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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를 보수라고 여기는 자들에게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4)

2007-10-20 17:14:35, Hit : 5417

작성자 : 표명렬
 그러나 우리 군은 성장 과정에서의 불행한 역사적 경험 때문에 군국주의 일본 군대의 생명경시, 인격무시의 권위주의적 문화가 너무 깊게 뿌리내려 있다. 가히 인권의 사각지대나 다름없음에도 일본군 출신들에 의해 “군대조직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라는 변명에 끊임없이 세뇌되어 당연한 것으로 믿어 왔다. 그래서 인권위원회의 구체적 자료에 의한 권고 내용에 대해서도 군대는 마이동풍 식으로 무반응이었고 인권의 파수군 역이라도 하는 것처럼 떠벌리는 언론도 남의 일처럼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군대 내에서 빈발하고 있는 반 인권적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침해당했을 시는 지휘계통의 보고 없이 즉시 인권위원회에 통보하여 은폐나 조작이 불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법규를 제정하는 등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음에도 군대가 마치 성역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과거 대만 군대에서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즉시 통보함을 법으로 보장하였다. 그들의 이러한 조치는 구타나 의문사의 발생소지를 근절하는 데 일조를 했다고 한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허 일병의 살해 가능성에 대해서 발표했지만 적극적으로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야 할 군은 오히려 이를 반박하기에 급급했다. 급기야 자체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원래대로 ‘자살’이라고 반박하며 유야 무야 되어버렸다. 간부 위주, 권력기관 편이 위주로 집단이기주의화 되어 가고있는 우리 군대의 개혁 참으로 시급하다.






5. 기무사 개혁 없는 군 개혁은 공염불이다




정권 안보인가, 국가 안보인가


오래된 이야기지만, 장개석 군대가 대만으로 쫓겨온 후 뼈를 깎는 자성의 결과, 패배의 원인으로 ‘군의 지휘 체제를 문란하게 하며 온갖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온 특무부대의 병폐’가 가장 크게 지적되었다. 이에 숱한 반발을 물리치고 부대의 개혁을 단행하여 군의 지휘 체제와 참모 체제를 정상화 시켰다.


우리 군의 기무사가 국가 안보에 크게 공헌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5.16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독재정권이 또 다른 군사쿠데타 발생이 두려워 기무사에 「대 전복」 이라는 임무를 부여함에 따라 본연의 업무보다는 독재권력의 정치적 하수인으로 빗나가기 시작했다. 통치권 지원이라는 명분 하에 부대장이 대통령을 독대 하면서 어느 누구로부터도 견제 받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고 이로 인해 수많은 부작용을 빚어왔다. 그 결과 바로 12. 12 사태, 광주 학살, 5공 독재정권 탄생 등 암흑의 시대를 엮는 악역의 중심에 기무사가 서있도록 만들었다.


군 기무사의 주 기능은 간첩과 오열을 색출하고 보안 업무를 조력하는 등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특수업무로서, 국가 존망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다. 과거 보안사는 이런 주요 업무는 소홀히 하면서 정권안보와 간부들의 약점을 잡는 일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왔다.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을 해왔던가? 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들에게는 막강한 권력만 주어졌을 뿐, 그들의 잘못을 통제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이나 제도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군 창설이래 어떤 병과, 어떤 참모, 어떤 지휘관도 이들의 잘못에 대해서 지적하거나 의견을 말한 적이 없다. ‘지휘권 보장’ 운운하는 것은 예하 지휘관이나 힘없는 조직에 대한 큰소리일 뿐이다. 간부들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아첨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일반 병사들까지도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인가! 우리 속담에 “제사에는 맘이 없고 젯밥에만 뜻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 우리 보안사는 정권 안보와 부조리에 관련되는 이권 업무 등에 주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스스로 부패해 가고 있었다.


