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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2) 군대파괴

2007-10-15 23:15:26, Hit : 5322

작성자 : 표명렬
 집단 감시 기능

1979년도 대만 정치심리전학교 참모대학 과정 유학 시절의 일이다. 그 날은 전 피교육자들이 대강당에 모여 외부 초빙 강사로부터 특강을 듣는 시간이었다. 10분간 휴식시간에 한 중령 학생이 강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연대장인 호 대령에게 발각되어 “강당은 금연 구역이니 반드시 밖에 나가서 흡연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다음 시간의 휴식 시간에도 담배 연기가 뿜어 나왔다. 연대장은 노발대발하여 그 학생을 일으켜 세운 다음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꾸중을 했다. 내가 보기에는 연대장의 처사는 너무나 적절하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 날 저녁 우리로 말하면 학생자치회와 비슷한 영예단결회의가 각 중대별로 긴급 소집되었다. 의제는 ‘연대장 호 대령의 리더십 결함’에 대한 성토였다. 피 교육생이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면박을 줄 수 있느냐, 그가 백 번 잘 못했으면 백 번이라도 조용히 불러서 타이르거나, 아니면 규정에 의해서 처벌하면 될 것 아닌가. 이것은 그가 간부로서 지녀야할 최소한의 인격과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 때문이라며 이구동성 분개하는 발언을 했다.


이 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은 가감 없이 그대로 종합해서 지휘 계통인 중대장, 대대장을 통해서 연대장 본인에게 보고되며 연대장은 이를 거울삼아 스스로를 반성하며 교육에 참고한다고 한다. 그들은 중국 대륙에서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렇게 집단 감시의 기능에 의해서 지휘관 자신도 견제 받도록 관련 지휘관리 시스템을 개혁하였다.  부대장을 위한 부대가 아닌, 부대를 위한 부대장이 되도록 하고 있음에 깊이 감탄했다.


교육기관이 아닌 일반 전투부대에서는 이렇게까지 지휘관을 성토할 수 없지만, 매월 「영예단결회의」라는 제도를 통하여 장병들이 자기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부대는 인사․포상․휴가․면회․재정․복지․급식 등 장병들의 관심 사항을 공개함으로써 부대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집단에 의한 감시 기능과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대만 군대 내에는 과거 우리 군에 거의 고질화되어 있었던 고참병의 횡포나 의문사와 같은 억울한 일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1973년에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유학을 다녀온 후 한때 이 제도를 원용하여 우리 군에 적용함으로써 군 의식개혁의 실마리를 찾으려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었다. ‘바람직한 군대의 상’을 말로는 떠들지만, ‘군대는 윗사람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조금도 바꾸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발상의 대전환, 군대 파괴


스페인이 프랑코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룩했을 당시, 맨 먼저 군 개혁부터 착수했다. 그 첫 단계가 사관학교 훈육개혁이었다. 이는 오랜 독재 기간동안 그곳 출신들이 사회 각 분야의 반 개혁적 기득권 층으로 자리잡아 군에 대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차단하는 한편 생도들에게 민주주의적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군대문화를 개혁하지 않고는 민주적 정치 문화를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사실에 그들은 일찍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른바 문민정부 때는 ‘하나회’를 색출하고 부패한 고급 간부들을 감옥에 보내는 등 군부 숙청을 하면서 그것이 군 개혁이라는 착각에 도취되어 세월만 보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서도 따는 개혁을 한다고 국방부에 위원회를 만들고 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무기체계를 중심으로 한 정상적인 군 발전계획으로서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개혁 담론을 가로막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군 개혁의 핵심은 군대문화의 개혁이다. ‘특수집단’이라는 이유로 성역처럼 받아들여진 의식과 문화를 바로잡는 일이다.


