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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전없는 심리전

2006-03-12 09:47:43, Hit : 4007

작성자 : 표명렬
  휴전없는 심리전

‘정신전력 강화’는 내 군대생활의 비전이요 군인으로서의 나의 존재 의미였다. 그 중심 내용은 민족의 군대로서의 국군의 혼을 살리는 일, 우리 군에 고질화되어 있는 일본 군대식의 부정적 ‘군대문화’를 개혁하여 민주적 군대문화를 뿌리내리는 일 그리고 이를 제도화 할 수 있는 한국군의 독자적 심리전 전략과 체제 정립이었다. 나는 월남전을 통해 이런 꿈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귀국한 다음해인 1967년 2월 정훈 병과로 전과했다.

전과 후 1972년 5월 한국군 최초로 대만 정치심리전 학교에 유학, 군에서 실시하는 모든 정신전력 강화를 위한 연구에는 항상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국방부에 정신전력 연구위원회를 만들어 연구를 주도하여 1977년 국군 정신전력 학교를 창설하였다. 이 학교를 모태로 하여 정신전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군사제도와 조직 및 교리를 연구․발전시키고자 하는 일에 매진했다.

정신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무형 전력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조직체를 구성하는 문제가 핵심적인 과제였다. 아무리 정신전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더라도 이를 계획하고 판단하며 추진을 주관하는 참모 조직이 없으면 한갓 구호에 그칠 뿐 그 분야의 업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의 논거는 아주 간단하고 명료했다. “정신전력은 심리전력이다. 우리 군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미군의 입장과는 다르다. 우리는 동족간의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동족간의 전쟁에서는 물리적 역량보다 더 중요한 전력은 바로 심리전력이다.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마음을 우리 쪽으로 돌리는 것이 승리의 요체이다. 특히 문화와 의식구조 그리고 심리전의 수단인 언어와 문자가 동일한 동족간의 전쟁에서는 외국을 상대로 싸우는 미군과 달라 심리전을 특수전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적과 접촉하고 있는 모든 장병이 대적 선전요원이며 심리전 요원이고 심리전 방어의 전문가가 되어야한다. 따라서 넓은 의미의 한국적 심리전 개념을 다시 설정하여 이 분야의 업무를 통합 추진하는 일반참모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2군 정훈참모시 사령부 내에 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를 거친 후 군사령관의 최종 결재를 얻었다. 사령관께서는 육군 본부 회의에 참석하여 우리 2군에서는 이 안을 적용하겠음을 당시 참모총장 황영시 장군에게 보고하기 위해 준비하여 서울에 올라갔는데 그 날 그만 전역 명령을 받았다. 나는 직접 그 안을 가지고 육군 본부의 관계자들을 찾아다녔다. 열을 올려 설명했지만 모두 귀찮다는 표정들이었다. 요직에 앉아 있던 분들은 그런 새로운 아이디어 같은 것에는 관심들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라는 말을 나는 확실히 믿고 있었다.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 훗날 내가 정훈감이 되어 마침내 이 뜻을 이루었다.

내가 정훈 병과의 책임자가 된 것은 만인의총(萬人義塚)에 묻혀 계시는 선조들을 비롯한 수많은 의병 할아버님들, 항일 독립 전쟁에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신 수많은 독립군 광복군 선배님들이 나를 향해 “민족 혼(魂)이 없는 군대는 죽은 군대다. 민족정기가 바로 선 국군을 만들라!”는 뜻을 실현하기 위함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복무 계획 작성부터 이 꿈을 이루는데 목표를 정하고 모든 사업 계획을 여기에 지향하였다. “조직이 일을 한다. 무형의 심리전력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참모 조직을 만들어 민족의 혼이 살아 숨쉬는 군대, 인간을 귀히 여기는 군대 문화로 군을 개혁하리라”는 생각으로 2군에서 이미 채택하기로 결정하였으나 보고 과정에서 좌절된 참모기구 설치안(案)을 다시 들고나섰다.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동기생 장군들도 나의 순진한 처사에 혀를 차며 반대를 했지만,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참모부장들을 설득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찾아다니며 보고를 했다. 필요성과 타당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편제와 교리를 연구하고 발전시켜야할 주무 부서인 작전 참모부에서는 속된 말로 코방귀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 기회는 끊임없이 찾아오고 얼마든지 발견된다. 참으로 기적처럼 찬스가 찾아왔다.