보안사령부는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서 장기간의 공작을 요하는 간첩 색출 업무와 보안 지원 전담 기관으로 재편성하여 그야말로 음지에서 활동하도록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리고 보안 업무 지원이라는 구실로 군부대에 파견 나가있는 조직은 완전 철수 해야한다. 대대 급까지 편성되어 있는 거대 참모 조직인 정보장교의 활동을 활성화하여 훨씬 효과적으로 군내의 방첩 및 보안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정상화해야 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보안사 하사관이 대대장, 연대장 실을 불쑥불쑥 드나들며 이일 저일 간섭하면서 간부들의 자존심을 손상시키고 있는데, 대대 정보 장교는 할 일 없이 앉아있는 그런 군대가 어디 있겠는가?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보안부대 요원들을 마음속으로는 기피하는 분위기인데 거기서 무슨 효과적인 방첩 및 보안 활동이 가능하겠는가?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조직이 주어진 임무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도록 만드는 데 있어서 감찰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직원들이 부패하지 않고 나태함 없이 주어진 임무달성을 위하여 목표를 향하여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제재(制裁)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군의 특성상 감찰은 매우 중요하다. 첫째 군은 거대한 소비적인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무기구입 및 개발과 교육훈련, 군수 및 병참, 건축 등 막대한 자금운용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부조리의 가능성을 계속 감찰해야 한다. 또한 군은 철저한 계급 사회이다. 직업 간부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진급이라 할 수 있다. 이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절대 보장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특성 때문에 군은 어느 조직보다 감히 부정을 생각할 수 없는 가장 엄격하고도 과학적이며 물 샐 틈 없이 면밀한 감찰제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군의 감찰은 조직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편성만 해놓은 상태나 다름없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있으나 마나 한” 감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군의 감찰제도가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국군 최고 통수권자들의 정보 정치적 방법에 의한 군 장악에 있다. 물리적 힘에 의해 권력을 탈취했기 때문에 군의 또 다른 정부전복을 방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로 인하여, 정상적으로는 감찰조직을 통해서 이루어져야할 대 전복 활동, 부조리 척결 활동 등의 핵심업무가 대공 방첩 수사기관인 방첩부대에 의해 주도되면서 감찰은 할 일 없고 허약한 죽은 조직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최고 통수권자의 비호를 받는 이들 특무 요원들이 일반 부대에 파견되어 공공연히 그 부대의 모든 면을 감시하며 자기 계통으로만 보고하는 이런 비정상적인 군대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북한군과 같은 독재체제 하에서도 정치부나 정치 보위부에서 노골적으로 지휘체제를 흔들 수 있도록 되어있지는 않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간 우리 군의 모든 크고 작은 부조리들 중  이 기관 요원들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개입하였거나 묵인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 업무 체계가 이들 모르게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기관원들이 하는 일은 어떤 조직 어느 누구로부터도 통제․감시당하지 않는 무방비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군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정부패는 “재정권과 인사권은 지휘관의 고유 권한입니다. 결심대로 하겠습니다” 하며 조언하는 경리 및 인사담당자, 그 업무 추진의 책임자 그리고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권력기관원들과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휘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지휘권인 것처럼 여기며 끼리끼리만 알고 비밀스럽게 의사를 결정하도록 되어있는 시스템과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잘못된 조직 문화가 문제이다. 몇 년 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이양호 국방부 장관의 무기도입에 관련된 비리는 그가 다른 장관들보다 특별히 부정하다거나 인격이나 애국심에 문제가 있어서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역대 장관들 중에 물의 없이 지나간 분들도 있고 감옥에 다녀와서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분들도 있다. 형태와 규모는 조금씩 다르다 하더라도 이 장관과 엇비슷한 결정과 처신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제도 하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많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공개 원칙에 의한 집단 감시의 기능에 의해서 이권에 관계되는 결정이 견제 감시되는 제도가 명확히 확립되어 투명성이 보장되고 공개된 절차에 의해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통상 해당 부서로 하여금 제도 개혁을 포함한 개선책을 제시하고 조치하도록 지시한다. 이것이 큰 잘못이다. 우리나라 중앙부서의 관료적인 문화는 일제시대부터 뿌리내려 독재정권을 거쳐 오면서 형성되고 다져져서 나름대로의 벽이 단단하다. 오랜 동안 지속되어왔던 “권한 행사 위주의 군림”의 고질적인 권위주의 문화가 쉽게 지워질 리 없다. 자기 부서가 지금껏 누려왔던 기득권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으로 투명한 공개를 통하여 부조리 개입의 여지 자체를 없애고 차단하는 제도를 구축함으로서 자신들의 자의성(恣意性)을 축소하려 하겠느냐 하는 점이다. 국방부 장관, 국회 국방위원 등 정치권 그리고 군의 권력기관 등 국방 관계 고위층들과 관련되는 무기도입과 같은 거대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조리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를 구축하는 작업을 국방부에만 맡겨서 될 일인가? 무슨 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좀 지나친 표현이지만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기는 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그렇게 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있다면 철저한 공개에 의한 투명성 확보와 장관을 포함한 의사결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상호 견제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정권이 바뀐 다음에도 반드시 그 과정이 공개 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군대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의 사정기관의 역할도 근본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고위층들의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을 허용하는 현행의 제도들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얼버무리기 개혁