“군대란 본래 이런 거야”라며 절대 복종․군기 만능․인격 무시․생명 경시․간부 특권 의식 등 권위적 문화를 개혁해야 한다. 새로운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톰 피터스가 ‘경영 파괴’를 말했던 것처럼 새로운 인류문명사, 새로운 민족사의 전개에 부흥하여 ‘군대 파괴’라는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새로운 국군 건설이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강자존 vs 적자존


2군 정훈참모로 근무하던 시절, 군사령관은 간부 정신교육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매일 점심 식사가 끝난 후 식당 앉은자리에서 ‘10분 정신교육’을 했다. 목회자가 주일 날 설교를 위해 1주일간을 준비하듯, 나는 그 10분의 강의를 위하여 하루 하루를 사는 사람 같았다. 다른 이들은 속도 모르고 정훈 참모니까 당연히 잘 할 것 아니냐고 쉽게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남모르는 노력과 고통이 있었다. 매일 실수 없이 잘 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소화불량증에 걸려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점심식사는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세상에 저절로 잘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대개 일주일 분의 제목을 정한 다음에는 그 제목에서 말하고자하는 내용의 핵심을 생각나는 데로 요약하여 기록했다가 강의 이틀 전까지는 확정하여 연습을 했다. 관사에서 사무실까지 출근할 때 걸어가면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은 ‘적자존‘입니다.” 이렇게 중얼중얼 연습을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 육군 본부 강당의 넓은 외벽에는 균형 잡히지 않은 너무 큰 글씨로 ‘강자존’이라고 써있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있었다. 그런 구호를 만들어 강조하던 황영시 참모총장은 12. 12에 적극 가담했던 분으로 엘리트 예찬의 논리로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며 변명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신 군부세력에게 아부를 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구호라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육본의 그 구호가 참으로 못 마땅하였지만 정면으로 반박할 수는 없었고, 나는 그들이 말하는 것과는 반대의 입장인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제목의 ‘10분 정신교육’을 함으로써 마음속에 품고있는 불쾌함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들의 주장에 맞서기 위해 제목은 같은 세 글자인 ‘적자존’으로 했다.


“세상에는 물리적인 힘이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정글의 법칙에서도 결코 그렇지가 않다. 맹수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약한 다른 짐승들을 마구 잡아먹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사슬의 관계에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고, 생존 질서가 파괴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자리를 호령하던 공룡은 멸종되고 말았다. 진정으로 강한 힘은 자연과 환경과 다른 개체와의 조화와 적응 능력이다. 이것은 동물세계의 질서만이 아니다. 사회생활의 법칙에도 적용된다. 진정으로 강한 힘은 지배력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베푸는 이타적인 마음이다. 그러기에 인간 세계에서는 ‘사랑’의 힘이 가장 강한 힘이라 하지 않은가.


적자생존의 원리가 강자만이 존재한다는 우격다짐 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하나의 강자가 남기까지는 수많은 약자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겸허함이 있어야할 것이다. 강한 강철은 부러지기 쉽다. 물리적인 폭력은 언젠가는 반드시 그 보다 강한 힘에 의해서 멸망된다. 이는 역사의 법칙이다. 약자를 무시하며 약자의 억울함이나 약자들의 정의로움을 향한 외침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이 일언반구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강자들의 무자비한 지배논리만 그럴 듯한 말장난으로 정당화하는 논리가 커다랗게 써있는 강자존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우리 젊은이들 거의가 인생의 황금기를 군에서 보내야만 하는데 그들은 과연 거기서 어떤 정신적 대접을 받으며 어떤 생각을 하면서 생활하는지, 군 복무를 마치고 나면 어떤 의식이 습관화되어 그들의 일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등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나라 지식인이나 언론들은 무관심하다. 늘 해오던 대로 “군대란 본래 그런 것이야”만 되풀이해서 듣다 보니, 이에 완전히 세뇌되어버린 탓일까? 군대를 민주화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히려 군대의 본질을 모르는 이상한 말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사실 암울했던 지난날의 독재체제 아래서는 군대란 독재권력을 지탱해주는 역할만 맡아주면 그것으로 족하였다. 군을 민주화 개혁해야 한다는 말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군을 대상으로 한 민간 조사는 「군사보안」 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차단되어 우선 군대 내부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또는 군대생활이 장병들의 의식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사회학이나 심리학자들 중에는 군대의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어온 분들이 그리 많지 않고 연구 실적 또한 미미한 상태다. 민주적 군대문화 건설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실정이라 할 수 있다.


