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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역량 좀먹는 대북 적대의식 <군대개혁에 바친 내일생>

2008-02-22 23:39:48, Hit : 4824

작성자 : 표명렬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분들이 마지막을 편안히 갈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쓴 글을 읽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최후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그들 대부분이 티 없이 맑은 ‘사랑의 마음’으로 채워져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한다.

죽음을 바로 앞에 둔 그들을 대상으로 “생전에 가장 후회되는 점이 있었다면?”설문조사를 했는데, 거의 모두가 “베풀었어야 했는데--”  “양보할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그랬어!” 살아있을 동안 양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더라는 것이다.


그들이 마지막에 품은 이런 마음은 저 세상에 가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다. 살아생전에 철천지원수 같은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던 사람에게도 그런 자비와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으리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호국 영령들께서도 저승에서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도 서로 원수 맺어 미워하지 말고 사랑할 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자신들을 목숨을 앗아간 당시의 적에 대해서도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 끝까지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겠는가? 아니면, 인류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민족의 화해를 위해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써 노력하라고 당부하겠는가?


나는 1965년도 맹호부대 소총 중대원으로 월남에 파병되어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다. 맹호5호 작전 때는 적의 저격병이 쏜 총알이 나를 비켜가 바로 옆에 있던 제1분대장 정원모 하사가 내 대신 전사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당시의 적에 대해서 증오의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다.


부시 정부의 한 강경 매파 정치인이 “6.25 전쟁 중에 우리 미국 군인들이 한국 전쟁에서 몇 만 명이 전사했는데--”라며  전쟁불사의 대북 강경 정책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호전주의자들의 필요와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진 허구적 주장이다. 한때 우리나라 정치를 주름잡던 3김씨 중 군인출신인 김 아무개 씨가 그 무렵 미국을 다녀오더니 대북 강경파들의 흉을 내어 “6.25전쟁 중에 내 동기생 몇 백 명이 전사했는데”라며 그 특유의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맞장구쳐 지지해오던 햇볕정책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고 일갈했다.


국민의 정부 이후 대통령 당선이 유력했던 이회창씨도 뒤질세라 미국에 들어가  대북 강경론의 당위성을 주문하며 부추기고 돌아왔다. 대통령 되겠다는 분들이 이 모양이다. 조국 광복과 민주주의를 위해 그리고 6,25와 월남전쟁에서 목숨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지금 뭐라 하겠는가? 전쟁불사의 길로 치닫도록 적대의식의 확대를 바라겠는가?  화해와 평화의 길로 가기를 원하겠는가?


군 복무 면제를 받은 분들일수록 대북강경의 적대의식 강화를 주장하고 있음은 어째서 일까? 이상한 일이다.


1979년 아주 오래 전이지만, 내가 대만 국방부의 정치심리전대학(Political Warfare College)에 유학하고 있을 때다. 나는 학우들에게 “만약 중공과 쏘련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고 가정한다면, 당신들은 어느 쪽 편을 들것인가?”라고 매우 짓 구진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서슴없이 “당연 우리는 일단 중공 편”이라고들 대답했다. 이유인즉, “집안끼리 싸우다가도 적이 쳐들어오면, 우선 그 적부터 없애고 봐야할 것 아닌가?”라 했다. 중국 대륙에 살고 있는 인민들은 자기들이 쳐 부셔야할 적이 아니요 같은 동포다, 극소수의 공산 핵심 분자들만이 타도의 대상이라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니까-- 그런 가정의 질문 자체가 우문(愚問)이라며 미소 지었다.


물론 그들의 역사적 경험과 입장이 다르고 우리처럼 6.25와 같은 엄청난 비극을 겪지 않았기에 스스럼없이 그런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냉전적 사고에 찌들지 않은 입장 표명의 당당함이 매우 부러웠다. 비록 대만으로 쫓겨 온 신세가 되어있지만 중공이라는 거대 세력에 위축되지 않고 큰 소리할 수 있는  여유와 통 큰 기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들 중 누가 나에게 역으로 “일본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면 당신은 어느 편을 들겠는가?”라고 물어 왔다면 나는 물론 “일본!” 이라고 거리낌 없이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동학(同學)들은 나에게 그런 난처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그들을 흉내 내어 “북한이 이기도록 지원할 것이다”고 대답했다면 어찌되었을까? 누군가에 의해서 본국에 알려져 즉시 교육을 중단하고 귀국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고 국가보안법의 사슬에 단단히 걸려 기무사에 불려가 조사를 받느라 혼 줄이 났을 것이다. “저런 자가 어떻게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는가?.” 라는 욕설의 던진 돌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군대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평화재향군인회를 창립했다고 육사출신들과 장군출신들이 반민족적 수구신문과 짝하여 무슨 큰 난리라도 벌어진 것처럼 요란법석을 떨며 나를 색깔이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어 제명시켰던 웃기는 일이 훨씬 오래전에 벌어질 뻔 한 것이다.


오래전 북한 상선이 우리나라 영해를 통과하였을 시 즉각 사격하지 않았다고 국가안보에 무슨 큰 구멍이라도 뚫어진 양 핏대를 올려 질책하던 그들이다.


  그 신문의 정체성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장사 속의 그 얄팍한 거짓 선동의 필치에 속아, 국가안보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까지 얼마나 반 안보적으로 국민정서를 왜곡시키고 있는지? 분간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진정한 안보 역량은 어디서 나오는가? 인간중심의 21세기 새로운 정보화 시대에는 전쟁을 포함한 모든 경쟁에서의 승패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는 ‘누가 보다 많이, 그리고 보다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느냐?’에 달려 있다. ‘고객만족, 고객감동, 고객의 가치창출’에 기업의 성패가 달려 있음이 이를 말해준다. 북한과의 경쟁에서 우리가 승리하는 길은 북한 땅을 점령하거나 북한 사람들을 섬멸하는데 있지 않다.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북한 동포들이 우리를 좋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눈을 부라려 미워하고 불신하며 무시하고 싫어하는데 상대방이 우리를 좋아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북한 동포들을 어떻게 느끼고 어떤 자세로 대 하여야 하겠는가? 에 대한 답이다.


“북한 주민은 우리 동포다. 그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냥 거기 살다보니 저토록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안되었다. 도와주고 싶다.”는 자비의 측은한 마음을 가지는 것, 이것이 국력이 그들보다 20배 이상 차이 나는 우리가 취할 길이다.


약자는 악에 받혀 단말마적으로 도전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아직도 극우 사대주의세력들은 우리 군이 북한에 대해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식으로 나가야 강한 안보가 된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계속해서 “우리의 적이 누구인가?”라며 냉전 시대 정권안보를 위해 써 먹어왔던 시대착오적 증오심 고취를 되 뇌이고 있다. 그런 냉전적 주장이야말로 우리의 안보역량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안보의 궁극적 목적은 평화다. 안보는 호전적 극우 사대주의 세력들의 기득권 확대 유지를 위한 방편이 아니다. 일제 침탈기간에는 일본 천황을 위해, 군사독재 하에서는 독재자를 위해 그리고 민족이 통일을 지향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할 지금에 이르러서는 반통일의 길을 주장하고 있는 그들의 반역사적 망동에 단호히 대처하자.













국방업무에도 실용성 강조할 것인가?
53.안보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다.<군개혁에 바친 내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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