군 간부 출신이라면 기무사 요원의 월권적 횡포와 부조리의 해악에 대해 탄식 분노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비위를 거슬림으로서 받게 될 불이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아무도 발설할 수 없었다.


통수권자의 결단과 직접적 관심이 아니면, 그 누구도 감히 군에 미치고 있는 역기능적 문제점을 지적하여 개혁을 조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의 서슬 퍼런 군부 숙청을 바라보며 다음 단계는 진정한 개혁을 단행할 것이고 그 첫 대상은 당연 기무부대일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역시 인기에 영합한 빤짝 쇼로 끝났을 뿐 제도 개혁에까지 미치지 못했다. ‘국민의정부’ 때는 독대를 했던 사령관의 어떤 특별한 정보 보고에 무슨 겁을 먹었던지? 아니면 어떤 달콤한 말에 솔깃했던지 기무사 자체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시대의 변천 따라 기무사의 역할에 대한 군 내외의 원성이 높아 질 때마다, 「특무대」에서 「방첩대」로 그리고 「보안사」로, 최근에는 「기무사」로 이름만 바꾸는 등 얼버무리며 오늘에 이르렀다.


실로 기무사의 개혁 없는 군 개혁은 공염불이다. 자체 정화를 통해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구조와 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무의미한 일이다. 그 핵심은 정보정치의 유산인 통치권 지원이라는 명목의 대 전복 임무를 폐지하고 갖가지 월권적 감시와 간섭으로 지휘권을 위축시키며 온갖 비리 의 온상이 되어온 일반 부대 내 상시 파견제도를 없애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부대내의 보안 방첩에 대한 참모업무는 본래대로의 정보참모 기본 업무로 돌아가게 되고, 모든 부조리에 대한 조사 및 척결 업무는 해당 참모 업무로 환원시켜 제재 활동에 대한 군의 참모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기무사가 본연의 업무에 충실히 정진하게 될 때, 새로운 정보화․세계화시대에 부응하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능력 있는 정보기관으로 변모 발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지휘관의 사기가 증진되고 책임의식이 강화될 뿐만 아니라 참모 제도 운영의 활성화를 기해 우리 군은 한 단계 높은 발전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욕된 과거와 지혜롭게 단절하기


세계 어느 나라의 군대를 보더라도 우리 군의 기무사처럼 지휘권 중심의 군 조직 기본 원리마저 무시한 체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도록 되어있지 않다. 연대 급에 지원 나와 있는 기무사 간부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연대장 실을 수시로 드나들 수 있었다. 자기보다 훨씬 계급이 높은 연대장의 근무 태도나 동정, 그리고 연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연대장의 확인이나 진술 없이 그대로 자기 사령부에 보고를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되어있었다. 지휘관들은 도무지 무슨 보고를 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보고 내용은 그 연대장의 승진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얼마든지 불리한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간부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자기의 진출을 방해할 수 있는 초 특권을 가진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항상 저자세일 수밖에 없다.