고귀한 생명까지 바치며 적의 생명을 노려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대야말로 그 본질적 특성상 어느 집단보다 인간 존엄의 민주적 사상이 투철해야 한다. 그러나 5.16 쿠데타로 성립된 독재정권의 주도 세력들은 거의가 일본 군대로부터 깊게 세뇌되어 일본 제국 군대를 이상으로 아는 분들이었다. 따라서 비록 군사제도는 미군 식의 선진 사회에 부합되는 내용을 택했지만 이것은 겉모습일 뿐,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정신은 군국주의 국가의 군에서나 통하는 극단적으로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반(反)인권적 문화가 배태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모임에서 현역 간부 한 사람을 만나 우리 군의 민주화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했더니 “선배님 계실 때와는 군대가 완전히 다르게 변했습니다. 너무 민주화가 되어 군이 약해져서 오히려 문제입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민주화의 의미, 우리 군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 그리고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강한 군대가 되는 것인지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군대는 그 본질적 특성상 민주화란 말이 성립될 수 없다”고 단정해 버린다. 그가 말 한데로 참으로 많이 변했다. 그러나 사실은 군대가 변한 것이 아니다. 병사들의 사고 방식과 행동양식이 변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군사제도와 문화 그리고 특히 간부들의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문제다.


군이 너무 민주화되어 곤란하다는 말은 마치 민주화가 군인들을 멋대로 내버려두며 나태하게 만드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피나는 훈련, 철저한 임무수행, 태산처럼 준엄한 명령 관철 등은 군에 있어 필수적인 특성이다. 군의 민주화는 바로 이러한 요소들을 더 철저하고 강하게 하기 위함이다. 다만 그 기본정신과 시행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예 같은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 동기부여(Self-Motivation)에 의해한 자율성이 중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군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간부들의 사고방식이 변해야한다. 예나 지금이나 군의 고위 책임자들은 대부분 “군은 문제없습니다. 잘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며 치부를 숨기면서 현상 유지를 바래왔다. 개혁은 문제 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군을 민주화 개혁하기 위한 철학과 신념을 마련해야 한다.






2. 개혁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좌절된 6.25 민족 진혼곡


‘전쟁기념사업회’의 문화예술 분야의 일을 맡은 적이 있다. 우리 민족이 6.25라는 엄청난 비극을 치르고도 이를 세계적 수준의 문학이나 문화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간의 냉전체제 아래서 민족에 대한 증오와 적대의 의식이 우리의 정신을 얼마나 경직되게 좀먹고 메마르게 해 황폐되어 왔던가를 말해주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6.25 40주년을 기하여 민족의 한을 씻김 하는 ‘민족 진혼곡’ 제작을 추진 중에 있었다. 강대국들이 만든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이 분단된 것만도 억울한데 민족상잔의 6.25를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고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던가! 지금도 조국 강산의 구천을 헤매고 있을 비명에 간 수많은 원혼(怨魂)들을 민족의 이름으로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민족진혼곡’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작곡은 ‘코리아 심포니’의 지휘를 맡고 있었던 한양대학교의 고(故) 홍연태 교수에게 부탁하였다. 그 노 교수께서도 엄청난 민족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작곡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분 자신도 6.25로 인한 뼈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온 분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의 주장은 우리가 비록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전쟁을 치렀지만 우리는 한 민족 한 형제의 우애를 가지고서 6.25 때문에 희생당한 주민들은 물론이고 국군과 인민군의 죽음까지도 함께 명복을 비는 뜻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었고, 사업회에서는 “우리가 직접 싸웠던 적군인 인민군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되면 진혼곡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자비(慈悲)의 사상이 주제가 되지 않으면, 민족의 후세에 기리 남을 세계적 대작(大作)이 될 수 없다”고 완강히 주장했다. 논리적으로나 민족의 미래사를 생각할 때 나의 말을 반박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이 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사용해 왔던 자문위원회를 동원하여 부결시켜버렸다.


월남전의 두코 전투에서 미군 전차병들의 월맹군 시체를 처리하는 그 멋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서로의 생명을 노리던 적이었지만, 일단 전투를 승리로 끝낸 다음에는 적의 시체를 모아서 묘를 만들어 주고 그 위에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 명복을 빌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6.25 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분들로서는 철천지원수로 느낄 수밖에 없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증오심을 불태우는 것이 마치 강한 정신력이요 애국심의 발로라고 생각하는 발상이 문제다. 응어리진 감정의 차원을 넘어 서서 민족 전체의 뼈아픈 가슴으로 먼 후대까지를 바라보며 역사를 정리해 가는 그런 책임 있고 도량 넓은 지혜가 참으로 아쉬웠다.




