활 하면서 해온 점호와는 전혀 다른 스산한 분위기였다. 누가 전사했고 실종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숨 가쁜 순간이었다.


사단에서는 난리가 났다. 연대장과 대대장이 헬기로 날아 와서 노발대발 화만 내며 야단을 쳤다. 우리는 죄인들처럼 고개도 들지 못하고 축 늘어져 눈치만 보고 있었다. 참패를 당하여 식사도 하지 못하고 기진맥진 사기가 극도로 떨어져있는 우리 중대원들의 입장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런 사람들을 믿고 어떻게 전쟁을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윗사람들이란 좋은 일은 자기들끼리 독차지하고 궂은일에는 아랫사람들의 책임만 물어 질책하던 꼬락서니 그대로였다. 따뜻한 위로의 말이나 눈길은 누구도 주지 않았다.


맥아더(MacArthur, Arthur)의 인천 상륙 작전이 6.25 전쟁에서 승리의 분기점이 된 것과 같이 월남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지휘관들은 부하들의 생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참으로 무모한 결정을 거리낌 없이 내렸다. 하루 종일 시달리며 큰 전투 손실을 입어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우리 11중대를 재정비할 여유도 주지 않고 야음을 틈타 정글 지대 능선을 따라 산악행군을 하여 적 지역에 깊숙이 침투, 두고 온 전우의 시체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오로지 지휘관들의 자존심과 명분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위험한 작전을 부하들이야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그대로 강행했다.


대대장은 당연히 우리 중대와 임무를 교대해 주어야 할 예비 중대는 계속 대대본부를 지키도록 그대로 두어 자기 주변은 철옹성을 쌓아 놓고 우리 중대를 투입 시켰다. 우리는 밤새도록 숨을 죽이며 일렬종대로 정글을 뚫고 해치며 적 후방 지역에 접근했다. 조심조심 촉각을 세우고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이동을 하는 동안 별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조국광복을 위해 만주 벌판을 누비던 우리들의 선배님들이 바로 이러한 역경의 전투를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먼동이 트고 있었다. 여기 저기 집들에서는 아침을 짓는 연기가 긴 줄을 그으며 솟아오르고 닭이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작전 시간을 맞추기 위해 산등성이에 숨어서 한참을 기다렸다. 날이 환하게 밝아왔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음이 내려가 보였다. 환한 햇살을 받으며 한가롭게 움직이고 있는 송아지들도 보였다. 우리의 농촌이나 조금도 다름없는 참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면 이곳에서 살육의 전투가 벌어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였다. 무엇 때문에 내가 저들의 아름다운 평화를 깨뜨려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번듯 스쳐 지나갔다. 우리의 조상들도 북쪽의 오랑캐들로부터 남쪽의 왜구들로부터 이런 식으로 침략을 당하여 피를 흘리고 짓밟혔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이런저런 상념들은 공격 준비를 위해 퍼부어지는 포병의 집중사격의 폭음 진동과 함께 이내 사라졌다. 포탄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멀리 내려다 보였다. 마치 지진과 산불을 피해 달아나는 작은 짐승들 같았다. 공격개시 명령에 따라 우리는 단숨에 들판까지 내려갔다. 적의 저항은 없었다. 두고 온 우리 병사들의 시신은 철모와 군화 등을 벗겨갔을 뿐 그대로 있었다. 나는 중대 본부 요원들과 함께 시체를 헬기에 실어 옮기는 책임을 맡았다. 마지막 시체를 싣기 위해서 헬기가 착지하는 순간 갑자기 적의 집중적인 기습사격이 가해졌다. 시체 한 구는 미처 싣지 못하고 헬기는 그냥 나라가 버렸다.


다급해진 중대장은 각 소대별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전날 혼 줄이 났던 소대원들은 소대별로 뿔뿔이 도망치듯 후퇴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중대장은 그들에 섞여 가버렸다. 정글에 숨어있던 적은 계속 사격을 퍼붓는데 엄호도 없이 시체를 끌고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죽을 수밖에 없는 지옥에서 탈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것처럼 총탄 자국이 줄 먼지를 품으며 매섭게 우리의 발자국 뒤를 쫓아오는데 이를 피하며 죽을힘을 다해 우리는 시체를 끌고 뛰고 기다가 쓰러지며 또 뛰며 기진맥진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도 겪어 봤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처럼 모질게 고통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정신이 오락가락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처음에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는 적이 쏘거나 말거나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그냥 터벅터벅 뛰지도 않았다. 축 처져서 무겁게 끌려오는 시체를 바라보면서 그가 너무나 편안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이 작전에서 부하들의 생명은 전혀 배려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한 작전인지도 누구를 위한 작전인지도 불명확했다.