나의 군대생활 중에 기무사 요원의 잘못을 지적하는 어떤 공식적 발언이나 문서를 한번도 본적이 없다. 세상에 이렇게 항상 옳고 완전무결한 조직이 과연 있을 수 있겠는가? 비판과 견제를 받지 않은 권력은 항상 빗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비일비재 현실로 벌어지고 있었다. 군 제도가 그러했으니 속수무책이었다. 하나회 등이 저들의 비위를 거슬려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장차 걸림돌이 될만한 분들을 아주 쉽게 제거 퇴출시키기에는 아주 편리한 제도였다.


  암흑의 독재정부가 사라지고 소위 「문민 정부」가 되어서도 보안사의 위상과 역할은 정상화되지 못했다. 그 때는 너무 무지하여 그리 하였다 손치더라도, 제2건국의 각오로 개혁하겠다던 「국민의 정부」에서도 내내 그 모양이었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한 일이다.


더 이상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을 쿠데타를 걱정케 하는 말이나 국방관련 대형 부조리 발생을 방지 및 색출하는데는 기무사의 역할이 크다는 그럴듯한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사실 기무사 요원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군 관계의 어떤 부정 부패도 기무사요원이 개입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병역비리조사 때면 애꿎은 의무 하사관만 호되게 맞는데,  군대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기무사 요원과 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진실보다 더 무서운 힘은 없다. 우리 모두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 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한다. 진실이 밝혀지고 자리 잡혀가는 과정에서의 아픔은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발전을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군은 잘못된 과거를 지혜롭게 단절하고 진정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


<2부 도비라>




2부. 1950년에 멈춘 시계




보수주의자는 멀쩡한 두 다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결코 걷는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루즈벨트(Roosevelt, Theodore)






<2부 본문>




1. 스스로를 보수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6.25 전쟁이 자랑스럽다고 여기는 자들


김영삼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이 국방대학원 졸업식에 참석해서 치사를 하는 가운데 ‘6.25는 부끄러운 전쟁이다’라고 한마디를 했다가 수구 신문의 집중포화를 맞고 곤욕을 치르다 마침내 자리에서 물러난 적이 있다. 6.25 참전 용사들이 크게 분개하여 항의가 빗발 쳤고, 예비역 간부 출신들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참을 수 없는 망언이라고 야단들이었다. 사실 당시 나는 그 말로 인해서 왜 군의 사기가 떨어지는지? 그리고 군 출신들이 그토록 분개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여자 장관이었기 때문에 군 출신들이 그토록 심하게 질타했는지 모르지만, 그 보다는 막강한 수구 언론 권력이 마녀 사냥하듯 여론을 그런 방향으로 부추기며 몰고 가니 대부분 국민들은 자세히 생각해볼 틈도 없이 그냥 그대로 따라가는 분위기였다.


국가안보에 무슨 큰 구멍이라도 난 듯 신문 지면을 대문짝만한 글씨로 도배했던 그 냉전 지향의 수구 언론에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6.25가 자랑스런 전쟁이냐?


전쟁 이론가 클라우 제비치(Karlvon Clausewitz)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 했다. 전쟁은 정치인들이 결정하고 일으킨다. 군인들은 거기에 동원되어 목숨 바쳐 싸울 뿐이다. 그 전쟁의 성격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참전했던 군인들의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하여 전장에 나가 최선을 다해 용감하게 싸웠다면 더 없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월남은 이미 없어진 나라다. 파월 국군에 대해서 미군의 용병이나 다름없다는 비판도 많았었다. 부끄러운 전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월남에 참전했던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그 전쟁에서 군인으로서의 나의 마음자세와 행위가 떳떳하고 자랑스러웠는가에 따라 가름될  문제이다. 누가 나에게 평생을 통해 가장 자랑스러운 사실 하나만을 들라고 한다면 단연 ‘1965년 전투부대 제1진으로 월남 참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맹호부대 소총 중대에서 정글을 누비며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최선을 다해 싸웠던 그 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나는 육사를 졸업했고 직업군인이었음에 대해 항상 마음속 깊이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다. 