비무장 지대를 평화공원으로


나는 미국의 남북 전쟁 격전지였던 겟디스 버그를 돌아보며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총구 뚫린 집들이며 역사의 현장을 최대한 그대로 보존하여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6.25는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가슴 아픈 비극이다. 전쟁을 직접 체험했던 세대들은 결코 그 뼈아픈 상처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면 6.25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 기록된 낯선 이야기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6.25가 할퀴고 간 자취는 이 땅 곳곳에 아직 선연하게 남아 있다. 비무장지대(DMZ)는 6.25 때문에 만들어진 독특한 지대이다. 폭 4킬로미터, 길이 248킬로미터에 달하는 환경보전이 가장 잘 된 자연보호 띠가 형성되어 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이 이곳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다. 세계 각 국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이어 조심조심 관찰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관광명소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안고 있다. 곤충학자, 조류학자, 식물학자, 토양학자, 생태계학자, 환경학자 등이 모여들어 상태를 파악하고 자료를 체취하며 연구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천방초소(GP), 출입통제소(CP), 관측소(OP) 등은 자연보호 경비원과 산불방지 요원들의 순찰로와 숙소로 바뀌어질 것이다. 그러나 출입은 지금처럼 엄격히 통제될 것이다. 유스호스텔 등 관광객들의 숙소는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밖에만 건립이 허용되고 그곳에서는 6.25와 관련된 기념품 판매소 전시실 등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는 땅굴들도 입장료 수입을 톡톡히 올려줄지 모른다. 백마고지 등의 격전지에는 최신 전자시스템을 활용한 ‘전쟁재현’으로 전쟁학도들의 관심을 끌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폐허의 마을들도 있는 그대로 보존되어 전쟁의 비참했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남북 화해와 적극적 교류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면 비무장지대 안에 남북 합작 공장을 건립하자 느니 호텔을 지어 통일 관광사업을 일으키자 느니 하는 의견들이 쏟아져 나올텐데, 지금부터 남북이 공동으로 뜻을 모아 비무장지대를 평화 공원으로 만들 법적․제도적 장치를 미리 마련해야 한다.


비무장지대의 평화 공원화에 관한 남북 간의 합의가 발표되는 그 날엔 큰 축제를 벌이자. 그 날의 축제를 위해 지금부터 준비할 일도 많다. 우선 6.25 진혼곡을 만들자! 그리고 진혼 탑도 만들자. 이런 일들은 6.25 체험 세대인 우리가 꼭 시작해야 한다. 비록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역량이 부족해 민족의 비극을 피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지만, 진정으로 민족을 사랑하는 화해의 의지가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자.




철학이 없는 전쟁기념관


전제 군주 시대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왕실의 존망이 전쟁의 승패 여하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모든 국력은 전쟁 준비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역대 제왕들의 가장 큰 관심은 전쟁에서의 승리였다. 런던 교외에는 전쟁 박물관이 있고, 파리에는 나폴레옹 기념관이 있으며 스페인도 전쟁박물관을 만들어 전쟁을 통해 영화를 누렸던 역사를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전쟁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나는 전쟁기념사업회 발족 때 ‘문화예술 분과 위원장’이라는 거창한 직함으로 참여해서 사업회의 활동 방향과 전쟁기념관 건립에 관한 기조를 작성하는 책임을 맡아 일한 적이 있다.


나는 전쟁기념사업회의 활동 방향과 전쟁기념관 건립의 기본 개념을 ‘우리 민족은 위대하다’를 대 전제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불러일으키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민족정신 고양의 교육도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심한 민족이다. 전쟁도 한 번 일으켜 보지 못한 허약한 민족으로서 당해야만 싼, 별수 없는 민족이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할 정도로, 민족을 멸시하며 살아온 분들이 실권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일본 군대 출신들로 군내에서도 존경받아온 분들인데 그 속내 정신은 그러했다.


이렇게 대전제(大前提)와 기본 발상부터 어긋나니 사사건건 충돌이었다. 우선 전쟁기념관의 명칭 문제부터 빗나갔었다. 그 분들은 당초 ‘6.25 전쟁기념관’을 의도하였었는데 여론이 좋지 않고 명분이 약해지자 ‘전쟁기념관’으로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사업회 전(全)직원들의 여론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 상으로는 전쟁을 기념한다는 말은 적절치 않다”고 의견이 종합되었고 사회 각계 인사들의 의견 조사에서도 같은 답이 나왔지만 막무가내였다. “너희들이 전쟁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라는 식이었다.