아침부터 뛰는 육군본부


내가 정훈감 시절, 육군 본부에 근무하고 있던 전(全) 장교와 군무원들은 매일 출근을 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일과의 첫 시간을 연병장을 돌며 뛰는 운동부터 시작했다. 군대다운 씩씩한 분위기가 풍겨 좋다고들 했다. 하기야 어떤 대통령께서도 조깅을 줄기차게 즐기면서 “머리는 빌려 쓸 수 있지만 건강을 빌릴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니 그것이 괜찮은 운동임이 분명하지만 아침마다 몸풀기 정도가 아니고 본격적으로 뛴다는 것은 누가 봐도 지나치다 아니할 수 없었다.


육군 본부는 육군의 최고 정책기관이다. 야전군과는 그 업무성격이 질적으로 판이하게 다르다. 군정과 군령을 함께 다루는 기관이다.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부치거나, 몸으로 해결하는 업무가 아니다. 즉각적으로 조치할 일들이 아니다. 업무의 성격상 두뇌를 굴려 긴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하루의 시간 중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에 우리는 오직 육체를 튼튼히 단련하기 위한 체육 활동에 열중했다. 조금이라도 맑은 정신으로 관련 정책을 구상․검토하고 적절한 대안을 조치하는 업무를 수행해야 할 황금 같은 그 중요한 시간에 우리는 모두 아스팔트 위에서 헉헉거리면서 몇 바퀴 돌았는가를 세어보고 있었다.


바쁜 일이 있어서 살짝 좀 빠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참모 총장이 직접 앞장서서 뛰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인사 참모부에서 구보 참석 여부를 자주 점검하기 때문에 찍힐까봐 슬슬 눈치 보며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국가가 나에게 장군 계급을 달아준 것은 그 격에 맞는 질 높은 사고와 행위를 모범적으로 소신 있게 실행하라는 무거운 책임을 부여해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의가 중․소대장 때 품었던 사고방식과 의식 수준 이상으로 변화․발전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도, 역할의 범위만 넓어져 거드름을 피며 권한만 누리는 꼴의 근무를 하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마음속으로는 모두 “이것은 아닌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귓속 말 하듯 조심스럽게 조용조용한 불평들도 더러 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이를 철회할 것을 건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런 아주 간단하고 조그마한 일 하나에 대해서도 바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그런 풍토였으니 거기서 무슨 발전적인 좋은 정책개발이 가능했겠는가?


장군들은 항상 바쁘기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상적인 업무 때문이기보다는 개인적인 만남의 약속, 중고등 학교 동창이나 친지들의 면회 그리고 부탁 전화, 과거 함께 근무했던 부하들의 안부 전화 등 사적인 일이 훨씬 더 많았다. 여기 저기 회의에 참석하느라 분주했지만 대부분 밑에서 기안하고 만들어 온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 검토하는 정도의 일들이었다. 과장급의 간부 선에서 결정하여 시행해야 할 시시콜콜한 문제들도 상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모두 결재 서류를 들고 들어오니, 장군들의 업무량은 많을 수밖에 없었다.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아랫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지 않는 우리나라 조직 풍토에서는 대부분의 결정은 윗사람의 생각대로 이루어졌다. 장군이 직접 기안해야 하는 업무는 정책 개발이나 제도 개선에 관련된 사항들이다. 육군 본부에서 근무하는 장군의 가장 중요한 기본업무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장군 수준에서 연구하고 기안하며 해결할 수 있는 중요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일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로 옆 8군에 있는 미군 장군들의 근무 자세를 보면서 “저것이 바로 장군다운 근무 태도이구나” 하고 부러웠다. 그들은 근무 시간에 신문을 보거나 개인적인 전화를 하지 않는다. 사전 예약도 없이 가다 오다 그냥 “인사드리기 위해서 방문했습니다” 하고 장군 방에 들려 아부하는 그런 충성스런(?) 장교도 없다. 일과 시간에는 면회 등 개인 용무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장군은 언제나 교범과 규정을 책상 위에 놓고 근무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은 정책적 수준의 관점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소대장처럼 호령이나 호통, 지시로 일하지 않는다. 앉아서 결재나 하면서 큰 소리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음 진출을 위해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끊임없이 문제를 발견하고 제도를 통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발전시키려고 머리를 짜며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당시 우리 사회의 윗사람들, 장군들의 이미지는 책임의 무거움보다는 권한이 너무 비대해 목이 굳어진 사람들의 의미로 이해되는 편이었다. 부하들은 마치 상관의 권위를 신장해 주고 그들의 진출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된 것처럼 이해될 정도로 극단적 권위주의가 만연한 분위기였다. 지금은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한다. 권위주의적 문화는 전투력을 좀먹는다.











한국군 개혁 로드맵(2) <인물과 사상지>
군대는 감옥이 아니다. 제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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