6.25전쟁은 그 원인과 경과 어느 측면에서 보아도 자랑스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전쟁임은 객관적 사실이다. 특정 집단의 입장이나 관점 그리고 전쟁의 원인에 대한 시비를 떠나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분명 부끄러운 전쟁이다. 민족의 자주적 역량 부족으로 외세에 의해서 분단되고 치러야만 했던 그 비극적 전쟁에 대해 ‘부끄럽다’고 생각함이 정상적인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6.25 전쟁의 성격이 어떠하건 상관없이 목숨 바쳐 전쟁에 뛰어든 참전 용사들이야말로 국민 모두가 떠받들어야할 최고의 진정한 애국자들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대 언론 권력을 걸머지고 있는 그 신문이 진정으로 참전용사들에 대해 존경심을 가졌다면, 그들 특유의 그럴듯한 말장난으로 “참전 용사들이여! 당신들의 명예는 너무나 큰 손상을 입었소! 참으로 분개할 일이요”하며 억지 불명예를 만들어  선동적으로 자극함으로써 참전용사들을 자기들의 냉전 수구적 입장을 강화시키는 볼모로 잡아두는 데 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그 막강한 위력을 동원하여 정부와 국민들이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사업을 추진하게 하는데 앞장서야 했을 것이다.


우리 참전 용사들이 자기들처럼 민족의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대 의식에 끊임없이 불타고 있는 냉전 수구 세력인 것처럼 국민들 눈에 비추도록 만드는 물귀신 작전의 장난이 열린사회가 된 이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참전용사들이 진정으로 염원하며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의 대장정의 흐름을 그런 얄팍한 이기적 꼼 수로는 결코 막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안보 교육의 최고 과정인 국방대학원에서 우리나라 제도교육의 최고 책임자인 장관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했지만, 그런 최고급 과정에서조차 그런 수준의 말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도록 언론 권력을 장악하여 사이비 환경을 만들어온 수구세력들이 문제였다. 물론 지금도 문제다.




지겨운 국가보안법 논쟁


내가 위관장교 시절, 어떤 모임에서 육군 정훈감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반공정신이 투철한 것은 군에서 정훈교육을 잘 시켰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나 황당해서, “감 님! 반공 교육의 일등 공신은 아무래도 6.25 남침을 감행한 김일성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등 공신을 말하라고 한다면, 반공법(국가 보안법의 당시 명칭)을 꼽을 수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라고 당돌하게 대꾸하여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국가 보안법은 해방정국의 소용돌이와 좌․우 극한 대립의 냉전체제 하에서 자유 민주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데 큰 몫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서슬 퍼런 철퇴를 무리하게 휘두름으로써 만든 부작용 또한 너무나 많았다. 역대 독재 정권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이 법을 남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유린했다.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위해 애쓰던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의 올가미에 걸려 억울하게 죽어 갔다.