기념관 건물의 형태에 대한 논의에서도 갈등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육군본부 현재의 건물 뼈대를 그대로 두고 개 보수하여 건립하자고 주장했고, 그분들은 완전히 헐어버리고 웅장한 새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육군에서도 육본의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참모총장이 종합하여 표명하였다. 일본군의 마구간이었고 육군본부 건물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허물고 새로 지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옳았지만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렇지가 않았다.


사실상 사업회가 일을 추진하는 데 들러리 역할에 불과한 ‘원로자문위원회’라는 것을 소집하여 웅대한 새 건물을 짓기로 결정한 다음, 이를 근거로 하여 밀고 나갔다. 국가 재정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건설회사에서 제일 좋아했을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옛날의 왕궁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건물을 짓고자 하였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워싱톤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처럼 실용적인 현대식 건축물을 주장하였다. 결국 그분들의 생각을 공식화하는 역할의 원로자문위원회 검토라는 요식절차를 다시 밟아 그들 뜻대로 결정했다. 건축물에도 권위주의적인 사고가 그대로 베어 있었다. 서구의 옛 궁전처럼 본 건물 양옆으로 회랑을 길게 뻗어 나오게 한 것이라든지 건물 정면에 연못을 파게 만든 것 등 참으로 못마땅한 설계였었지만 그대로 추진되었다.


내가 작성한 전쟁기념사업의 기조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였고 실제로는 거기에 담긴 철학과 정신이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나는 기념관 속에 우리 민족의 살아서 꿈틀거리는 민족혼과 그것을 설명하는 우리 민족의 군사 사상을 담고자 하였다.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인류애를 민족정신의 뿌리로 하여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한 민족이다. 그렇기에 한번도 침략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적의 침략에 대해서는 온 민족이 한 덩이가 되어 반드시 물리쳐 5천 년 동안 민족의 강토(疆土)를 지켜온 자랑스러운 민족이다. 전시장을 한바퀴 돌고 나면 이러한 우리 민족의 위대성에 대해서 놀라운 감동을 받게 되는 그런 기념관을 생각하며 기본 개념과 방향을 설정하였지만 전혀 다른 길로 가고 말았다. 이런 정신적 분위기의 씨앗이 사업회에서 한때 ‘디엠지(DMZ) 전시’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사업을 하여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원인인 것이다.




‘형제의 상’


나는 전쟁기념사업회에서 야외에 조각을 세우는 계획을 추진하는 일을 맡아, 세계의 유명 조각들을 돌아 볼 기회가 있었다. 전쟁의 역사가 깊은 유럽 국가들의 절대군주 시대에 만들어진 관련 조각들은 대개가 전쟁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한 장군 중심이었다. 통상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길거리 한복판의 높은 대 위에 말을 탄 모습의 동상 등을 세워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게 하고, 후세에 길이 남을 영웅으로 추앙함으로써 가족들의 마음을 달래고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나가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는 분위기 조성에 기여했을 것임을 엿볼 수 있었다.


전체주의적 절대군주 국가의 경험 없이 처음부터 신대륙에서 민주공화국으로 시작한 미국의 관련 조각들은 이와는 사뭇 달랐다. 젊은이들을 전장에 몰아 넣기 위한 의도의 전쟁 영웅 위주의 내용보다는 합중국인 미국의 입장에서 국가적 구심점을 강조하는 상징성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 해병대가 이오지마에 상륙하여 성조기를 꽂는 모습의 조각이다.


미국의 조각 중에 가장 감명을 받았던 것은 역시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왕실의 국가가 아닌 민주주의로 출발하는 미국에 대한 경외와 발전을 위한 염원을 담아, 민주주의 국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프랑스인들에 의해 기증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돋보였다. 맨하탄에서 바라보이는 여신상의 위치 그리고 여신상에서 배를 타고 오면서 보이는 아름다운 맨하탄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우리 민족을 상징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조각을 만들어야 하는데…’ 하며 돌아와 전의(戰意)에 불타는 군인의 모습을 지양하고 이야기가 담긴 의미 있는 조각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 뜻의 하나로 전쟁기념관에는 ‘형제의 상’이라는 조각이 세워졌다. 국군인 형(兄)이 인민군 패잔병이 된 아우를 껴안고 있는 모습이다. 김영삼 정부 때, 국방부에서 이 그림을 배경으로 국군의 날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했다가 청와대로부터 “어떻게 국군이 인민군을 감쌀 수 있느냐? 배후에 빨갱이가 있어서 그런 작품이 나온 것 아니냐”라는 호된 질책을 받고 부랴부랴 전량 회수하여 폐기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위세 당당한 수구 언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 청와대가 앵무새처럼 국방부를 향해 나무란 것이었다.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학자 한완상씨도, 정의의 편에 늘 서왔던 김정남 노동수석도 수구 세력들의 폭력에 의해서 청와대에서 쫓겨났었다. 서로 감싸안은 형제의 상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걸림돌을 넘어