김일성 사망 정보와 제대로 생각하는 안보

86년 11월 당시 전방 비무장지대에서 김일성이 사망한 것 같다는 여러 증후를 발견하여 첩보 보고를 했다. 그런데 이 내용이 김일성 사망 정보로 언론에 흘려져 조선일보 등에 대서특필하여 요란했던 사실이 있었다. 사실 무근임이 밝혀짐에 따라 군이 큰 망신을 당했었다. 이는 바로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국가심리전 체계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여실히 설명해 주는 사실이었다.

미군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비무장 지대가 군사 정전의 군사적 의미 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 정부로서는 동족인 적과 직접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지대는 정치 심리전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음에도, 마치 전방 사단의 전초기지 수준 정도로 파악하여 현지 지휘관에게만 맡겨져 있을 뿐 국방부나 육군 수준에서는 관심의 대상도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육군에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강구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나는 “바로 이 때다” 하고 참모 차장에게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보고를 했다. “지금 우리는 전쟁중 입니다. 심리전은 휴전이 없습니다. 지금도 전방에서는 치열하게 심리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심리전에 관한 아무 대책이 없습니다. 이것은 조직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모총장님은 아침마다 일반 참모부로부터 브리핑을 듣고 계시는데 현재 진행중인 심리전에 대해서는 아무도 보고해 주지 않습니다. 정보참모부의 임무라고 하지만 심리전 정보 업무라는 수준을 넘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작전 상황에 대해서 총장님께서는 무관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과 같은 실수는 필연적이며 아주 조그마한 착오에 불과 합니다. 통일을 이룩할 때까지는 우리 군의 참모체제를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 운영하여야 합니다. 무기 체계와 관련된 교리와 연관된 참모체제와 전혀 상치되지 않습니다. 심리전 업무를 통합하여 일반참모부로 만들면 됩니다. 말로만 독자적 교리 발전이라고 떠들면 뭐 합니까? 심리 전력이야말로 우리가 독자적으로 발전 시켜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책임 수행하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당시 참모차장 박명철 장군은 나의 착안에 손을 들어주었다. 참모총장에게 다시 정리된 내용을 보고했다. 참모총장도 상당히 긴장된 자세로 나의 설명을 경청하였다. 참모부장들은 육군의 이런 중요한 정책이 정훈감에 의해서 제안되고 논의되다니 자존심에 관계되는 문제라는 눈치였다. 주무 부서인 작전 참모부와 정보 참모부의 반발이 가장 심했다.

여러 번의 정책회의가 있었다. 정책회의 의장인 참모차장의 확고한 입장 그리고 나의 끈질긴 설득과 신념 어린 호소 끝에 드디어 육본에 민사심리전 참모부를 설치하는 정책이 통과되었다. 나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분되어 있었다. 내 군 생활의 모든 것을 바쳐 이룩한 이 사업의 후속 조치를 하느라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우선 새로 구성된 참모부 운영의 지침과 절차를 규정하는 참모 업무교리를 만드는 일이 급선무였다. 모든 부대훈련과 지휘소 연습 그리고 학교기관의 교육에서 운영하고 훈련할 수 있는 민사심리전 참모계획, 참모판단, 참모회의, 참모보고 등에 관한 교리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참모부가 창설되고 얼마 안 있다가 나는 예편되었다. 초대 참모부장을 역임한 천용택 장군과 제2대 참모부장을 역임했던 편장원 장군은 모두 군단장으로 진출했다. 그 만큼 중요한 업무였다. 그러나 참모부 조직이 정착될 수 있는 기본 틀을 갖추는 후속조치의 노력들이 전혀 없었다. 일반 참모부로서 갖추어야하는 참모 업무 교리와 참모 요원에 대한 인사관리 등의 제도 정착에는 관심이 없었다. 창설 때부터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던 다른 참모부장들은 기회만 노리면서 소소한 이유들을 들어 끊임없이 해체를 주장하였고 정훈 병과에서도 병과 이기주의에 집착하여 분리되기를 원하여 2대 참모부장 이후 없어지고 말았다.

정신전력이라는 무형전력을 심리전력으로 개념화하여 독자적 심리전력을 건설하고 우리 군의 군대 문화와 의식을 개혁하고자 했던 나의 꿈은 이렇게 무산되고 말았다. 나는 한때 이를 회복하기 위해 국회에 진출하여 국방분과 위원 자격으로 대안을 제시한 후 국정감사를 통해 확인하는 방법 등으로 뜻을 관철하려고 정계에 뛰어들려 했지만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길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반드시 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아직도 나는 믿으며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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