그리하여 지금은 국가보안법 하면, 세계적인 반(反)인권적 악법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추락시키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안보 역량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목숨 바쳐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라는 국가에 대한 자존심이야말로 안보 역량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권안보를 위해 이 법을 악용하여 재미를 톡톡히 보아왔던 수구 정치인들과 그런 권력에 빌붙어 세(勢)를 확장해온 일부 언론들은 이 법을 존속시켜야 한다고 지금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력은 우리의 1/20정도로 추락하여 식량 문제마저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처지에 놓여있다. 그리고 남․북의 정상은 분단 50년 만에 만났다. 적대적 불신관계에서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의 길로 들어서면서, 철도가 연결되고 도로가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일부 세력들은 국가보안법의 개정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첫째는 “남한을 공산화하겠다는 북한의 노동당 규약은 그대로다. 그들의 적화 야욕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왜 일방적으로 보안법을 폐지하느냐”라는 의견으로 북한이 변하지 않고 있음을 애써 강조한다. 그러나 한 국가의 역량은 어디에 어떻게 써있고 무엇이라고 큰 소리쳐 주장하는 것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허풍일 수 있고 자기 약점을 덮기 위한 전략적 방편일 수도 있다. 그런 허상을 빗대어 북한의 통일전선 위협을 이야기하며 국가보안법이 지금도 필요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허깨비에게 끌려 다니는 모양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레드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북한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옛 그대로 똑같은 생각과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면 이것은 이미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주변 정세와 내부 환경 모두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그냥 그대로 있다면 그것은 죽은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내심 북한을 타도․흡수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두 손을 들어 환영해야 할 일이다. 둘째,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에 기여한 상징성을 고려해서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보라는 측면에서 이 법이 받아야 할 칭송은 이미 여러 모로 넘치게 받았다. 이 법의 상징성을 살리기를 그렇게 원한다면, 이 법을 하루 빨리 폐지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국가보안법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이 양산시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없어진다고 해서 우리의 안보에 무슨 영향이 있단 말인가! 국가보안법의 힘으로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장병들의 정신교육은 이를 근거로 하고 있지 않다. 보안 업무의 발전을 위해서도 국가보안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마구잡이가 가능한 편리한 법이 있는 한 그 업무가 고도의 전문성에 의하여 보다 과학적으로 섬세하게 발전될 수 없다.


국가의 안보는 정권의 안보가 아니다. 국민들의 안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국민들의 인권이 살아 숨쉬게 될 때, 그 자부심은 자연스레 국가의 안보로 연결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었던 그 많은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그들이 흘린 피가 결코 헛되지 않아 민주주의와 인권의 정신이 살아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그들에게 알리는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 법을 폐기하는 것이다




아직도 주적론(主敵論) 논쟁을 하고 있습니까?


지난 대선 당시, 후보자들의 합동 토론 등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주제 중 하나가 주적론에 관련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도 이 논쟁은 계속되었다. 북한이 우리의 ‘주적’인가?


주적 개념은 냉전 구조 속에서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치러야 했던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이데올로기적 개념일 뿐 이다. 심각한 적대적인 관계라고 하더라도 상대국을 국방 문서상에 ‘주적’이라고 명시한 나라는 거의 없다. 적이 누구라고 명시하는 것은 국가이익과 안보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국제 정세 속에서 주적을 명시함으로써 스스로의 행동반경을 제한함은 국방, 외교, 경제, 국가 이미지 등 어느 면에서나 이로울 것이 없다.