국방부의 어떤 중요 연구소 간부들에 대한 의식혁신 내용의 특별 강의를 실시한 적이 있다. 3시간을 연속하는 오후 강의였지만 한 사람도 졸지 않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군에 대한 나의 애착이 강한 열정을 뿜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군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하였다. 이들은 군사 과학 분야의 연구를 하는 분들이지만, 의식 및 문화면에서 우리 군이 지향하여야할 방향과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인식함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간부 양성과정의 중추인 사관학교의 훈육 실태와 간부들의 잘못된 가치관에 대해서 문제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공감을 표시하였다.


그런데 교육을 마친 후 거기 근무하는 후배 예비역 장군으로부터 “강의는 너무나 재미있고 유익했는데, 민간인 출신들도 많은 앞에서 군을 욕하는 것만 없었으면 아주 좋았을 것”이라는 충고 같은 조언을 들었다. 특히 사관학교 후배들이 강하게 항의하더라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민간대학 출신, 군인 출신을 구분하는 경직된 사고 자체가 한심스러운 일일 뿐 아니라, 무엇이 진정으로 욕되게 하는지에 대한 분별력도 없는 단순함, 무엇이 우리 군의 가장 큰 문제점인지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목에 힘만 주고있는 맹목적인 우월주의가 그 안에는 담겨있었다. 나는 “후배들이 그 정도 수준이니 참으로 딱합니다”라고만 말했다.


그 특강이 있기 몇 개월 전에, 육군 정훈 홍보실에서 역대 정훈 병과장 초청 간담회가 있었다. 만찬 시간에 군 발전을 위한 조언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술도 거나하게 취했겠다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이 그대로 쏟아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제2의 건국을 하자고 요란한데, 군은 제2의 건군을 하지 않느냐? 우리 군은 독재정권이 계속되는 동안 가장 파행적으로 운영되어 온 집단으로 깊은 병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 군대는 이런 면에서 볼 때 군대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개혁해야한다”고 조금 격하게 심정을 토로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한 선배장군이 목소리를 낮추어 아주 점잖게 “표장군! 그게 무슨 말이요. 소위 장군출신이 우리 군대는 군대도 아니라니 그 말 취소하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장군이 되기까지는 “아주 잘되고 있습니다. 지당합니다”만을 습관화하여 왔기 때문에 개혁적인 열정 따위는 의심받을 일이라는 처세가 몸에 배어 굳어진 것이리라 생각하니 측은하기도 했다.


하기야 내가 그런 핀잔을 받은 것은 그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6공 시절, 종로에 있는 한 중국집에서 정훈 병과장 출신들의 모임이 있었다. 민주화를 부르짖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절정에 달하여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한 때였다. 정훈 병과장을 하면서 늘 해오던 대로 정권 편에 서서 학생들을 매도하던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인지, “학생들이 빨갱이들에게 놀아나 데모가 아주 과격해지고 있는데 큰일이다. 이러다가는 완전히 빨갱이 나라가 되어 갈지도 모른다. 참으로 걱정되는 바 크다”는 식의 우국충정(?)의 말이 있었다. 이 때도 “우리나라가 민주화로 가는 진통이지 우리 젊은이들이 빨갱이들에게 놀아날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지 않습니다!” 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군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정권안보를 위한 일에 앞장서 열을 올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논리에 세뇌되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부끄러움도 없이 시대착오적인 생각과 말을 늘어놓으면서, 본인들이야말로 가장 애국자이며 군을 가장 잘 알고 걱정하고 있다는 분들의 착각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동아시아출판사 표명렬 저 2003.6>
통일을 준비하는 국방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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