주적 개념이 국방백서에 명시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안보에 관련된 모든 판단과 계획, 도상 훈련, 전투 훈련, 적 전술 교육 등은 북한을 일차적 위협 요소인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여 준비되며 시행된다. 적어도 군사적으로 북한이 우리의 적(敵)이라는 점, 그리고 모든 군사력이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여 배치 운영된다는 점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연평도 해전에서 보았듯이 지금 우리 군은 튼튼한 안보만이 남북 화해와 평화의 길을 순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그 어느 때 보다 군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것은 주적 개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주어진 소임을 시스템에 따라서 책임을 다해 수행할 뿐이지, 적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주적 개념을 고집하는 세력은 주적 개념을 통하여 강력한 대북 적개심을 고취해야 하는데도 상황이 평화 국면으로 변해 장병들의 안보 의식이 해이해졌다는 정신 교육의 측면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결정적 오류는 적개심이 강할수록 전투 역량이 강해진다는 사고방식을 전제로 한다는 데 있다. 국가 간 전쟁을 마치 개인들 사이의 주먹다짐 수준으로 생각하는 꼴이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대체로 적개심이 강한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투는 다르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은 오히려 장애가 된다. 전투는 거대한 조직의 힘으로, 무기를 가지고 목숨을 걸고 싸우기 때문에 가장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냉철하게 행동해야만 한다. 운동경기나 바둑, 카드놀이 등 모든 경쟁이 마찬가지다. 분노나 적대 감정은 금물이다.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한 적개심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은 옛 일본 군대로부터 물려받은 잘 못된 유산이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강권으로 통치하고 있을 때 조선인 출신 장병들에게 가장 우려했던 점은 그들이 우리 민족을 동족으로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아군이냐, 적군이냐를 구분하면서 적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이고 철저한 적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광복군이나 독립군에 대한 애착과 동정심을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특수한 목적을 지닌 처사이기도 했다.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결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런 개인, 조직, 나라는 긴 시간을 두고 볼 때 예외 없이 멸망하고 말았다. 적개심은 전장에서 전투상황에 따라 전투원에게서 발휘되는 전장 심리의 결과적 상태일 뿐이다. 인간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을 고취하는 것은 민주시민 의식 육성이라는 과제에도 어긋나며 그런 적대감을 정신교육을 통해 주지시킨다는 발상 역시 너무 구태의연하다.


아직까지 냉전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구 세력들이 안타깝다. 그리고 민족이 화해와 평화의 길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려는 일부 언론들의 훼방이 이제는 제발 그쳤으면 하는 바램 이다.




그대들의 망발 “총도 쏘지 못하는 군대”


“총은 쏘라고 있는 것이고, 총도 쏘지 못하는 군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이는 2001년 우리 영해를 침범한 북한의 商船에 대한 군의 조치를 비난하는 한 신문의 기사 내용이다. 우리 군을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이러한 보도는 연일 계속되었다.


그들은 군인이 총을 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총으로 정권을 빼앗아, 조국의 민주주의를 짓밟아온 독재 정권을 침이 마르도록 찬양․옹호해온 그들이었기에 그들의 눈에는 ‘군대란 당연히 스스로의 판단이나 아무런 절제도 없이 무작정 총을 쏘는 그런 집단’이라고 생각해 왔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일찍이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 무장을 하지 않은 시민들을 향해 발포를 하고,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했던 신 군부에 대해 일관되게 “총은 쏘라고 있는 것이다”라는 그런 사고방식으로 여론을 호도  함으로써 독재 권력이 탄생하는 데 큰 몫을 했었다. 그 대가가 오늘 정의에 비굴하고 국민에게 방자한 그들을 만들었으니 그런 사고가 쉽게 고쳐질 리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과연 군인이 총을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그런 망발을 했는가? 당신들이 당신들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지금도 ‘언론의 총’을 마구잡이로 쏘고 있는 것처럼 군인들도 그래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총은 그렇게 사용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쏘아서는 안 될 대상에게는 절대로 쏘지 말라고 당부하며 국민들이 준 것이다. 역사 앞에 그리고 국민 앞에 죄를 짓는 일이 없이 신중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준 것임을 지금의 우리 장병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진정 떨리는 마음으로 총을 잡고 있음을 그대들은 아는가?


제네바 협약에 의하면 교전 중이라도 적대행위가 없는 민간인은 보호하도록 되어있다. 전쟁 미치광이가 아닌 이상, 우리의 영해를 단순 통과하고 있는 비무장 상선에 대해서 무조건 발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아닌지, 그 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당시의 상황에서 우리 해군은 인내심을 가지고 국제적인 여론, 남북 관계의 파장, 교전 규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판단하여 지혜롭게 북한 상선을 영해 밖으로 몰아냈다. 이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절제된 현명한 조치였는가? 연평 해전 이후, 우리 해군이 세운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칭송 받아야 마땅함에도 그 신문은 이를 정반대로 몰아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국군 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도대체 어느 나라를 위한 언론인지 의심스럽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5>
통일을 준비하는 국방정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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